코지마 히데오의 창작하는 유전자 - 내가 사랑한 밈들
코지마 히데오 지음, 부윤아 옮김 / 컴인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Gene으로 태어나고 크리에이터는 Meme으로 만들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도에서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티븐 킹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이야기의 왕'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이야기꾼으로 살아가게 만든 건 그의 아내 태비사 킹과 작가 리처드 매드슨(1926~2013)이다.

그가 거듭된 거절과 실패에 상심해 글쓰는 일을 포기할 때쯤 아내가 끝까지 믿어주고 격려해준 덕에 출세작 '캐리'를 완성한 일은 너무 유명하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겠다. 또 다른 조력자 리처드 매드슨은 1954년 '나는 전설이다'라는 제목의 공포소설을 펴냈다. 기존 흡혈귀물의 클리셰를 비튼 이 작품은 이후 후대 작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참조되고 변용되며 수많은 이야기의 토대가 된다. 어떤 이들은 환상소설이 지닌 이야기의 힘에 이끌려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그 중 한명이 스티븐 킹이다. 스티븐 킹은 "작가로서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가"로 리처드 매드슨을 꼽았다.

2006년 스티븐 킹은 휴대폰때문에 좀비 괴물이 되버린 인류를 그린 소설 '셀' 서문에서 리처드 매드슨과 '좀비의 대부' 조지 A 로메로에게 감사를 전했다. 모두가 괴물이 된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나는 전설이다'에 대한 훌륭한 오마주였다.

그리고 13년이 지나, 다시 한번 스티븐 킹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거장에게 자신의 신작을 바친다. "리처드 매드슨을 추모하며"라는 헌사로 시작하는 중편소설 '고도에서'다. 190cm는 훌쩍 넘는 거구의 중년 남성이 하루하루 몸무게가 가벼워지며 겪는 이 짧은 작품은 리처드 매드슨의 중편 '줄어드는 남자'에 많은 부분 신세를 지고 있다. 하루에 0.36cm씩 줄어드는 주인공 스콧이 겪는 소외와 사투를 그린다. 그는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150cm에 치유의 희망을, 120cm에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15cm에는 가장으로서의 위엄을, 그리고 1.8cm에 이르러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도 잃어버린다.

그럼 스콧이 키 대신 몸무게가 줄었다면 어땠을까. '고도에서'가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답변은 전에 없이 따뜻하고 뭉클하며, 아름답다. 줄어드는 남자와 이름마저도 똑같은 '가벼워지는 남자' 스콧은 작은 마을에서 고양이와 살고 있는 홀아비다. 평범한 삶이었다. 어느날 자신의 몸무게가 하루에 0.5kg서 1kg씩 꼬박꼬박 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의 삶은 바뀌기 시작한다.

중력이 끌어당기는 건 몸뿐만이 아니였던 모양이다. 몸이 가벼워질수록, 거구의 몸을 지탱하기에 급급했던 근육에 힘이 남아돌수록 스콧은 여유와 활력을 얻는다. 한층 넓어진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최근 동네로 이사 온 레즈비언 부부와 그들을 대하는 작은 마을의 (조용하지만) 편협한 태도다. "우리 엄마가 저기는 가지 말라고 했어요. 좋은 아줌마들이 아니라서요." "래즈비언이래요." 아이들의 입에서 삐져나온 혐오는 공포소설 이상의 섬찟함을 느끼게 한다. 고립된 공동체의 광기를 그려내는데 탁월한 성취를 보여준 작가인지라 이쯤에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사태로 급선회할 수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잠시, 작품은 스콧의 가벼워진 발거음만큼이나 사뿐사뿐 성큼성큼 화해와 포용의 길로 나아간다.

"고도(elevation)에 오른 기분이 들어요."

똑같이 영(零)으로 수렴하지만 키와 몸무게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자신의 존엄성을 잃어버린 채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스콧. '사라지기 전에 적어도 하나라도 바로잡기 위해' 타인의 존엄성을 바로 세우는 일에 전념하는 스콧. 전자가 이윽고 사라지는 존재가 느낄 법한 절박한 공포감을 그려냈다면, 후자는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이 얼마나 품격있게 마지막까지 살아낼 수 있는지를 담아낸다.

'고도에서'는 소품(小品)이다. 작가의 장편에서 느낄 수 있는 응축된 귀기(鬼氣)도,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다 단번에 터져나오는 공포도 없다. 하지만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의 힘은 문장 하나를 써도 드러나는 법이다. 그의 단편선을 기다리게 되는 이유다. 작품 중간중간 양념처럼 가미된 '스티븐 킹 월드'의 흔적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20세기 가장 훌륭한 환상 소설." 스티븐 킹이 '줄어드는 남자'에 바쳤던 헌사를 이제 그대로 그에게 돌려줘도 될 듯 싶다. 아, 숫자 하나는 고쳐야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집 없는 김대리에게 인서울 기회가 왔다 - 대출규제.금리인상 끄떡없는 아파트 구입의 기술
정석우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부동산 규제란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다. 규제는 칼날같고 가차없지만 그만큼 명징하게 가능의 영역을 남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응당 필요한 두려움에서 불필요한 공포를 발라내라'는 것이다.


책은 적격대출(보금자리대출, 디딤돌대출)을 활용하면 서울 한복판에서도 LTV 70% 대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적시하며 다양한 상황을 가정해 주택 구입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 한다. 곱셈으로 간략화된 공식을 이용해 보유 자산으로 구입 가능한 주택 가격대를 산출하고, 그 가격대로 구입할 수 있는 아파트를 추려내는 법을 알려준다. 취득세와 유한책임대출, 주택연금과 6월 2일 이후 잔금 계약 등 돈을 아끼는 팁도 빠트리지 않는다.


호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은 "진정 무서운 존재는 문 뒤에 존재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공포는 실체를 알지 못한 채 상상할 때 가장 커진다. 부동산 규제 속에서 헤매는 대신 기회를 잡고 싶다면, 문을 열어 마주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스터 메르세데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메르세데스 벤츠를 끌고 '호러의 킹'이 돌아왔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가면을 쓰긴 했어도, 무자비하게 독자들을 후려치는 이 작가가 스티븐 킹임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작품은 12기통 벤츠로 인파를 덮쳐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고 홀연히 사라진 '메르세데스 킬러'와 환갑이 넘은 은퇴경찰 호지스과 맞대결을 그린다. 형언할 수 없는 악, 근원적인 공포와의 대면을 다루던 호러작가가 그려낸 '인간 대 인간'의 격돌은 그 시도만으로도 흥미롭다. 그렇다면 결과는? 당연하게도, 끝내준다.

     

소설은 살인마와 호지스의 시점을 오가며 진행된다. 은퇴 이후 목적지를 잃어버린 호지스는 레이지보이 쇼파에 앉아 하릴없이 TV를 보며 권총을 만지작댄다. 살인마는 만들어낸 미소와 함께 그럭저럭 사회생활을 이어가지만, 벤츠로 사람들을 짓이길 때, 그리고 이후의 살인을 통해 느꼈던 흥분과 고양감을 잊지 못한다. 둘 모두 무너져 가지만 안 그런 척 할뿐이다. 

     

작가는 늙은 탐정의 변화를 그려내면서 혐오스러운 킬러의 일상도 놓치지 않는다.  조이스 캐럴 오츠가 '좀비'(1996)를 통해 독자들을 단숨에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의 내면으로 끌어들여 '악의 심연'을 마주하게 만들었다면, 스티븐 킹은 메르세데스 킬러의 숨소리, 땀 냄새까지 느껴질 정도로 바짝 붙여 놓는다.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소재로 한 대중문화 작품들은 '쿨한 캐릭터'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만의 미학(=강박)을 갖고 있고, 비명을 지르며 저항하는 상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살해하는 섬뜩한 매력을 지녔다. 영화에서 찾아보자면 '헨리 - 연쇄살인범의 초상'(1986)이나 '악의 교전'(2012)에 등장한 살인마들이 그런 부류다. 

     

메르세데스 킬러는 다르다. 몰입하기에는 역겹고, 외면하기에는 가깝다. 이해할 수 있는 배경과 이해할 수 없는 행위가 어지럽게 뒤섞인 인물이다. 대중문화 속 완벽주의자 사이코패스와는 달리 위태롭고 감정적이고 실수도 저지른다. 독자는 살인범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광기의 모노드라마에 빠져들면서도 혐오감과 적대감에 끊임없이 거리를 둔다. 이 절묘한 균형점에서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탐정소설의 장르적 쾌감과 하드보일드 복수극의 재미를 함께 선사한다.

     

범인과 형사의 시점을 함께 다루는 탐정소설은 적지 않다. 기시 유스케의 '유리망치'(2005)가 대표적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2006)도 그렇다. 범인은 일찌감치 밝혀 놓고, 트릭을 파훼하는/설계하는 과정을 통해 스릴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미스터 메르세데스' 역시 (독자에게만) 공개된 범인과 (독자에게도) 감춰진 트릭이란 플롯을 적극 활용한다. 다만, 작품은 그 지점에서 한발 더 나아가 두 사람의 대립이 '개별 사건의 해결'을 넘어서서 극단의 대결로 치닫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 특유의 귀기어린 전개에 압도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영화 '본 슈프리머시'의 핸드헬드 촬영을 연상케 할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대상을 옮겨가는 시점 역시 탁월하다. 

     

스티븐 킹은 새로운 선택을 했다. 닷지 픽업을 타고 (보통은 메인주로 설정된) 생지옥으로 돌진하는 대신에,  미끈하게 빠진 벤츠에 일단 앉아보라고 권한다. 최고급 가죽좌석에 몸을 파묻듯이 앉으니, 1.5톤짜리 예술품이 소음도 진동도 없이 미끄러지듯이 움직인다.  이윽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본다. 폭주하는 벤츠는 폴리스 라인 너머 피와 살점과 화염이 뒤섞인 지옥도로 돌진하고 있다. 운전대를 잡고 낄낄 거리던 스티븐 킹은 속도를 더 높이며 말한다. 

     

왜 그래? 이럴 줄 몰랐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