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정석 - 인생의 격을 높이는 최소한의 교양
찰스 윌런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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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윌런 교수의 ‘돈의 정석’을 읽었다.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저자의 전작 ‘벌거벗은 통계학’이 꽤 입소문 난 책이었기 때문이다. 정작 벌거벗은 통계학은 건너뛰고 이 후속작을 먼저 읽게 되었지만 말이다. 우선 읽고 난 소감은 대만족이다. 디테일에 강점이 있는 양질의 책이다. 일단 명확히 할 것이 있는데, 이 책은 ‘돈’을 다루고 있지만 재테크 서적은 아니다. 원제는 ‘Naked Money’, 즉 벌거벗은 돈 정도로 직역할 수 있는데, 출판사에서 돈의 정석으로 작명함으로써 무언가 재테크 서적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판매량이 중요하므로 이해하고 넘어가자. 어차피 중요한 건 내용이고 이러한 양질의 책이 번역 출간된 것은 독자에게 좋은 일이다.

나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복수 전공했는데 전공자 입장에서 이 책을 평가할 때 상당히 고품질이다. 전공과목인 거시경제학, 화폐금융론, 국제금융론, 국제무역학 등을 포괄하는 교양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 경제학과에 진학하고 싶은 고등학생, 경제학과 재학생 등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초반에는 개인적으로 조금 지루한 감이 있었다. 가령 화폐의 기능, 신용 창조,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등등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 나열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공자 입장에서 본 입장이고, 비전공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고 쉽게 이해하고 넘어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전공자 입장에서도 굉장히 흥미 있고 빠져들게 하는 파트가 있었는데, 바로 ‘금본위제’를 다룬 파트이다. 사실 그 동안 금본위제를 화폐의 가치를 금의 가치에 연동시킨 것이라고 단순하게 알고 있었는데 이 책 덕분에 금본위제의 본질과 한계까지 명확히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은 후 가장 큰 수확은 ‘금본위제’의 이해이다. 앞서 말했듯이 금본위제는 화폐의 가치를 금의 가치에 연동한 제도이다. 금본위제는 금이라는 희소한 원자재의 특성으로 그 역사가 오래되었고, 1971년에 준금본위제라고 할 수 있는 브레턴우즈 체제가 막을 내릴 때까지 명맥을 이어왔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는 화폐의 가치가 그 어느 것에도 연동되지 않는, 오직 발행 주체의 신용에만 의지하여 살아가는 명목화폐 체제이다. 금본위제는 그 자체로 모순을 해결하는 메커니즘이 있다. 즉, 두 나라 간 무역불균형으로 금이 한 곳으로 쏠리면, 금이 쏠린 나라에서 금리 하락(돈의 가치 하락), 물가 상승(무역에서 불리)이 일어나면서 금이 다른 나라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나 산업이 고도화되고 엄청난 수요가 존재하는 현대 경제 사회에서 금본위제는 적합하지 않다. 이제까지 인류가 발굴한 금의 양은 대형 유조선 한 대로 다 채울 수 있는데, 현대 경제의 수요를 그 정도 금의 양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 경제 사회는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명목화폐로 돌아가는 체제이고, 이 명목화폐 체제는 금본위제의 단점은 제거하되 장점은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금본위제로 돌아갈 유인이 전혀 없다. 가끔 금본위제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있는데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과거 인류는 이러한 금본위제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거의 종교적으로 추종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처칠이 재무장관으로 일했던 영국의 사례가 있고, 그 유명한 1929년 대공황도 있다. 우선 영국은 1차 세계 대전을 치르는 동안 파운드의 가치가 하락하여 물가가 상당히 올라있는 상태였다.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처칠은 금본위제 체제에서의 강 파운드를 영국 제국의 자긍심으로 여겼으며, 이에 따라 파운드가 전쟁 전의 가치로 복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파운드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물가가 하락해야 했다. 즉, 처칠은 디플레이션 유도를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물가나 임금 등을 하락시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당시 저명한 경제학자인 케인즈가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칠은 그대로 정책을 강행한다. 케인즈가 예상한대로 강 파운드는 영국의 수출업체들이 경쟁에서 불리하게 만들었고, 영국의 석탄 광산업계는 한 달에 100만 파운드씩 적자를 냈다. 따라서 생산 비용을 낮추기 위해 임금 삭감을 추진하자 노조가 반발하여 직장 폐쇄가 잇따랐다. 이에 다른 업계 노조들도 동참하여 총파업이 일어나는 등 영국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다. 신용경색, 파산, 은행 부도가 발생했고, 1931년 영국은 6년 만에 금본위제를 포기했다. 갈리폴리 해전 이후 처칠의 가장 큰 정치적 오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대공황을 말하자면 사건 자체가 워낙 유명하고, 그 발생 원인도 여러가지로 추론되며 많은 논쟁이 있다. 이 책은 바로 금본위제가 대공황의 핵심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 위기 초기에 미국은 금리가 높은 상태였는데 금의 유출을 우려한 미국 관리들이 금리를 내릴 생각이 없었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지 않으니 금본위제를 따르던 유럽 국가들도 금의 유출을 막고 고정환율을 지키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금리를 올렸다. 즉, 위기가 번지고 있는데 금리를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정반대로 행동한 것이다. 이것이 평범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무너뜨린 대공황으로 진화한 이유이다. 이러한 대공황이 후에 파시즘을 발전시켜 나치와 히틀러를 탄생시켰고,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즉, 금본위제가 어쩌면 2차 세계 대전의 원흉인 것이다. 이는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이 지적한 사항이다.

금본위제는 화폐의 발전 과정 상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제도였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의 유물로만 존재해야 하는 제도이다. 학부 때 금본위제에 대해서 배우긴 했지만 왜 별 생각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교과서도 그렇고, 교수님도 그렇고, 이 책처럼 자세히 설명을 해주지 않아서 였을까. 금본위제 말고도 유로존도 굉장히 흥미로운데 이것도 다루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썼다. 결론만 말하자면 유로존은 ‘최적 통화 이론’에 의거해 점점 분열될 수 밖에 없다. 시작부터 이혼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결혼 생활이라고 비유하면 적절할까 싶다. 유로존은 독일과 그리스의 갈등을 보듯이 그 자체로 모순점이 내재해 있다. 궁금하신 분들을 꼭 책을 구매해 읽어 보시길 바란다. 아무런 경제 배경 지식이 없다면 이 책을 약간은 읽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잘 소화해낸다면 경제학과 학부생 못지 않은 지식과 교양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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