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탐한 사무라이 - 상투 잡은 선비, 상투 자른 사무라이
이광훈 지음 / 포북(for book)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메이지 유신 과정에 관한 좋은 입문서

일단 제목이 참 섹시하다. 조선을 탐한 사무라이라니, 내가 이 책을 구입한 동기의 지분 70%는 제목에 끌려서이다. 제목에 조선이 들어가긴 하지만 조선에 관한 내용은 전체 내용 중 20%는 될까 싶다. 그 내용도 일본과 비교하여 근대화의 타이밍을 놓친 아쉬움이 대부분이다. 뭐 사실 조선 말기는 그야말로 우리나라 흑역사 중의 흑역사이니 그려려니 하지만, 다시 읽어도 아쉽고 울분이 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때를 타산지석 삼아 오늘날 격동의 시대에 현재와 미래를 대비해야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러고 있는가? 우물 안 개구리를 재현하는 건 아닌지 강한 의문이 든다.

어쨌든 책의 저술 의도는 ˝왜 일본이 조선을 탐하였는가?˝에 관한 대답일 것이다. 그 대답은 조선을 정벌하자는 ‘정한론‘이다. 그럼 정한론은 도대체 어디서 유래됐는가? 나는 책에서 두 부분을 캐치했는데 첫째는 메이지 유신의 사상적 대부 요시다 쇼인이 일본 서기 등의 내용에 감화되어, 제자들에게 교육을 함으로써 전수됐다는 것이고, 둘째는 메이지 유신 후 존재 의의를 잃어버린 사무라이들의 불만을 사이고 다카모리가 정한론을 미끼로 한데 모아 터뜨렸다는 것이다.

요시다 쇼인은 조슈 번의 존왕양이파의 사상적 대부였다. 존왕양이란 천황을 옹립하고 서양을 무찌른다는 것이다. 당시 막부는 사무라이 정권으로서 천황은 단지 상징적 존재였는데, 천황을 옹립하자고 말하는 쇼인은 일종의 반체제 사상가였던 것이다. 히데요시 말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카와의 동군에 대항하여 싸웠으나 결국 굴복한 비주류 번들의 역사적 요인과 함께, 서양 세력의 침입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결합하여 존왕양이 사상이 탄생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서양 세력과의 전쟁을 통해 존왕양이파는 현실을 실감하고, ‘양이‘는 폐기하고 적극적인 개국으로 전환한다.

이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이 메이지 유신의 거물들로서, 그 명명이 화려하다. 모두 조슈 번 출신으로서 다카스키 신사쿠, 야마가타 아리토모, 가쓰라 고고로, 이토 히로부미 등 우리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인물들이지만, 일본에서는 막부를 타도하고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완수한 영웅들이다. 그런데 요시다 쇼인이 일본 서기 등에 영향을 받아 정한론의 뿌리가 됐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 우선 일본 서기는 거의 판타지 소설에 가까운 내용으로 신빙성이 없다고 일본 사학자들도 인정하는 것으로 아는데, 어쨌든 그렇다고 책 초반에 나온다. 그렇다고 저자가 자세히 기술한 것도 아니어서 그냥 요시다 쇼인이 그런 내용에 감화되었구나 정도로 넘어가면 될 것 같다. 우리나라로 치면 시대적 오피니언 리더가 환단고기를 바탕으로 극우적 사상을 펼쳤다고 생각하면 될까? 그런데 무서운 것은 일본인들은 그 사상을 실천에 옮겼다는 것이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태풍을 잃으킨 셈이다.

사이고 다카모리를 보자. 다카모리는 사쓰마 번의 대부이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의 모델이 된 양반이다(고증은 꽝이므로 재미로만 보자). 조슈 번과 사쓰마 번은 전통적으로 앙숙으로 견원지간이었는데, 사카모토 료마라는 걸출한 인물의 중재로 그 유명한 삿쵸동맹을 맺어 막부를 타도하게 된다. 이 사쓰마 번이라는 한 축을 담당한 사람이 사이고 다카모리이고, 동맹을 맺기 전까지 조슈 번을 괴멸 직전까지 끌고 간 사람이다. 다카모리는 정한론이 정론으로 채택되지 않자 사쓰마로 귀향 후, 사무라이들을 모아 메이지 유신 정부군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다. 이것이 세이난 전쟁이고, 정부군에 진압되어 다카모리는 할복 자살한다. 다카모리 대척점에 있던 인물이 진압군의 오쿠보 도시미치인데, 그 역시 사쓰마 번 출신으로 다카모리와는 친구 사이였다. 시대적 상황이 친구 사이를 비극으로 이끈 것이다. 저자는 사이고 다카모리가 정한론을 주창한 이유는 유신 후 사무라이들의 불만을 모아 자신을 스스로 희생하여 터뜨린 것이라고 한다. 일종의 대의를 위해 악역을 자처했다는 뉘앙스인데,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도로 넘어가면 될 것 같다. 역사는 어차피 해석의 문제 아닌가. 흥미로운 점은 정작 정한론이 탄생한 조슈 번 출신들은 정한론에 반대했다는 사실인데, 조슈 번 출신들이 정한론을 근본적으로 반대한 것이 아니라, 단지 시기가 무르익지 않아 반대했다는 저자의 의견에 본인도 적극 공감하는 바이다.

지금은 그렇게 보수적인 나라인 일본이 어떻게 그 시절에 그러한 엄청난 혁명을 속전속결로 진행하고 완수했는지 미스테리이다. 물론 사상적 배경, 시대적 배경, 전개 과정은 다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난 후 그 혁명에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무형의 요소가 작용했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바로 죽음의 정신이다. 우리도 말로는 죽음을 무릅쓴다는 ‘필사‘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일본 사무라이들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할복으로서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2~30대 젊은 사무라이들이 필사의 정신으로, 수많은 목숨을 희생하여 이룩한 것이 메이지 유신이다. 그 정신이 변질되어 군국주의로 발전하고, 우리를 포함한 인류사에 비극이 된 것은 부정할 순 없지만.

메이지 유신에 관해 알고 싶은 사람에게 입문서로 좋은 책이다. 왜 일본은 조선을 탐하였는가에 대한 답은 조금 아쉽지만, 가독성 좋고 내용도 흥미진진하므로 일본 근대사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겐 후회없을 선택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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