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고전에 대한 애정의 끝판왕

고전에 대한 애정의 끝판왕ｌ마이리뷰

프로앤pronl5v2 l 2020-05-31 12:53

https://blog.aladin.co.kr/711514164/11752862

동양 요괴 도감 고성배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5월 평점 :

주의 : 머리 맡에 이 책을 두고 잠들지 말 것

편견 없애기 프로젝트의 일환이랍시고, 아무리 가리지 않고 책을 보길 좋아하고 은근히(?) 즐긴다지만서도, 이 책만큼은 단언컨대 지금껏 본 책들 중 가장 요상하고도 괴이한 책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 흥미롭게 본 미스테리 추리소설 중 하나인, 연쇄살인마를 쫓는 사이코패스 변호사의 끈질긴 추격전 이야기를 다룬 <괴물 나무꾼>도 나름 흉측하고 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동양 요괴 도감>을 보고 있자니, 그 책의 특이함은 저리가라다.

가끔 사주나 관상, 꿈해몽에 대해 정리한 책을 볼 때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연구해서 신기하다 싶을 때가 있는데, 세상에나 그냥 요괴도 아니고 “동양 요괴”만 모아 도감을 만들 생각을 다 하다니 그 용기과 과감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 소개부터 판타스틱하다. 전작을 보니, 전 세계 악마를 모아 기록한 <검은사전>이라니. 하하. 이전에 출간한 저자의 저서를 보니 이 책은 또 벌써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버렸다. 나도 영화를 전공하면서 중간기말고사기간이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별 해괴망측한 작품들을 줄줄이 이어 본 장본인이기도 하거니와, 쓸 데 없는 데에 매니아 기질이 있어서 결코 덕후 기질이 없다고는 절대 말 못하는 데다가, 다음 문장을 보고 결국 저자의 매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어, 생각보다 잘사네’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저자의 의도는 시작부터 80%는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서문을 읽고 나니 저자의 의도가 120% 공감이 갔다. 고전에서 요괴의 생김새까지 구체적으로 흔하게 다루지만, 상상 속에서나 존재했던 ‘요괴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버리는 게 아쉬웠던 것이다. 그 마음이 마치 어린 아이의 순수함과 닮았다. 뜻밖의 진지함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쓸데없이 고퀄리티라고 해서 책 안을 들여다보니, 동양 요괴들에 대해 장인 정신이 묻어날 정도의 꼼꼼하고 정성 가득한 해설로 가득했다. 한국문학을 전공하면서 고전문학을 공부한 적이 있는데, 그 역사의 소중함이 사라지면 어쩌지, 라는 생각을 문득 했었는데, 어쩌면 저자는 그 누구보다 고전의 가치를 알고 소중하게 보존하고 싶어 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요괴를 묘사하고 설명한 데서 그친 게 아니라, 구전이나 문헌에서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 함께 기재되어 있는 부분에서 저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대부분 중국과 일본의 요괴들 이야기로 가득해서 한국의 요괴는 많이 볼 수 없다는 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무조건 무섭다고만 생각했던 존재에 대한 편견을 이로써 또 한 번 깨버리는데 성공한 셈이다.

후대에 고전 문학을 연구하는 분들께, 소중한 단서가 될 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 책이 정말 값지게 느껴졌다. 표지 디자인과 촉감도 정말 색다르다. 뭐랄까. 말랑말랑한 고무 같은 재질에 원색의 굵은 실로 꿰매놓은 듯한 디자인인데, 내부 디자인까지 구석구석 디테일하게 결이 맞도록 신경쓴 점이 놀랍다. 표지에 감겨 있는 종이를 벗기면(?) 검은색이 아닌 흰색 배경에, 같은 무늬의 요괴가 그려져 있는데, 둘다 마음에 들어서 어느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결국 두 개를 다 보여주고 싶은 내 마음을 보는 듯 해서 웃음이 났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따뜻해지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책이다. 그리고 여러 모로 저자를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고전을 보존하고 싶다고 생각만 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간격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을 출간하는데 노고를 기울여주신 저자분과 출판사 관계자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