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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미야모토 테루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평점 :
- 우리가 살면서 만날 수밖에 없는 막막함과 캄캄함은 비로소 어둠 속에 있어야 고요히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쳐온 길목마다 그 가까운 곳에 빛을 내는 등대 하나 있었음을.
- <등대>는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중 가장 평범하고 그래서 따뜻했다. 우리는 평범함을 늘 그리워 하면서도 자신과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언제나 가까이에 있었는데도.
- 그래서일까.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이 대개 관찰자로 관조함으로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었다면 이번 책 <등대>는 소설 그 안으로 동화되고 싶은 아름다움이었다.
-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었으니 내일도 있을 것이라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상실함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알게 될까. 무엇이 상실을 대체할 수 있을까.
💬 : 도쿄의 한 상점가에서 아내와 함께 중화소바 가게를 운영하던 주인공 ‘고헤’. 아내가 갑작스레 세상을 뜬 후 그는 만사에 의욕을 잃고 가게도 휴업한다. 그러던 어느 날, 책갈피에서 오래된 엽서 한 장을 발견한다. 30년 전 소인이 찍힌 엽서의 수신자는 아내 ‘란코’, 발신자는 ‘고사카 마사오’. 당시 서른 살의 아내가 “모르는 사람한테 엽서가 왔어”라고 했던 일을 떠올린 고헤. 이 엽서 한 장으로 고헤는 아내의 시간을 더듬어 등대 여행을 나서게 된다.
📖내 이야기는 쓰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를 톺아보기가 제일 어렵다. 자신을 둘러싸는 진실 가운데는 남에게 알리기 싫은 사연이 얼마쯤 있게 마련이다. 나는 그것을 숨기기 위해 보태고 빼고 꾸밀 것이다. 그래서야 오가이의 <시부에 추사이>와는 영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등대는 하나하나가 저마다 다른 풍모를 지녔다. 멀리서 바라봐야 운치 있는 등대. 가까이서 올려다봐야 위용을 실감하는 등대. 안개 너머에서 보일 때 비로소 존재감이 커지는 등대. 그것들은 바라보는 사람의 그때그때 심경과도 이어져 있으리라.
때로는 초연한 어른 같고, 때로는 밤마다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우직한 직인 같다. 고혜는 그런 생각을 하며 회전등 아래 설치된 좁은 회랑을 돌면서 파노라마 모드로 풍경을 담았다.
📖휘황한 빛의 전구판은 너무 멀어서 처음에는 화살표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 주위에는 그런 일이 숱하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딸, 아들, 몇 안 되는 친구.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나는 멀리서만 봐왔는지도 모른다. 삼각형도 육각형도 멀리서 보면 전부 원으로 보인다. 아니, 너무 가까워서 진짜 모습이 보이지 않기도 한다.
📖”너, 그 나쁜 버릇 또 나왔다.“ 도시오가 말했다. "너무 앞선다고 할까, 쓸데없는 잡생각이라고 할까, 아무튼 하나마나 한 걱정을 사서 한다니까. 너 중학생 때부터 그런 게 많았어. 뭐 천성일테지만, 그게 네 인생을 작게 만드는 건 분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