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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2년 12월
평점 :
리스본을 몰랐을 때 이 책을 한 번 읽었고 리스본에 다녀오자마자 그리움에 영화로 보았고 그리고 이번에 책으로 다시 한 번 보았다.
학교에서 그리스어를 가르치던 그레고리우스, 고전문헌학에 조예가 깊어 문두스*라 불리던 주인공은 어느 비오던 날 수업을 하러 가던 중 키르헨펠트 다리 위에서 난간 위에 선 여성을 만나게 된다. 여성의 모국어는 포르투게스.
*세계,우주,하늘 등의 뜻을 지닌 라틴어
그레고리우스는 수업을 하던 중 이 여성을 쫓아 충동적으로 교실을 나서고, 에스파냐 책방에서 아마데우 이나시우 드 알메이다 프라두가 쓴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얻게 된다.
그리고 매일 정해진 일과와 익숙한 공간, 자시의 언어세계에서 안온함을 느껴왔던 게 거짓말처럼 파리를 거쳐 리스본을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싣는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레고리우스가 우연히, 그러나 운명적으로 갖게 된 책 ‘언어의 연금술사’를 쓴 사람의 모든 것을, 그의 세상과 언어를 쫓는 여정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누군가의 세계를 조심스레 열어보는 것은 그레고리우스가 자신의 세계를 다시 제대로 바라보는 것과도 같다.
그레고리우스는 한 인간의 조각조각난 이야기들을, 아마데우의 분절된 세계를 온전히 완성해낸다. 이 세계를 온전하게 만들어낸 것은 그 누군가의 진실한 언어를 다시 되살림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문장,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 이 책에서 나온다. 정확히는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읽는 책에서 나온다.
리스본에서 낯선 사람이 되어 내가 걸었던 그 길들이, 어느 순간 두 발로 딛고 선 그 길이 오히려 익숙해져서
내가 편안함을 느꼈던 공간이 오히려 낯선 것이 되었을 때의 경험. 그런 경험은 세계로부터 나를 고립시키기도 하지만 삶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기도 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는 내내 밝는 낯처럼 분명하게 읽히기도 했고 터널을 지날 때처럼 분명히 눈으로 읽고 있지만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기도 했다.
언젠가 또 세 번째 읽는 날이 오면 나도 온전히 읽어내려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