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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의 의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평점 :
미야베 미유키가 무려 10년 동안 집필한 SF소설집.
8편의 SF의 단편은 그래서일까,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 가 비슷한 리듬을 띄면서 다른 시간선에 점점이 찍혀있는 것 같다. 이 이야기들은 언뜻 SF라기보다는 우리가 늘 마주하는 현실의 비틀어진 형태같이 보인다. 첫번째 단편 <엄마의 법률>과 두번째 단편 <전투원>은 특히 그렇다. <엄마의 법률>은 입양 문제를 비판하지 않고 마더법이라는 상상력으로 세상을 확장해낸다.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세상은 향기로운 꽃밭도 앞서 달려간 휘황찬란한 미래도 비극적 과거도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과연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우리는 비틀거리며 왜곡된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SF적 시선으로 본 세상이 좀 더 그럼직한 건 아닐까.
“이곳인 듯 이곳이 아닌 선득한 풍경
지금인 듯 지금이 아닌 트릿한 시간.
일상 속 결락의 틈에서 시작되는 미야베 미유키의 전방위적 상상력.”
🔖겐이치 아빠, 사키코 엄마와 인생을 공유해오면서 마음이 서로 닮아갔다. 그것이 외모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야말로 진짜 가족, 이상적인 가족이다.
그깟 유전자의 소행 따위에 내가 왜 흔들려.
그런데도 화가 치미는 게 분하다.
🔖당신은 괴물일까?
- 당신이 보는 괴물은 스스로의 심성을 반영한다.
이 세계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
가까스로 들어올려 이쪽을 향하게 하자, 무차별 살상 사건을 일으키고 말았던 남자의 마음에 뚫린 구멍이 보였다.
두 개 있었다. 본래는 안구가 있어야 할 장소다.
그의 두 눈은 도려내져 있었다.
아키노가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 불만과 고민은 언제나 피를 흘리는 상처 같았다. 그 피는 언제 멎었을까. 언제 아물었을까. 상처는 흔적을 남겼고, 지금도 눈에 보인다. 아팠던 시절의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나이 먹는 건 이런 것이다.
시간은 친절하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도 친절하다. 스스로에게도 주변에도.
🔖로봇을 조립하면서, 내가, 내 손으로 조립한 로봇보다도 필요한 존재가 못 되는 인간임을, 사랑받을 일도 없고 배려받을 일도 없는 인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그 여자애한테 친절하게 대해줄 수도 있었다. 위로해 줄 수도 있었다.
하먼의 로봇 인생은 좋은 인생이었다고, 한평생 아낌받으며 행복했을 거라고 말해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나도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이 싫다. 선량한 인간 따위 되기 싫다. 친절한 인간 따위 되기 싫다. 귀찮은 일을 로봇에게 맡기고 더 보람찬 일을 하는 인생 따위 원하지 않았다.
그보다 나는 로봇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