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 : 숲속에는 축복이 림LIM 젊은 작가 소설집 5
남궁지혜 외 지음, 전승민 해설 / 열림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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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림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림 : 숲속에는 축복이>>에는 젊은 작가 여섯 명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는 소설집이다. 여섯 편의 소설은 각자의 색채가 무척 뚜렷하고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닥 구미 당기는 책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내가 현재 통과해 나가고 있는 소위 '젊은 시절'을 이 여섯 편의 소설이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이 소설들은 너무나도 젊어서, 너무나도 2025년 나와 내 주변의 젊음들을 닮아 있어서 읽는 내내 속이 안 좋았다.

1. <팔뚝의 노릇>, 남궁지혜

1인칭 화자 선양의 상황이 최근 몇 년간 내가 느끼고 있는 고민과 맞닿아 있어서 너무 우울한 소설이었다. 나는 십대 시절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평생을 함께할 줄로만 알았던 친구를 잃어버린 기분을 느끼는 선양이기도 하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온 기선이기도 한 입장이다. 이 소설은 우정의 성장통을 매우 잘 그려낸다. 이런 소설을 읽을 때, 혹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우정이 흔들니는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그냥 하루 빨리 60년 정도 건너 뛰어서 장례식장 정모나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 잘 챙겨야지... 앞날은 어찌 될지 모르니...

2. <불가마 메이트>, 돌기민

소설집을 다 읽고 나서야 날갯 부분의 작가 소개를 읽었다. 돌기민 작가의 소개 첫문장을 옮겨본다. '더러운 것 ,징그러운 것, 이상한 것에 속절없이 끌린다.' 정말 그런 소설을 쓰셨다. 따개비 오메가버스라는 이 엄청난 상상력은 어디서 나오신 걸까? 정말 지독하도록 훌륭하게 더러움, 징그러움, 이상함을 지면에 퍼뜨리셨다. 한 문장 한 문장 넘기기가 힘들어 어쩔 수 없이 중간 중간 게임을 하며 쉬어갔다. 기후 위기에 대한 시의성도 담긴 소설이다. 인생이 너무 무료한 것 같고 좀 더러운 도파민으로 뇌를 잠식시켜보고 싶다 하면 반드시 추천하는 소설이다.

3. <홀로틀의 포옹>, 양기연

4. <숲속에는 축복이>, 양수빈

이 소설이 가장 당차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러는 한편으로 경악스러웠다. 안아키 부모가 나오질 않나 의처증 부모가 나오질 않나 예정이와 예주에게 서로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예정이는 숲속의 좋은 자연 환경 속에서 건강한 아이(뇌수막염에 걸려서 결국 현대 의학의 힘을 빌어 살아났고 청각을 잃은 예정과는 다른)를 낳고 오겠다는 잉꼬 부부 부모님 때문에 열다섯 살 때 이혼한 외삼촌 집에 맡겨지게 되고, 그래서 사촌 언니 예정과 한 방을 쓰게 된다. 그리고 이 두 사춘기 소녀가 안아키 남녀가 몇 달 간 머물기로 한 숲속으로 향해 겪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된 스토리다. 이 소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인류의 근간을 구축한 이성애 섹슈얼리티 신화의 모순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냈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다시 한번, 인간이 싫어졌다... 그러면서도 예주 같은 친구 한명 사귀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다. 트위터 인류애 상실되는 이상한 짤 올라오는 계정 같은 거 자주 찾아보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그 인류애 상실 모먼트를, 양수빈 작가는 아주 총명하고 반짝반짝하고 날카롭고 재미있게 잘 집어내서 한 편의 멋진 이야기를 써냈다. 이 소설 읽고 뇌를 좀 회복시키길 바란다.

5. <친구를 데리고>, 윤단

세 여자의 하루를 그린 이야기다. 화자 '나'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 채영과 고등학교 학원 국어 선생님에게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두 사람과 하루를 보낸다. 채영은 공장 기숙사에서 따돌림을 받으며 힘들어 했었고 죽고 싶다고 징징 거려 '나'를 한동안 힘들게 했다. 고등학교 시절 '나'가 흠모했던 학원 국어 선생님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말을 해주는 선생님이었지만 그러는 한편으로 학원 남학생과 연애를 해서 논란이 불거진 인물이다. (자꾸 '잘 가게' 짤이 떠올라 이 선생님한테 정 붙이기가 힘들었다. 인터넷 많이 하는 내 죄다.) 그렇다고 해서 '나'만 청렴결백한 인물은 아니다. 채영에게 모진 말을 하고 연을 끊었다가 자기가 정작 돌봄이 절실해지니 다시 채영과 연을 이어나가기도 했고, 연애 사건 후에도 선생님과 연락하며 20대까지 왔지만 정작 그 사건에 대해 목소리 높이며 소문 내고 다녔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참 복잡하죠? 윤단 작가는 이 세 인물에게 그 어떤 윤리적 잣대도 들이밀지 않는다. 다만 작가는 이 세 인물이 흠뻑 취한 밤 서로 끌어안는 장면으로, 윤리적 잣대보다도 중요한 무언가를 그려낸다. 덧붙여, 씬 스틸러 거북이인 밤이 참 귀여웠던 것 같다.

6. <미식 생활>, 이서수

역시, 이서수! 라는 말이 나오는 소설이었다. '한국의 식(食)의 역사'를 나라라는 한 202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 청년의 일상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그리고 나라의 성장을 보여줌으로써 복잡다단한 한국 사회의 역사와 한 개인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엮어낸다. 구조적으로 참 잘 짜인 소설인데 이걸 뭐라 설명하기엔 필력이 후달린다. 뼈말라, 먹방 유튜버, 삼대에 걸친 세 여성 이야기, 저출생 현상 등등... 많은 것이 잘 섞여서 한 편의 소설이 되어 있다.

... 전날 나라의 엄마는 낮잠을 자는 나라를 깨우더니 셔츠를 걷어 올리고 온몸에 입을 맞추었다. 부드럽고 뜨거운 입술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나라는 간지러워 웃음을 터뜨렸다. 입술의 열기를 느끼며 그 사랑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임을 자신했다. (185p)

이 책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줄을 쳐둔 장면이다. 나는 주말이 되기만을 기다려 먹방 유튜버 알깨기가 소개한 맛집을 찾아다니는 나라보다는 오히려 그녀의 알코올 중독자 친구 호린 쪽에 가까운 사람이고, 한때 나라가 맛집 뽀개기 하다 우연히 만난 뼈말라 미라 씨와 같은 입장이었던 사람인데, 그래서 맛집 탐방 열심히 다니는 나라가 좀 신기했던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나는 먹을 때가 되면 꼭꼭 씹어 맛을 즐기며 먹기보다는 그냥 빨리 해치우자는 식으로 먹는 경우가 많아서, 좀 반성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먹는 행위는 정말 어렵다...

마지막에 수록된 전승민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꼭 읽어보기를 권장드린다. 모쪼록 젊고 혈기왕성한 여섯 편의 소설을 읽을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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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농담이(아니)야 리:플레이
이은용 지음 / 제철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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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 그렇다. 우리는 농담이 아니다. 하지만 그럴 듯한 농담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세상은 우리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 굳건한 문을 두드렸던 작가의 분투가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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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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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출판사가 제공한 가제본을 읽고 쓰는 서평단 리뷰입니다.




백온유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 <경우 없는 세계>는 가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은 제목부터 흥미로운데, <경우 없는 세계>의 '경우'라는 단어가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의 '경우'는 사전적 의미의 경우도 되지만, 주인공 '인수'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미치고 있는 인물인 '경우'를 뜻하기도 한다.


주인공 인수는 청소년기에 가출한 전적이 있는 30대 독신 남성이다. 가출 시기에 있었던 '그 사건' 이후, 인수는 언제나 추위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인수는 차량 자해공갈을 일삼는 '이호'라는 아이를 발견하게 되고, 이호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겹쳐 본다. 결국 인수는 이호에게 자신의 집을 쉼터로 내주고 그 과정에서 온기를 느끼게 된다.


여기까지의 설명을 들어서는 인수와 이호의 이야기가 소설의 중심 내용일 것 같지만, <경우 없는 세계>는 기본적으로 인수가 가출팸 시절을 회상하는 회상 소설이다. 성연, 경우, 지민 등 인수가 집을 나와 만나게 되는 또래 아이들은 각자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가족 관계, 경제 형편 등등 이들은 뭣하나 겹치는 게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공통 분모가 있다. 바로 가정의 아늑함을 느끼지 못해 집을 나왔다는 점이다.


형태는 저마다 다르나 이들은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이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돌고 도는 끝없는 가정폭력의 굴레를 백온유 작가는 생생하게 그려낸다. 마음이 힘들어 중간중간 책을 덮으며 읽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 생생한 묘사 덕분에 인수라는 인물에게 더 공감할 수 있었다. 만약 인수를 현실에서 만났더라면 나는 그의 위축된 모습 같은 것들을 견딜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출팸 인원 중 인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두 사람은 '성연'과 '경우'이다. 성연과 경우는 극과 극의 인물들이다. 성연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사랑을 여전히 받고 있지만 새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집을 나온 상태고 도덕적 결함이 있는 인물이다. 반면 경우는, 보육원에서 자라 온전히 자신만을 향한 애정을 받은 적이 없지만 누구에게나 싹싹하고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인물이다. 혼자서는 타인들에게 무시당하고 경멸받기 일쑤인 인수는, 성연과 함께 있을 때는 어깨가 올라가고 경우와 함께 있을 때는 사람들의 다정함과 친절함을 느낀다. 인수는 도덕적 해이(성연의 영향)와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경우의 영향)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며, 두 사람에게 의지하는 한편 두 사람을 시기하기도 한다. 이런 다면적인 모습 때문에 인수가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로 느껴졌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인수는 스무 살을 앞둔 겨울, '그 사건'을 겪게 된다. '그 사건'을 기점으로 가출팸은 해산되고, 무죄 판결을 받은 인수는 부모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영영 그들을 떠난다. 그렇게 십여 년이 흘러 현재의 인수가 된 것이다. 그랬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상상 속의 부모님을 원하는, 서른이 넘은 지금도 종종 부모의 집 주변을 맴도는 인수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인수의 걱정을 간섭으로 느껴 화를 내고 떠난 이호가 인수의 집으로 돌아온다. 인수는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었던 경우를 떠올린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어쩌면 자신이 알고 있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을지 모르는 경우를. 인수는 성연을 선택하는 대신 경우를 선택했다. 그리고 경우 없는 세상에서, 인수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 이호에게 다가간다. 지금보다는 따뜻한 삶이 자신들을 기다리길 기대하며.


<경우 없는 세계>는 어쩌면 우리가 길가를 거닐다 속으로 욕을 하며 (우리는 그들을 불량하고 불편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나쳤던 아이들을 위한 소설이다. 소설은 말하고 있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 아이들을 경멸하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봐 달라고. 그 아이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칭찬과 친절 한 줌에도 가슴이 일렁이는 아이들이라고. 각양각색의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이 존중받는 사회를 바라며 서평을 마친다.


#백온유 #경우없는세계 #당신의경우 #창비 #창비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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