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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
고은우 외 지음, 따돌림사회연구모임 기획 / 양철북 / 2009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
-고은우, 김경욱, 윤수연, 이소운, 『이 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 양철북, 2016.을 읽고 쓴 서평
이석훈 / 백운고등학교 1학년 8반 seakhoons@gmail.com
학교폭력이란 무엇일까.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 또는 아이들 간의 화합을 방해하는 절대로 사라져야 할 것? 물론 맞는 말이다, 학교폭력에 대해서 학교에서 일어나는 아이들 간의 폭력사건, 교실의 평화와 화목을 방해하는 주범 정도로 사람들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학교폭력이란 것 자체의 본질적인 내용과 그 상황 속에 있는 아이들의 심정, 학교폭력이 일어나는 교실 안에서 표면상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숨겨진 내용까지 깊게 생각해보고, 알아내려 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사람들은 학교폭력사건을 보거나 듣게 되면 하면 피해자를 불쌍하게 생각하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멀게만 느껴서 사건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학교폭력의 심각성과 학교폭력이 가진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피해 학생이 용기를 내어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게 되면 때는 이미 늦은 선생님의 대처들을 보면서 우리는 학교폭력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학교폭력과 멀어진 우리가 학교폭력의 본질적인 해결을 스스로 가로막고 있는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학교폭력과 멀어지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학교폭력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학교폭력, 그것과의 거리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학교폭력에 관해 멀게만 느끼고 있었다 나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친구들과 큰 문제 없이 지내고 있고, 주변에서 학교폭력 피해를 가해자로서 사건에 연루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 학교폭력은 수업에서 말해주는 한정적인 사건들이나 뉴스에서 나오는 사건들만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학교폭력에 대해서 그저 먼 곳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로만 생각하게 되었고, 학교폭력 사건에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어도 그저 먼곳 에서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학교폭력이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해보면 나는 우리가 겪은 적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학교폭력은 자신들이 직접 겪은 일도 아니며 주변 사람들에게 듣는 간접적인 경험도 부족하기 때문에 학교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가까이 가려는 동기가 생겨나지 않아 학교폭력에 대해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는 것이 이유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가 기사에서 최근 3년간 학교폭력 실태조사통계를 보고 학교폭력 사례가 늘었다는 것을 알았거나 이전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과 같은 학교폭력 사례가 이슈가 되었을떄마다 사람들의 반응이 주로 가해 학생을 비난하거나 피해 학생을 동정하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던 것을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학교폭력에 얼마나 무관심했고 멀어져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결국,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교폭력과 더는 멀어지지 않고 학생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도록, 그것이 책에서 말하는 학교폭력을 해결할 힘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문구가 말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보이기 시작한 학교폭력
『나이팅게일의 일기』 내용에서 교실에서 한 아이에게 심각한 폭행 사건이 일어난 것을 선생님들이 알게 되었다 숨어있던 학교폭력이 선생님들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담임선생님은 학교폭력 해결을 위해 노력 중이었던 ‘이 선생님’에게 이야기해서 같이 학교폭력 해결을 부탁하고 본인은 학교 자체에 이 사건을 알리려 하였다. 이는 사실 우리가 배우는 학교폭력 예방 교육에 따르면 굉장히 이상적인 대처이다. 책에서의 묘사에 따르면 아이가 입은 신체적 피해가 심각했고 선생님은 그것을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 있는 거짓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항상 우리에게 학교폭력 상황을 보게 된다면 선생님께 알리고 피해자가 117에서 상담을 받으라고 항상 알려주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선 나는 이러한 대처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학교에서 말해주는 대처가 과연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이상적인 대처방안이 맞을까?
이 선생님은 사건을 보고 아이들에게 질문하면서 교실 안의 아이들이 몇 명의 아이들에 의해 교실에 서열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아이들에게 학급 아이들의 서열을 담은 피라미드 그림을 그리게 하고 ‘학급의 카스트’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 그림의 서열 관계는 암묵적 서열을 만든 몇 명의 아이들과 폭행 사건에 관련된 아이들뿐만이 아닌 센 아이들에게 빌붙는 아이들부터 평범한 아이들까지 학급의 모든 아이들을 표현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을 설명하는 아이들의 말에 따르면 폭력사건의 피해자는 서열이 낮은 아이였다. 학급의 모든 아이들이 ‘학급의 카스트’ 그림에 따른 아이들의 서열과 맞게 행동하고 그런 서열 관계를 유지하면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 학교폭력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폭행 사건 안에 우리가 몰랐던 진실을 알기 위해 이 선생님이 담인 선생님에게 우리가 본 학교폭력 사건을 학교에 알리게 되면 학교는 가장 심각한 폭력사건만 보고 해결하려 할 것이라며 학교에 알리는 것을 막는다.
앞선 내용에서 우리는 우리가 보게 된 학교폭력 사건 안에서 우리가 알지 못한 더 많은 인물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과 우리가 기사로 접하는 학교폭력은 굉장히 흉악하거나 큰 사건이 아니면 일부 숨겨지거나 축소되어 전달 될 수 있다는 것을 책에서 알려준다. 우리가 보고 있는 학교폭력에 관한 기사, 또는 뉴스가 당사자는 알고 있는 속의 진실을 전부 알려주지 않을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학교폭력은 진실이지만 진실이 아니다. 기사로 나온 학교폭력은 피해자 학생의 용기와 그것을 알게 된 선생님의 대처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일부의 사례들이고 그것들 또한 밖에서는 모르는 내용일 밝혀지지 않았거나 누군가에 의해 내용이 숨겨진 곳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모든 것을 말해주어야지 진실이다. 이렇게 계속 자극적인 사건들과 누군가의 은폐로 인해 우리가 진실을 알 수 없게 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우리는 학교폭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고 해결되지 않은 학교폭력을 다시 진실 되지 않은 내용으로 알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그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 우리는 학교폭력을 더 깊이 이해하고 진실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말해준다.
우리가 모르는 진실
이 책에서는 학교폭력에 관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진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아야 했지만,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진실들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우선 책에서는 학교폭력은 ‘사건’이 아닌 ‘관계’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학교폭력은 단순한 폭력사건이 아니라 학생들의 관계에 생긴 문제로 인해 생기는 증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학교폭력을 경험하고 인식하기 때문에 이러한 오해가 생기는 것이라는 것 또한 책 속 『나이팅게일의 일기』에서 이야기한 학급의 카스트 내용에서 책이 말해주는 메시지이다. 그런 것을 말해주기 위해 책 속에서의 선생님들은 항상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어느 파시스트의 학창시절』 이야기에서는 주인공과 아이들에게 생기는 관계의 문제를 자세히 묘사하면서 아이들의 관계가 어느 시점부터 틀어지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서 상황에대한 이해를 하게 시키며 선생님들이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어느 점을 고쳤으면 좋겠는지 놓친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깨우치게 한다.
또한, 책에서는 ‘학교폭력은 암과 같다, 아프다고 소리 지를 때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난 후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 말속에서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학생들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한때엔 얼마나 큰 용기를 내어서 하는 말인지 그런 용기를 내기 전에는 얼마나 고통스러워도 참고 견디고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문장이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것을 말하게 된다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이 두려워 말하기 꺼려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우리들은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처럼 그 사람들의 용기를 우리는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는 것에 이 문장은 그동안의 우리의 안일한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매체가 만들어낸 학교폭력에 물들어진 우리가 학교폭력을 ‘사건’으로 규정하여 조종하려 들었던 행동과 피해자의 용기를 깊게 공감하기 전에 해결되지 않는 학교폭력을 생각하며 무기력한 태도로 학교폭력을 대해왔던 우리들의 행동이 학교폭력에서 더 알아낼 수 있었던 진실들을 뒤로한 채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어 가해자의 법적 처벌에 집중해 학교폭력이라는 ‘사건’은 해결했지만, 학생들의‘관계’는 회복시켜주지 못해 학교폭력을 완벽히 해결하지 못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모르는 진실을 조금이나마 알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학교폭력에 대한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생각의 방향을 조금 틀어서 학교 안의 학생들의 ‘관계’에 대해 이해하고 물 아래에 잠겨있는 빙산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학교공동체 전체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학교폭력 해결을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하고 학교폭력 해결을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까지의 이야기
지금까지 우리는 학교폭력이라는 ‘사건’을 해결해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학생들의 ‘관계’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해결되지 않은 학교폭력이 다시 발생하는 악순환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라고 책에서는 이야기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건’이라는 줄기를 잘라내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다시 뿌리에서 자라나는 학교폭력이라는 줄기를 없애기만 할 뿐 줄기가 계속 자라나는 뿌리를 방치해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은 『나이팅게일의 일기』에서 보여주었듯이 때리고 놀리고 사이버상에서 괴롭히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심부름이나 특정 행동을 강요하는 것 등의 우리가 매체에서 보는 잔혹함보다는 학교폭력은 일상적인 집요함이 짙다는 것과 ‘학급의 카스트’ 그림이 보여주는 학교폭력의 구조가 만드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선별할 수 없는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길로 걸어가게 되는 이러한 학교폭력의 특성을 이해하고 학교폭력의 본질적 해결을 위해서 학교폭력을 은폐하거나 너무나 빨리 법으로 넘기는 행위는 위험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또한 『김경태의 생존 수칙』에서 알려주는 아이들이 가진 무의식적인 권력 쟁탈 방법들은 재빨리 인식하고 아이들의 권력다툼 속에서 생길 수 있는 『어느 파시스트의 학창 시절』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이들의 권력다툼과 감정갈등 속에서 ‘관계’의 문제가 발생하기 전, 또는 이미 일어난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평화의 신은 있다』의 선생님처럼 아이들의 ‘관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에게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학교폭력의 본질적 해결을 위한 진실을 찾기 위한 방법을 여러 이야기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평화의 신은 없다』의 선생님이 학교폭력 가해자 아이들의 행동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학교폭력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지내왔던 것 같다. 우리는 누군가 도움을 주기를 바라며 주변에 이야기하는 피해자의 용기처럼 우리도 그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학교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치하고 진실을 찾기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 집보다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아이들이 외롭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이 책을 비롯한 모든 이가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어른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 선생님의 대사와 『그래도 연극은 계속된다』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가식을 들켜도 권력을 위해 센 척을 계속해야 했던 지금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학교폭력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을지 고민하게 하는 것은 이 책에서 내주는 학교폭력의 진실을 찾기 위해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하게 된다.
해결에 대한 믿음과 고민
학교폭력이란 무엇일까.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 또는 아이들 간의 화합을 방해하는 절대로 사라져야 할 것?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지만 이 책을 읽게 된 사람들은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이 책을 읽은 모든 사람들이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구조에서 탈피하여 학교폭력 해결에 대해서 무엇이 필요할지 깊게 고민해본다면 우리는 더욱 확실하게 학교폭력에 대해 ‘사건’이라는 줄기를 자르는 것이 아닌, ‘관계’라는 뿌리가 올바르게 자라날 수 있도록 해줄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