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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 ㅣ 블랙 로맨스 클럽
제인 니커선 지음, 이윤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다. 동화 푸른 수염을 아시는지?
사실 나는 푸른수염 동화를 알게 된지 몇해 되지 않았다. 처음에 제목을 보고 동화니까 당연히 밝은 분위기겠거니하며 읽기 시작했었는데 다 읽고난 후 뭐 이런 동화가 다있냐며 기겁했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 안 읽었다는 게 그렇게 다행일 수 없었던 동화 푸른수염. 푸른 수염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경악스러웠고 결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게다가 책의 키워드가 잔혹동화에 로맨틱 스릴러라니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아버지가 죽고 대부의 집으로 가게 된 소피아 버나드. 그녀는 그곳에서 후견인 버나드 드 크레삭을 처음 만난다. 처음 본 버나드는 소피아의 상상이상으로 잘생긴 외모와 우아함, 재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런 후견인에게 소피아는 자연스레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곧 그에게서 이상한 점들이 하나 둘 발견되고 심지어는 앞서 네 명의 아내가 있었으며 모두 붉은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알게되는데...
동화 푸른수염의 내용을 알고있는 사람이라면 예상하겠지만 이 책에서도 동화속 푸른수염만큼이나 위험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 남자가 바로 소피아의 후견인인 버나드.
나는 책을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치명적으로 위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버나드에게 빠져들었다. 대녀는 무슨.. 버나드는 붉은 머리칼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소피아를 처음부터 부인으로 맞이하려고 데려왔다. 그리고 그녀와 아슬아슬한 대화를 이어나간다.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대화 이면에 은밀한 유혹의 의도를 깔면서... 덕분에 나는 두 주인공이 10대와 40대라는 나이차를 가지고 있음에도 상황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은 일이다. 내가 그의 비정상적인 감정기복을 '언제나' 안정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던 내가 우매했다. - 327p
소피아가 오게 된 저택은 커다랗고 무언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잔뜩 풍긴다. 당연히 호기심 충만한 이 소녀는 그 비밀에 이끌린다. 결국 저택에서 이전 아내들이 남긴 사소한 것들을 하나 둘 발견하기 시작한 소피아. 그 후 그녀는 비극적으로 끝난 버나드의 네 번의 결혼에 대해 듣게되고 섣부른 동정심을 가진다. 자신은 그에게 영향력이 있으니 충분히 그의 감정기복을 전 부인들보다 더 잘 다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노예에 대한 버나드의 태도를 보고 서서히 소피아의 상상 속 버나드의 모습에 균열이 가고 드디어 소피아는 깨닫기 시작한다. 이 집이 뭔가 이상하고 버나드는 생각보다 위험한 남자라는 걸... 그러던 어느날 하나 둘 자신의 행동을 저지하며 소피아를 옥죄려하는 버나드의 태도에 갑갑함을 느낀 그녀는 홀로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기 위해 들어간 숲 속에서 목사 기디온을 만난다. 후견인에 대한 상상이 서서히 깨지자 소피아는 버나드와 반대되는 모습을 지닌 기디온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미 자신은 버나드가 쳐놓은 덫에 걸린지 오래다. 자유를 억압하고 감시하며 소피아를 자신의 손아귀에 두고자했던 버나드는 자애로운 후견인의 가면을 벗어던진 후 결혼을 강요하고 소피아는 거부한다. 결국 가족들때문에 어쩔수 없이 결혼을 결심한 소피아는 버나드의 참모습을 보고 도망갈 계획을 세우는데.. 그 순간 버나드가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맡긴 열쇠뭉치는 그녀에게 마지막 기회였다.
나는 옷장 안에 있는 모든 호화로운 드레스들을 바라봤다. 뜻밖에도 이것들이 한때 나를 설레게 만들었었다는 것을 회상하며 나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나는 단조로운 여행용 드레스 하나를 꺼냈다. 전에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은 중요해졌다. - 451p
돌아와서 생각해 보면 이 책은 한 소녀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 아이같은 소녀가 후견인의 집에서 새로운 것들을 접하며 조금씩 성장한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조그마한 이상한 점들을 애써 계속 외면해왔던 소피아가 비로소 자신의 환상을 깨고 이상함을 바로 마주하게 된 것. 하지만 저택과 버나드의 실체에 다가갈수록 소피아는 자신이 이미 달아날 수 없는 덫에 걸려버렸다는 걸 알게된다. 이 책의 결말은 동화 푸른수염을 안다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소피아가 푸른수염에게서 어떻게 벗어나게 되는지는 직접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 역시 그것이 궁금했기에 결말을 향해 빠르게 달려갈 수 있었으니까. 결말이 약간 허망한 감이 있긴했으나 나는 오히려 그래서 이 글과 잘 어울렸다라는 생각이다. 읽으면서 푸른수염 동화를 생각해서 그런지 동화같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었기에 거기에 딱 맞는 결말이 아닐까 싶다.
'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는 동화 푸른수염과 거의 비슷한 플롯을 가지고 있지만 이 책이 동화와 가장 다른점은 실제 일어났을 법한 일을 자연스레 끼워넣었다는 점이다. 노예제도를 바라보던 그 당시 남부와 북부의 시선들을 끌고 들어와 더욱 흥미를 더했고 실제 있었던 일인 것처럼 자연스레 묘사되어 있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어둡고 위험하며 음습한 퇴폐미를 잔뜩 풍기는 이 글의 분위기를 훨씬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외에 소피아가 보았던 버나드의 전 부인들(=빨간머리 자매 유령들)도 긴장감 조성에 한 몫을 했다. 버나드야 말할 것도 없고...
40대 버나드와 17세 소피아. 이 책은 분명 일반적인 로맨스는 아니다. 나는 사실 푸른수염이라는 말이 제목에 들어갔을때부터 어느정도 결말을 예상했기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로맨스가 되긴하는건가?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중반쯤 새로운 남자 기디온이 떡하니 나타났다. 반듯한 목사님 기디온은 위험한 매력을 풍기는 버나드와 모든면에서 너무나 비교되는 사람이다. 소피아가 기디온의 외모에 대해 그리 잘생기지 않았다라고 평하는 걸 보면 심지어 외모조차도 비교대상인 듯 하다. 일부러 작가님이 의도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버나드가 위험한 남자의 모습으로 두근거리게 만들었다면 기디온에게선 소년다운 풋풋함이 느껴졌다. 어쨌든 이렇게 대비되고 있음에도 그들만의 매력은 책 속에 충분히 자연스레 녹아들어 즐겁게 읽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약간의 허영심과 호기심이 충만한 10대 아가씨 소피아는 처음 도착한 버나드의 저택에서 버나드의 겉모습에 현혹되고 부에 휘둘렸다. 자신이 꿈꾸던 곳에 들어와 애써 불안한 징조를 외면하며 행복하다라고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자신의 상상이 깨어지고 그제서야 소피아는 성장했다. 이제 소피아는 자신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미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응석받이에 어리기만 했던 소녀는 이제 없다. 이제 사랑하는 기디온과 함께 할 미래가 어떻든 훌쩍 커버린 소피아는 잘 이겨낼 것 같다. 이 책은 로맨스보다 한 편의 동화같다라는 느낌이 없지않지만 잔혹동화같은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분명 이 글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