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마리의 아픔

 

  울퉁불퉁한 비포장된 길을 달리던 버스가 정류장에 멈췄다. 마리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 곳에서 내린 사람은 마리 한 사람뿐이었다. 버스가 다시 흙먼지를 일으키며 떠나자 마리는 바다의 집으로 가는 길인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경사가 그리 가파른 언덕은 아니었지만 초여름 같은 더위에 마리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리는 아버지와 친 동생 같은 보육원 아이들을 곧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리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바다의 집 보육원에는 지금 12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 동안 마리의 아버지인 윤 원장이 운영하는 보육원을 졸업해 나간 아이들도 다수 있었으며 그 중에 한 명은 민이의 아버지인 강 사장이 운영하는 조그만 카센터에서 일하는 성필용이었다.

 

 

  원장실에서 녹차를 마시던 윤 원장은 창문을 통해 마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윤 원장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윤 원장은 마리가 자신의 뒤를 이어 이 곳을 이어가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윤 원장은 마리한테 그런 고생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윤 원장은 마리가 무용가인 어머니의 뒤를 잇기를 바랬다. 그래서 여진과 이혼할 때도 마리를 여진한테 보낸 것이었다. 마리는 무용가인 어머니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 받아 춤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유명한 무용가인 어머니를 두고 있었고 천부적인 그 재능으로 자연히 사람들한테 알려져 고등학생일 때는 CF를 찍기도 했다. 하지만 마리는 어머니와는 다르게 유명세를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뜻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무용학과에 가긴 했지만 마리가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는 곳은 윤 원장이 운영하는 보육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윤 원장은 마리한테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힘든 일을 잇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의사는 윤 원장한테 길어야 1년이라고 말했다. 윤 원장은 폐암 말기였다. 1년 후 자신이 떠나게 된다면...... 그 땐 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이젠 마리한테 이 아이들을 부탁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윤 원장은 마음이 복잡했다.

마리가 노크를 하고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버지, 저 왔어요.”

“왜 또 왔니? 오지 말라고 했잖니? 이러면 니 어머니가 싫어한다고. 넌 니 어머니 곁에 있어야 돼.”

“어머니가 싫어해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어머니는 명성밖에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니 어머니를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윤 원장이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진 용서하셨는지 몰라도 전 아직도 그 날을 잊을 수 없어요. 전 그럼 나가서 일 할게요.”

마리는 원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마리는 아버지를 존경하는 만큼 어머니를 미워했다. 어머니가 가족도 내팽개친 채 명성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마리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의 일도 그랬다. 어머니는 그 때 무용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 인기 때문에 공연도 거의 매일 잡혀 있어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계속 피를 토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던 마리는 어머니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 극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마리가 극장 관계자한테 들은 말은 공연이 끝나는 대로 전화를 한다는 어머니의 말이었다. 그 날 마리는 어머니한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어떻게 명성을 위해서 가족을 버릴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장실을 나온 마리는 아이들 점심 준비를 하기 위해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걸어가다가 식당 옆 프로그램실에서 소녀의 기도라는 피아노곡이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프로그램실은 토요일까지는 만들기, 글쓰기, 그림 그리기 등 수업이 있었지만 일요일은 수업이 없었다. 그 곳을 일요일 날 쓰는 사람은 피아니스트가 꿈인 수아 밖에 없다는 것을 마리는 잘 알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리의 예상대로 수아가 의자에 앉아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수아는 누가 온 것 같아 피아노 연주를 멈추고는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문 앞에 사람의 형체가 있는 것만이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누구에요?”

“나야, 마리 언니.”

마리는 대답을 하고는 피아노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 수아한테로 걸어갔다.

“언니 왔어요?”

수아가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전에 연주한 곡이 소녀의 기도지? 정말 훌륭하던데.”

“너무 띄우지 마세요. 피아니스트 되려면 아직도 실력이 한참 모자라니까.”

“난 띄우는 거 아니야. 수아, 넌 틀림없이 피아니스트 될 수 있을 거라고. 그건 그렇고 눈은 좀 어때?”

“점점 더 안 보여요. 의사 선생님이 이런 진행속도라면 내년쯤이면 완전히 시력을 잃을 거래요.”

수아가 담담하게 말하는 바람에 마리는 오히려 더 가슴이 아팠다.

수아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답지 않게 침착하고 진중했다. 그런 수아가 중학교 1학년이 되더니 이상해졌다.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는 아이인데 식사를 할 때마다 음식을 흘리기 시작했고 어딘가에 자꾸 부딪혔다. 마리는 수아가 이상해서 수아한테 어디 아프지 않냐고 물었지만 수아는 괜찮다고만 했다. 하지만 수아의 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걱정이 된 마리는 수아를 데리고 춘천 시내로 나와 안과로 갔다. 시내에 있는 조그만한 병원이었는데 의사는 망막색소변성증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으로 가서 자세히 검사를 받아 보라고 했다.

“큰 병원으로 가라뇨? 위험한 병인가요?”

그 때까지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마리가 놀라서 물었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서서히 시력을 잃어서 실명에 이르게 되는 병입니다. 현재로서는 원인을 알지 못하기에 치료법도 없는 병입니다.”

“예?”

마리는 너무나 놀란 상태로 수아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언니, 나 무서워. 나 방금 전에 의사 선생님이 말한 그 병에 걸린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니가 앞을 못 보게 된다니 그게 말이 되니?”

마리는 그럴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운명은 잔혹했다. 큰 병원에서의 검사결과 수아는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린 것으로 진단되었다. 의사는 약으로 진행속도를 조금 늦출 수 있을 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혼이 나간 상태로 마리 언니와 같이 병원을 나온 수아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언니 나 어떡해? 이제 어떡하냐고?”

그 날 이후 수아의 중학교 생활은 최악이었다. 심지어 몇 번이나 죽으려고도 했었다. 그렇게 절망 속에 빠져서 헤어나올 수 없을 거 같이 살던 수아는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마리 언니와 같이 천재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이주희 피아노 독주회를 보러 가게 되었다. 그 날의 공연은 수아한테 다시 살 희망을 주었다. 수아는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환상적인 선율에 사로잡혔고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 후로 수아는 피나는 연습을 했고 원래부터 음감이 뛰어난 아이여서 수아의 피아노 실력은 급성장했다.

“난 그만 나가볼게. 점심 준비해야 해서.”

마리는 음악실을 나왔다.

 

  여진은 집에 돌아와 있었다. 10시가 넘었는데도 마리는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딸이 어디를 갔는지 여진은 짐작이 갔다. 그렇게 그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귀가 따갑도록 얘기했는데도 딸은 자신의 말을 조금도 듣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이혼한 남편인 상훈때문이었다. 여진은 그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무용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여진은 상훈의 재능을 사랑하여 그와 결혼했다. 여진이 상훈과 결혼 할 때 상훈은 무명 화가였다. 하지만 여진은 상훈의 재능을 알아차렸다. 그의 재능이라면 틀림없이 국선에 입선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국선에 입선할 생각으로 그림에 열정을 쏟아 붓던 상훈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림을 포기하고 춘천 외곽지역에서 보육원을 하기 시작했다. 여진은 배신 당했다고 느꼈다. 상훈의 마음을 돌리려고 갖은 설득을 다 했으나 한 번 마음을 정한 상훈은 결코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결국 그 일로 부부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여진은 이혼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때 아이가 생겨 이혼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마리는 그렇게 금이 가 있는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마리의 출생으로 상훈과 여진은 부부라는 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전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위태위태하게 유지되던 관계는 마리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의 일로 깨져버렸다. 그 날, 여진은 공연이 있어서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극장 관계자가 딸이 전화를 했다고 했다. 하지만 공연을 앞두고 있던 여진은 공연에 집중해야 겠다는 생각에, 또 별 일 아닐 거라는 생각에 끝나고 전화를 한다고 딸한테 얘기해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진은 공연히 끝난 후 집에 전화를 했다. 하지만 신호만 계속 갈 뿐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순간 여진은 무언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집에 돌아왔는데 집에 아무도 없었다. 남편하고 딸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찾아 나서려고 했지만 어디서부터 찾아야 될 지도 막막해서 집에서 가만히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1시간이나 지난 후에야 마리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여진은 급히 물었다.

“아버지가 걱정되긴 하시는 건가요? 하마터면 아버지가 돌아가실 뻔했다고요? 그렇게나 명성이 중요하세요?”

여진은 화가 잔뜩 나 있는 딸의 말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여진은 더욱 더 공연에 매달리며 명성을 쌓아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그것 밖에 남은 게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1년 후 여진과 상훈은 마리는 여진이 키우기로 하고 합의 이혼했다.

마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또 니 아버지 있는 곳에 갔다 오는 거야?”

여진이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예.”

“그런 곳엔 더 이상 가지 말라고 했잖아? 도대체 왜 그렇게 말을 안 들어? 대체 그 병신이나 거지 같은 녀석들이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거야?”

“그 애들은 병신이나 거지가 아니라 제 동생이에요.”

“동생?”

여진은 코웃음을 쳤다.

“너랑 피 한방울 썩이지 않은 애들인데 뭐가 동생이라는 거야? 정 그렇게 내 말을 듣지 않겠다면 이 집에서 나가 버려!”

마리는 아무 말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옷가지를 대충 가방에 넣어가지고는 문을 열고 나왔다. 딸의 행동에 여진은 기가 막혔다.

“뭐 하는 거야?”

“나가라면서요. 그래서 나가는 거에요.”

마리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여진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그대로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딸을 잡으려고 쫓아가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다 전남편인 상훈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집을 나온 마리는 잠실역에 있는 공중전화로 희연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방에서 경영학 공부를 하고 있던 희연은 핸드폰이 울리자 책상 위에 놓아둔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마리.”

“이 시간에 웬 일이야?”

“나 너희 집에서 자면 안 돼?”

“응?”

“가출했어. 어머니랑 싸웠거든.”

희연은 기가 막혔다.

“지금 어디야?”

“잠실역.”

“기다리고 있어. 지금 바로 갈 테니까.”

희연은 통화를 마친 후 옷을 갈아입고는 거실로 내려왔다. 거실에선 아버지, 어머니, 동생이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어디 가니?”

채 여사가 물었다.

“친구가 잠깐 보자고 해서요. 금방 들어올게요.”

집을 나온 희연은 운전면허를 따자 아버지가 사 준 그랜저를 차고에서 꺼내 타 가지고는 잠실역으로 갔다.

 

 

  희연은 잠실역에 도착했다. 잠실역 5번 출구에 가방을 들고 있는 마리가 보였다. 희연은 차를 몰고 그 곳으로 갔다. 마리는 번쩍번쩍 빛나는 검은색 그랜저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희연이 조수석쪽의 창문을 내리고는 말했다.

“타.”

마리가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장관 딸은 역시 다르군. 학생이 그랜저라니? 난 꿈도 못 꿀 일이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가출이라니? 어디 가서 얘기나 좀 하자.”

희연이 다시 악셀레이터를 밟으며 출발했다.

 

 

  희연은 가까운 곳에 있는 삼원빌딩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 건물 1층에는 커피숍이 있었다. 희연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마리와 함께 1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늦은 시간이라 커피숍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두 사람은 중앙에 놓인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나, 너희 집에서 며칠만 지내게 해 줘. 어머니랑 싸우고 집을 나왔는데 막상 나오고 보니 갈 데가 없더라고.”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희연이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그렇게 해 줄 수 있지?”

“우리 부모님은 가출한 여자 받아주지 않을 거야.”

“가출이 아니라 출가인 거야. 가출은 미성년자나 하는 거고 난 성인이라고.”

희연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빤히 마리를 보았다. 마리가 계속 말을 이었다.

“시골에서 친구가 올라왔는데 아직 집을 못 구했으니까 며칠만 지내는 걸로 하면 될 거야.”

“잠실이 시골이냐?”

“우리 아버지는 춘천 시골에 살고 있으니까 내 말이 완전 거짓말은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렇게 하는 거다.”

“난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

“넌 천주교 신자니까 나처럼 어려운 사람 도와줘야 하는 거야. 그래야 이 다음에 니가 바라는 대로 천국 갈 수 있다고.”

“점점 하는 말하고는...... 커피 다 마시면 일어나자.”

“역시 니가 내 부탁 들어줄 줄 알았어. 넌 세상에서 가장 착한 애니까.”

커피를 다 마신 후 희연과 마리는 커피숍을 나왔다.

 

 

  희연은 마리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한 장관과 채 여사는 희연이 같이 데리고 온 젊은 아가씨를 보고 놀랐다.

“누구니?”

채 여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학교 무용학과 다니는 제 친구인데 춘천에서 지금 올라왔어요. 집 구할 때까지만 잠깐 제 방에서 같이 지내게 했으면 하는데 그래도 되죠?”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얘기하지 왜 지금에 와서 얘기를 하니? 우리가 그런 부탁도 안 들어줄 거 같니?”

한 장관이 나무라듯 말했다.

“죄송해요.”

“근데 학생은 그럼 그 동안 춘천에서 학교 다닌거야?”

채 여사가 물었다.

“예......뭐.”

“힘들었겠네.”

2층에 있는 자기 방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던 나연은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문을 열고 나왔다.

“누가 왔어요?”

나연은 계단으로 내려 오려다 발을 잘못 디뎌서 굴러 떨어졌다.

“다치지 않았니?”

채 여사가 걱정이 되는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요. 저 몸 하나는 튼튼하니까.”

나연이 일어났다.

“어쩜 저렇게 덤벙대는지......내 동생이야.”

“안녕. 윤마리라고 해.”

“안녕하세요. 한나연이에요. 근데 언니 정말 이쁘네요. 저 보다 이쁜 사람은 처음 봐요.”

“너 보다 이쁜 사람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어.”

“그래도 언니보단 내가 이쁘다고. 유진 오빠도 언니보다 내가 이쁘다고 했어.”

“넌 정말 언제 철들래? 저흰 그만 올라갈게요.”

희연은 부모님한테 인사를 하고는 마리를 데리고 2층에 있는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희연이의 방은 넓고 깨끗했으며 오른쪽 벽쪽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으며 그 옆에 놓인 책장에는 어렸을 때부터 희연이 피아노 콩쿨대회에 나가 탄 상장들이 이쁘게 전시되어 있었다.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마리가 말했다.

“뭐가?”

“왜 음대에 안 간 거야? 난 너 음대 갈 줄 알았어. 그 재능을 썩히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재능은? 별로 잘 치지도 못 하는데.”

“정말로 하는 소리야? 아니면 예의상 하는 소리야?”

“응?”

“어느 쪽이야?”

“그만 자자. 벌써 12시가 넘었다고.”

희연은 대답을 피하며 옷장에서 자기가 입을 잠옷과 여분의 잠옷을 꺼내서 한 벌은 마리에게 건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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