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세계사 - 전면개정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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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된 세계사 스터디셀러일 것이다. 현금 역사교육은 국사교육의 범주를 못 벗어나고 있다. 세계사 교육은 심각한 내실의 빈곤을 겪고 있다. 

"세계사"라는 과목 자체가 수능 응시 때 비인기과목인 세계사를 선택하지 않는 이상, 대학입학 이래로 제대로 습득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미국사와 유럽사가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적어도 제도적 민주주의가 성취된 시대를 사는 우리는, 근현대 세계를 뒤흔든 몇 가지 사건을 통해 과거를 반추할 필요성을 요청받는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책"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수십 년간 담당해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사를 크로놀로지(연대기) 순으로 학습하면 암기할 것 덩어리다. 그러나 '문제적 사건'을 중심으로 세계 판도의 변화를 이해하면,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이 공간이 나의 개체가 그저 단독자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역사적 변화의 업(業) 위에서 삶의 공간이 놓여졌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작가 유시민은 개정판 서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는 예전의 내가 있었다. 열정은 넘치지만 공부는 모자란, 열심히 배우지만 사유의 폭은 좁은, 의욕이 지나쳐 논리적 비약을 일삼는, 공감하기보다는 주장하는 데 급급한, 현학적 문장을 지성의 표현으로 여기는, 글스기의 기초가 약한 젊은 이가 보였다. 그런 모습으로 누구의 서가에 놓이는 것을 더는 감당하기 어려워서 책을 거두어 들였다."

이러한 반성 위에서 유시민은 절판을 시켰음에도 책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있고, 더 나은 책을 쓰고 싶다는 개인의 욕심도 작용하여 완전히 새롭게 문장을 개고하여 개정판을 출간하노라 천명하고 있다. 나도 20대 젊은이이기 때문에, 젊은 날의 치기가 무엇인지 잘 안다. 부족한 배움의 지평 위에서 열정만이 넘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이다. 허나, 누구든지 살아가는 데 큰 틀은 젊은 날 어떤 사유의 구조를 머릿 속에 담아놓고 살아왔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서 지적인 통찰과 여유가 늘면, 각론에 있어서 세부적인 보충을 요할 뿐이다. 유시민 역시 자신의 부족함을 지난 30여년간의 세월의 흐름을 통하여 쌓아온 새 통찰로 채웠을 뿐, "거꾸로 읽는 책"의 기출간 취지에는 반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면서 중요한 사건과 유시민의 해석, 인용된 자료를 운운하기 시작하면 이 리뷰가 한없이 길어질 것이다. 그러나 꼭 부기해두어야 할 사항은, 유시민은 여기서 그동안 출간된 새로운 연구서적과 번역서, 교양서를 꼼꼼하게 참고하여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가치를 더 빛나게 만들어주었다는 점이다. 상당수 책의 레퍼런스가, 1980년대에 이 책을 쓰면서 기참고한 서적도 물론 있으나, 박노자나 정욱식 등의 최근 연구서를 비롯하여 2018~20년 사이에 출간된 최신 서적들이 압축적으로 인용되어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이 많이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에필로그>에서 유발 하라리나 앨런 튜링 등의 책으로부터 유시민은 과학사적인 관점이 현대 역사학의 이해에서 중추적인 테마임을 일러준다.


역사학을 포함한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전에 대한 정확한 인용과 (재)해석이다. 2차 자료를 운운하며 "~카더라 통신"을 근본으로 역사를 논하기 시작하면, 정밀한 역사적 맥락과 사계의 연구경향, 그리고 원출처의 정확한 의미를 놓치게 된다. 이 점에서 유시민은 전문 사가가 아니지만, 시대의 흐름에 부단히 따라오려고 노력하는 점이 눈에 보인다.


기록학과 조선시대사를 전공한 전주대 역사콘텐츠학과 오항녕 교수는 유시민의 전작 <역사의 역사>에 대한 서평에서(<프레시안>에 연재됨), 역사 전공자가 그토록 많은 역사서를 다루긴 어렵다고 말하면서 유시민이 그 대저들을 모두 한 책 속에 압축해놓은 것의 경이성(?)을 논한 바 있다. 실제로 그렇다. 역사학은 일차적으로 지역, 즉 한국이냐 동양이냐 서양이냐, 그리고 세부 시대사 전공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연구자들은 좁고 깊게 글을 쓰게 된다. 역사 전문가인 오 교수가 이런 류의 책을 쓰게 되면, 한 사건이나 한 인물, 한 역사고전을 두고 한우충동하는 논의를 세부적으로 엄청나게 펼쳐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엄밀성은 당연히 늘어나고, 역사를 바라보는 중층적인 시각을 깊게 배울순 있겠지만 필연적으로 가독성이 떨어지고, 독자층은 좁을 수밖에 없다.


지식 소매상 유시민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다만 깊이있는 학습을 위하여 독자들은 유시민의 이 책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얻어 전문 역사 연구서나 논문을 통해 풀어가는 심층 학습의 마중물로 삼으면 좋겠다.

볼셰비키혁명과 소련의 해체 과정은 이카로스의 신화를 떠오르게 한다. 크레타섬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둘 미궁을 만든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의 등에 밀랍으로 날개를 붙여주면서 적당한 높이로 날아야 바다의 습기와 태양의 열기를 피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비상의 쾌락에 취한 이카로스는 너무 높이 올랐다가 밀랍이 녹아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다. 밀랍이 태양열을 견디지 못한 것처럼, 볼셰비키의 이상주의는 권력의 쾌락을 이겨내지 못했다. 사회혁명으로 바꿀 수 없는 생물학적 본성이 호모사피엔스에게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미처 몰랐던 듯하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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