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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 ㅣ 오늘의 젊은 작가 8
김엄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1월
평점 :
어두움과 비
그치지 않는 비 때문에 몇 개의 도시가 물에 잠겼다.
넘쳐 나는 비 때문에 괴질이 확산되었다.
원인 모를 스파크와 대형 화재가 빈발했다.
사람들은 종종 번개를 맞았다.
어쩌면 a도 번개를 맞았을 수도 있었다.
E는 지쳤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E는 이제 어두움과 비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그는 어두움과 비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덜 어둡거나 더 어덥거나. 창밖은 늘 어두웠다.
E는 자주 생선 구이를 먹었다...
p.66
------------ 일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문앞에 누런 박스가 놓여 있었다. 식탁위에 올려놓고 포장지를 칼로 뜯었다. 박스를 뜯을때 바로 옆에 있던 가위는 일부러 쓰지 않았다. 수고를 들여 칼을 찾았고, 박스 틈새를 그어가며 깨끗하게 열려고 애썼다. 김엄지의 <주말 출근 ..>어쩌고 하는 책과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등 모두 네권이 들어있었다. 내용물을 확인할때의 그 기분도 잊지 않고 쟁여두었다.
샤워를 했다. 물을 틀자마자 오줌이 마려웠다. 욕실 바닥에 갈기고, 샤워기로 씻어내렸다. 건조했던 피부는 물과의 첫번째 접촉에 움찔 놀랐다. 딱딱하게 얼어붙었던 몸이 말랑말랑해졌다. 중간에 샤워기가 제멋대로 꾸엑거리며 찬물을 쏟아냈고, 내 입에서는 욕이 튀어 나왔다.
샤워를 끝내고 욕실 문을 열었다. 달궈진 맨살에 낯선이의 차가운 손이 얹어지는 기분이었다. 소름이 돋아서, 도망쳐야했는데, 그전에 반드시 확인할게 있었다. 거실 블라인드. 예상대로 내려져있질 않아 아파트 옆동에서 우리집 거실이 극장 스크린 처럼 보일터였다. 수건으로 가운데를 가리고, 복도를 가로질러 큰방으로 달려야만 했다. 드라이기를 향해.
이때 중요한 건 남은 한 팔(다른 팔은 수건을 붙들고 있어야하니까)을 크게 휘저으면서 최선을 다해 느리게 뛰는 척(?) 해야한다. 그래야 큰 딸과 아내가 웃는다. 예상대로 소파에서 놀고있던 딸과 티비를 보고 있던 아내가 수건 하나를 걸치고 뛰는 덩치 큰 아빠의 5초짜리 촌극을 보고서 깔깔거렸다. 이것으로 나는 나의 존재가치를 증명한 셈이다.
두살 난 아들은 지 누나와 엄마가 웃으니까 따라서 웃는 것 같다.
몸을 말리는 동안 호기심이 많은 딸 아이가 큰 방문을 열고 튀어 들어올지도 모른다. 최대한 빨리 드라이기로 머리털을 말리고, 가운데 털도 말렸다. 발가락 사이를 말리고 가슴과 허벅지 위주로 바디로션을 발랐다. 팬티를 입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이제부터 천천히 해도 된다. 그때서야 생각이 나는 건 바디로션과 드라이질의 순서였다. 어제도 그랬던것 같다.
아내는 여자가 요리라는 걸 왜 해야하는지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 하는 여자다. 그래놓고 맨날 저녁은 집에와서 먹으라고 전화가 온다. 집에서 밥을 먹어도 지랄이고, 먹고 들어오는 날은 밖에서 먹는다고 지랄이다. 그래도 둘중 하나를 고르라면, 집에서 먹는 걸 좋아한다. 되도록 그럴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식탁에 앉았다. 김치찌게였다. 개-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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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스타일'을 염두해두고 뭔가를 써봤는데, 전혀 배껴지지가 않는다. 그냥 바보짓 한 것 같다. 문득, 나와는 전혀 다른, 작가가 자리한 '그 장소'가 궁금해진다.
'그 장소'란 수인囚人과 비슷한 테마다. 세상에는 80억이 넘는 인구가 있고, 같은 숫자의 작은 감옥이 있다. 세 개의 창살 밖으로, 무한의 별들이 반짝이는 독방. 때로는 고된 노역을 끝내고, 저녁에는 별을 볼수 있는 자기만의 방. 어쩐 일인지 대부분의 수인囚人들은 별을 보는 일에 별 관심이 없다.
그 갖힌 공간에서 '별을 보는 일', '스타-일' 을, 나는, 말 한다.
어둡고 비가 오는 곳에서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