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꿰맨 심장
카롤 마르티네즈 지음, 전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처음 20페이지를 읽어내는데 상당한 집중력이 요구된다.
첫페이지 몇 줄만 인용해보자면,
내 이름은 솔레다드.
나는 안지도 못하는 죽은 팔과 무용지물인 큼지막한 손을 단채, 메마른 육신들의 땅에서 태어났다.
어느 담벼락 뒤로 숨어들어 몸을 풀기까지 엄마가 삼킨 숱한 모래알들이 내 핏속으로도 흘러들었다.
내 피부 밑에는 그칠줄 모르는 긴 모래시계가 숨어 있다.
태양 아래 발가벗고 있으면 내 몸을 지나가는 모래가 투명하게 비칠지도 모른다.
횡단.
이 모래가 언젠가 전부 사막으로 돌아가야한다.
어느 순간부터 아마도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런 종류의 문장들을 읽지 않기로 한 것 같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첫번째 이유로, 나에게는 이러한 문장을 쓰는 재능이 없기 때문이라는 자각에서다. 그래서 즐기지도 않기로 했다. 즐겨보고 싶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는 의미다. 순전히 기회비용 측면에서다. 솔직히 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다. '읽기 싫어도 봐야하는 책'과 '읽지 말아야지하고 정해 놓은 책'은 엄연히 다른 분류인데, 그러니까 '꼭 봐야할 책' 더하기 '읽기 싫은 책'까지 읽어야할 걸 생각하면, 제기랄... 세상에는 책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러니까 <꿰맨 심장>은 읽지 않기로(되도록이면) 한 책에 속한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게 독서이고, 나는 <꿰맨심장>은 깔끔하게 완독해버렸다. 하루 두시간씩, 딱 일주일이 걸린 것 같다. 잘 알려진 영화 <매드맥스>가 영상미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말하려는 것처럼, <꿰맨 심장> 역시 스타일이 곧 작품의 존재가치다. <매드맥스>나 <꿰맨 심장>류의 작품은 내 경험상 '호불호'가 양극단으로 갈리는 작품들에 속한다. 빨간내복을 입고 달리는 자동차 보닛 위에서 기타를 치는 장면이 영화에서 도대체 왜 필요한지 건지, 그걸 '이해하려는 관객'들에게 <매드맥스>는 '별 그지같은 영화 다보겠네'라는 말을 들을게 뻔하다.
이해하라고 만든게 아니니까.
어쨌거나, <꿰맨심장>은 소개대로 <백년의 고독>이 참조되어야 하는 책인것 같고, 서사구조가 튼튼하다기 보다, 튼튼한 배가 서사구조라는 큰 강를 타고 흐르는 것 같아서 심심치않게 잘 읽힌다.
구토가 날 만큼 잘 읽힌다고 써야, 몇 몇은 낚일테니까.
두 번 다시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니 하는 책은 절대 읽지 말아야지.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꼭 읽고 싶은데 고민이다.
PS. 난 순전히 '꿰맨 심장'이라는 제목에 낚인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