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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푸른 벨벳 올가미
밀밭 / 튜베로사 / 2022년 4월
평점 :
회귀가 여주인공에게만 일어난게 아니라 남주인공과 악역을 포함해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이루어지는 소설은 몇 번인가 봤지만 그 중에서도 이 작품처럼 원수를 갚으려고 이를 가는 악역의 입장을 나름대로 정성껏 조명해준 작품은 단편 중에서는 드물어서 신선했네요. 서로가 서로에게 원한을 품어서 회귀 후에는 선수필승으로 먼저 죽이려드는 관계가 스릴 있었습니다.
다만 여주인공이 정보국 엘리트치고는 너무나 어리숙하고 천진한데다 남주인공의 노골적인 유혹에 허술하게 넘어가는게 어이없었습니다. 딱 봐도 죽기 전에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언니의 복수를 핑계로 자신이 대신 위장결혼해서는 하는 일이라곤 주어지는 쾌락에 함락되는 것뿐이라 설정값에서 기대되는 유능함이나 총명한 매력을 느끼기 어려웠네요. 중요한 비밀을 숨기고 있는 남주와 담판을 짓는 장면에서 상대의 속내를 밝혀내기 위해 한다는 일이 머리를 쓰는게 아니라 고작 미인계라는게 실망스러웠고요. 본편 내내 언니와 남주에게 피보호자 취급을 받다가 드디어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게 에필로그인데 사실 에필은 서비스씬이기 때문에 딱히 긴장감을 느낄 구석 없이 그냥 짜여진 무대에서 그럴 듯하게 연기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남주인공은 그냥 이런 부류의 작품에서 예상할 만한 계략남, 집착남, 변태 같은 순정남이어서 전형적이라는 인상이 컸네요. 푸른 수염이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고문 전문가라는 점은 특색있었습니다만, 워낙 여주한테 보이는 변태적인 다정남의 인상의 지배적이라 가학적인 냉혈한인 군인의 모습과 매끄럽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게 아쉬웠습니다.
후반부의 잠입액션 스릴러 파트는 오히려 애정씬보다 더 흥미로웠습니다. 서로를 의심하면서도 육욕에 빠지던 앞선 부분들보다도 주연 셋이 적의 함정에 뛰어들어 일망타진하는 전개가 군부물다워서 좋았네요. 다만 상황을 논리적이고 개연성있게 매끄럽게 진행시키기보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만으로 진행시키는 소위 입전개가 다소 도드라졌고, 설명을 듣긴 들었는데 왜 이런 상황이 펼쳐졌는지에 대한 이해가 잘 가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작가가 쓰고 싶은 장면은 명확한 것 같은데 그 주요 장면과 다음 주요 장면 사이를 연결짓는 흐름의 묘사는 약한 것 같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