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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픽션 ㅣ 호러픽션 1
양국일.양국명 지음 / 청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호러픽션은 올여름 처음으로 읽게된 공포소설이었는데,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고 간담 서늘한 공포와 재미를 안겨줬다.
이작가들의 책은 붉은벽돌 무당집을 너무 좋게 읽었던 지라 기대가 무척 컸는데, 이번 작품은 그들의 전작보다 훨씬 좋았다. 한마디로 진일보한 공포를 선보인다.
이작가들의 소설이 좋은 이유는 무엇보다 프로다운 면모 때문이다. 오랜 집필경력이 말해주듯 일단 문장이 안정감 넘치며 구성도 탄탄하다. 또 공포소설 카페를 10년 넘게 운영해 온 노하우가 집결된듯 정말 무섭고 다양한 색깔의 공포를 만들어 낼 줄 안다는 것도 장점이다.
맨 앞에 실린 '침입자들'은 붉은벽돌 무당집에 실린 단편 '공포의 방문객'의 연작으로 보이는 작품으로 역시 입없는 괴물이 등장하는 공포소설인데 독특한 상상력과 영화를 보는 듯한 스피디하고 박진감넘치는 전개가 돋보인다. 연작이 맞다면 이 소재로 더 많은 이야기거리가 나올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두번째 작품 '자살주식회사'는 자살을 원하는 이에게 자살을 집행하는 킬러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문제는 처음에 죽음을 원했던 이가 막상 죽음에 임박하자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는 것이다. 죽음과 삶에 대한 역설적인 고찰이 인상적이었이며, 깔끔한 반전도 좋았다.
세번째 작품 '괴물이 있다'는 작가가 공들여 구축한 듯 탄탄하고 빈틈없는 구성력이 돋보였다. 가정 폭력이 어떤 식의 공포와 비극을 낳으며, 폭력이 인간을 어떤 괴물로 만드는 지를 섬뜩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네번째 수록작 '만월의 살인귀'는 누이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두 형제가 세상의 악을 향해 나름의 방식으로 앙갚음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미성년 범죄자에 대한 사회의 관대한 처벌에 일침을 가하는 문제작이었다.
다섯번째 작품 '사자와의 하룻밤'은 외할머니의 장례식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겪게되는 기이하고 끔찍한 경험을 담고 있다. 마지막까지 다 읽고나면 작가가 의외로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을 알게된다.
여섯번째 작품 '꿈속의 그녀'는 예지몽 능력을 지닌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는데,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독특한 전개방식과 향수어린 문장이 어우러지며 새로운 공포와 감동을 준다. 인상깊은 것은 소설 초반 남자의 어린 시절 경험과 겹쳐지는 마지막 장면인데, '괴물이 있다'와 마찬가지로 구성력이 돋보였다.
일곱번째 작품 '붉은 장미'는 작가들이 운영하는 카페를 통해 이미 읽은 바가 있는 작품이었다. 그때도 좋았지만 다시 읽어도 역시 좋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주는 감동과 여운은 여러번 읽어도 여전하다.
여덟번째 작품은 '묵도의 밤'으로 수록작 가운데서 가장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엽기적인 살인(거의 고문에 가까운) 행각과 수위높은 폭력 묘사가 책장을 넘기기 힘들게 만들며, 마지막 반전이 주는 충격도 상당히 크다. 그런데 반전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본다면 왜 이작품이 그토록 잔인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읽는이에 따라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것 같다.
아홉번째 수록작 '향전'은 이미 읽은 이들이 찬사를 보냈듯 훌륭한 작품이었다. 시대 배경이 조선시대인것도 특이했고, 귀신이 등장하는 전통적인 공포의 방식도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작품의 주제가 공포라는 장르에 잘 녹아 있는 게 좋았다.
마지막 작품 '유령의 집에서'는 흉가체험을 하는 젊은이들의 끔찍한 경험담을 담고 있는데, 다소 짧은 분량에 여름밤에 읽기에 부담없는 괴담형식의 공포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강력히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은 수록작 가운데 '꿈속의 그녀'와 '향전', '붉은 장미', '만월의 살인귀' 등이다.
책소개 글에도 나와 있는 '공포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문구처럼 과연 두 작가의 머릿속에서 모두 나온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말 다양한 공포가 등장하는 소설집이었다. 공포소설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지닌 작가들임이 분명한 것 같으며, 이들의 다음 작품도 어서 볼 수 있길 기대한다.
열 작품이 수록되어 있지만 아쉬운 것은 의외로 금방 읽힌다는 것이다. 책이 너무 얇은게 가장 아쉬웠다. 더 많은 이야기와 더 많은 분량으로 오래 책을 붙들고 있길 바랬지만 하루만에 금방 다 읽어 버렸다. 아직 여름은 길고 무더위는 여전한데 이제 또 뭘 읽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