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 베를린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채혜원 지음 / 마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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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언제부터 독일을 좋아했는지는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내게 영업한 독일 뮤지컬을 보면서부터가 아닐까 짐작한다. 대학에 와서는 독일어 교양수업을 두 학기나 들었고(다 까먹은 지 오래) 독일어 노래를 찾아 듣거나 정식 개봉하지 않았지만 보고 싶었던 독일 영화를 틀어 준다길래 낯선 도시에서 거의 밤을 샌 적도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은 국제여성공간(International Women* Space) 활동가인 저자가 지난 5년간 독일에서 페미니스트들과 보낸 연대의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든든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지내며 '나는 혼자가 아니다'란 감각을 꾸준히 느끼는데, 그 경험이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은 국제여성공간 활동을 기반으로 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베를린을 펼친다. 여성공동주택인 '베기넨호프', '힝켈슈타인 인쇄소' 같은 여성공동사업체, 베를린 최초의 여성서점인 '라브리스'와 페미니즘 아카이브인 'FFBIZ' 등 베를린 페미니스트들의 투쟁과 연대를 좇고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저자의 시선이 더해진 도시는 내 머릿속에서, 단순히 젊음과 자유의 상징이라는 전형적인 이미지보다 한층 더 구체적이고 다채로워진다.

얼마 전 40대가 되면 어떻게 살고 있기를 바라느냐는 친구의 질문을 받았다. 일단 나처럼 혼자 살고 있을 친구들과 한 곳에서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각자의 공간이 보장되면서도 거실, 부엌 등 일부를 공유하는. 그래서 베기넨호프 이야기를 읽었을 때 더욱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상상하는 미래가 어딘가에서는 이미 현실이라는 걸 알기만 해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나는 내가 혼자 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혼자 서 있을 때가 있지만." 박솔뫼의 문장이 떠오른다. 혼자 서 있(고 싶)을 때에는 혼자 서 있는 사람으로, 그러나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늘 지닌 채 사는 것이 지금 내가 바라는 자유의 모습이다.
책을 읽으며 내내 부러웠던 것은 독일 내에 여러 종류의 차별, 억압, 부조리에 대해 말하고 활동하는 사람이 항상 있다는 것 그리고 정부의 해결 의지도 나름대로 강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피해자가 자신의 괴로움을 먼저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이상 들어주지 않는 사연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 "독일은 남녀가 평등하지 않나요?"라고 묻는 일부 사람들처럼 순진하고 안일한 생각일 수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아나스타지아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변희수 하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어디보다는 낫지, 같은 식으로 안주하기보다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몇 발자국 더 내딛은 미래의 예시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베를린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중 하나일 테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역사를 쓰는 데 기여하지 않으면 역사는 억압되고 숨겨지고 무시됩니다", 그러니 걸어 나가는 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꾸준히 기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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