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여자 - 오직 한 사람을 바라보며 평생을 보낸 그녀들의 내밀한 역사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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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500년 조선 역사 속 27인의 왕 옆에는 36인의 왕후(후궁 출신 4인 포함), 101인의 후궁, 그리고 통계조차 낼 수 없이 수많은 궁녀가 있었다.

김종성의 ‘왕의 여자’에서는 왕후, 후궁, 궁녀의 기원, 자격, 선발 과정, 인원, 직무, 품계, 사랑, 출산 등을 각종 표와 통계를 통해 소개한다. 마치 그 시절 직급을 보는 듯해 흥미진진하다.

실제로 정식 궁녀는 ‘나인’이라고 한다. 나인은 격일제로 근무했으며, 12시간을 일한 다음에는 36시간을 쉬었다. 이렇게 많은 여가 시간을 궁녀들은 궁체라고 하는 글씨연습을 하거나 투호 등의 놀이 또는 바느질이나 뜨개질 등을 하면서 보냈다. 나인이 된 후 궁녀로서 최고직위인 상궁이 되려면 30년이 필요하다.

책은 4세에서 10세 사이에 궁녀로 선발되어 왕 한명에게 일생을 바쳐야 했던 궁녀, 후궁, 왕후의 모든 것을 소개한다.

보통 ‘왕의 여자 일생’ 하면 아름다운 궁녀가 우연한 기회에 왕의 눈에 띄어 데이트를 즐기고 임신을 하여 후궁을 거쳐 왕후가 되는 과정을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실제 궁녀, 후궁, 왕후의 생활은 철저하게 계산된 정치의 산물이었다. 궁녀를 고를 때 일차적으로 중요시 한 점이 후보자가 아닌 그 가족들이었다는 점만을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가족과 본인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 상궁과 색장나인이 궁 밖으로 나가 면접을 실시한다. 말 그대로 출장감정인 셈이다.

이 과정 중에서 빠트릴 수 없었던 처녀성 확인은 황당하기 까지 하다. 의녀가 앵무새의 생혈(生血)을 여자 아이의 팔목에 묻혀서 묻으면 처녀이고 안 묻으면 처녀가 아닌 것으로 판정했다고 한다. 이런 처녀 감별은 사실은 남녀가 얼마나 잘 화합하고 정답게 살지를 앵무새 피로 점쳤던 것이다. 잉꼬부부라는 말처럼 앵무새는 남녀 간의 화목을 상징하는바, 앵무새의 피가 잘 묻지 않는다는 것은 처녀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장차 남녀 간의 불화가 예상되었기에 불합격시켰던 것이다. 

궁녀는 한 번 입궁하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근무하는 종신직이었다. 각종 의복 제작, 곤룡포의 흉배 등 각종 자수 제작, 수라 및 음식물 준비, 세숫물, 수건 등 빨래담당, 불 때기 및 촛불 담당, 침실 청소 등을 맡았다. 품계는 5품~9품까지 받았다. 한마디로 ‘하위직 공무원’이었던 셈이다.

이들의 꿈은 모두 왕후가 되는 것이었다. 왕의 자녀를 생산하고 생산한 자녀가 왕에 오르는 것이었다. 이를 모두 이룬 3명의 여인은 연산군의 모친인 폐비 윤씨와 인종의 모친인 장경왕후 윤씨, 그리고 경종의 모친인 장희빈이다. 하지만 세 명 모두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자녀가 보위에 오르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폐비 윤씨와 장희빈의 경우는 생전에 왕후에서 폐위까지 되었다.

그렇다면 한 남자만을 바라보던 궁녀의 성(性)은 어땠을까. 궁녀는 왕의 여자가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남성과의 성관계는 법으로 엄격히 금지됐다. 이를 어길 경우 무조건 사형이었다.

결국 궁녀들이 성관계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은 동성애였다. 금남의 영역 속에 갇힌 궁녀들의 삶에서 동성애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닐까?  이들은 서로 팔에 ‘붕’자를 팔에 새겨 동성애인간의 의리를 유지했다. 현재 문신의 의미와 유사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후궁은 ‘왕의 또 다른 부인’이라기보다는 왕후를 보좌하는 존재였다. 이런 이유로 그들에게는 법으로 규정한 품계와 함께 품계에 따른 직무가 부과되었다. 물론 후궁제도를 법으로 규정한 본질적인 목적은 궁녀처럼 일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왕의 첩’을 합법적으로 궁궐 안에 두기 위해서였다. 자녀 생산과 왕후 보조가 이들의 존재 이유였다. 그러한 이유로 이들을 뽑을 때는 내면과 외면을 철저히 관찰해야만 했다. 말하자면 예쁜 여인보다는 예쁜왕권이 더 소중했다는 말이다.

왕후의 권력은 왕의 사후에도 계속된다. 궁궐이 아닌 별도의 공간에서 생활했지만 왕실 최고 어른인 왕대비가 됨으로써 위상과 권력은 오히려 왕후 때보다 강화되었다. 그렇다고 ‘왕의 여자’들 생활이 그다지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철저히 유교적 여성관의 전형을 요구받은 그들은 평생을 인내하며 살아야 했다.

오직 한 사람을 바라보며 평생을 보낸 후 왕후가 되지만, 남편과의 잠자리에 자신을 제외한 최대 8명의 여인과 함께 눈을 감고 떠야 했던 삶은 어쩌면 일반 아낙보다 더 고독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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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필요한 시간 - 아픈 마음 도닥이고, 힘든 일 보듬는
김경집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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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녔을 때 고민스러웠던 것들 중에 하나는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이었다. 부모님이냐 아니면 훌륭한 역사적 인물이냐를 놓고 항상 갈등을 느꼈다. 이런 고민 끝에 어떨 때는 부모님이라고 대답했고. 상황이 달라지면 역사적 인물을 꼽았던 기억이 난다. 같은 질문을 지금 묻는다면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친정오빠였다. “항상 나는 네 편이다”라고 말해주던 오빠. 그 오빠가 세상을 떠난 지 이미 4개월이 흘렀다. 과묵한 나무와 같던 오빠. 죽을 만큼 괴로우면서도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까봐, 약한 모습 보이면 낙오될까봐, 힘들다고 하면 주위에서 걱정할까봐, 애써 강한 척, 의연한 척 웃고 있었던 모습을 기억한다.

이러한 현대인들의 삶을 위로하고자 김경집 교수(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가 적은 ‘위로가 필요한 시간’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항상 자신을 도와준 선생님에게 두 달 버스비를 아껴 700원을 모아 촌지랍시고 드린 어느 교수의 추억담, 뇌사 상태에 빠진 8세 아들의 장기를 다른 환자에게 기증한 아름답고 슬픈 부모의 사연, 장애가 있는 아들을 전동 휠체어에 태우고 강의실을 옮겨 다니면서도 아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음을 기뻐하는 모정…. 읽는 순간 내 주변을 돌아보게 만드는 내용들이다.

저자는 삶을 세 등분으로 나눠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글 쓰며 살기를 꿈꾸는 인문학자다. 책은 거대담론보다는 소소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객관적 시각으로 그려졌다. 책을 읽는 동안 진정한 위로와 거짓 위로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각박한 세상, 많은 위로를 받기도 했고 누군가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위로라면 성격에 나오는 ‘욥’이 떠오른다. 살아가며 그 생각은 더욱 자주 들곤 했는데....

성경의 욥기서는 주인공 욥과 그의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느님으로부터 시험을 받아 모든 걸 잃은 욥에게 친구들은 욥에게 고난당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부당하게 고난을 당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니 숨겨진 죄를 회개하라고 촉구한다.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하는 말을 들으면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다. 무엇 하나 그른 것이 없다. 그러나 친구들의 말은 욥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를 못했다. 위로는커녕 오히려 큰 아픔을 전해주었다. 고통을 당해보지 않은 너희가 불행한 내 처지를 비웃고 있다고, 너희는 넘어지려는 사람을 떠밀고 있다고, 너희가 나를 위로할 생각이면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그것이 내게는 유일한 위로라고 욥은 친구들에게 호소를 한다.

고난을 당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옳은 말이 아니었던 걸 나는 그때 깨달았다. 욥에겐 친구들의 옳은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되었다. 욥에 따르면 고난당하는 자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고난당하는 이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이 책은 그러한 이야기를 조용조용 들려준다. 각박해진 세상, 사람들은 문득 지난 시간 되돌아보면 고마움으로 남는 사람이 있고, 미안함으로 남는 사람이 있고, 아쉬움으로 남는 사람이 있다. 아주 잊혀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더 많겠지만....

지금 나는 어떤 빛깔과 어떤 걸음새로 나의 길을 가는 것인지요? 나를 키워준 대지 위로, 함께 살았던 이들의 눈길 앞에서 돌아설 때 내 걸었던 걸음은 어떤 모양일지, 내가 빚어낸 빛깔은 어떤 빛깔일지, 내 걸었던 걸음걸음엔 얼마만한 무게 담겼을지.

특히 유모차 이야기 편에서는 세상의 따뜻함으로 마음이 훈훈해진다. 유모차를 가져간 이가 적어 보낸 편지 ‘죄송합니다. 몸이 불편한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나갈 수 없어 염치 불구하고 유모차를 가져갔습니다. 제가 형편이 되지 않아 큰 잘못을 저지르는 줄 알면서도……. 다음 달부터 조금씩 갚아가겠습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용서를 빌 자격도 없네요’

이 책은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눈물이 나도 울지 못하는 사람에게 쉬었다 가도 된다고 다독이고 위로가 되는 지침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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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에 꿈꾸면 좋은 것들 - 인생의 절정기에 선 청춘을 위한 삶의 지혜
백정미 지음 / 북포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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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 건강하려면 서른 살 때의 키와 체중과 허리둘레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왜 하필 서른일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인생의 가장 절정기란 생각이다. 또한 오랫동안 머물러도 좋을 나이 그렇기에 그 나이를 기준 삼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서른 살에 어떤 꿈을 꾸는 것이 절정기를 더욱 빛나게 할까?




‘서른 살에 꿈꾸면 좋은 것들’ 저자 백정미씨는 서른, 최고의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고 단언한다. 서른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건 이미 지났건 현재가 서른이라니 참으로 많은 꿈에 도전이 가능하다.




책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마음자세와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의 지혜를 담고 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와도 같은 따뜻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마치 한 권의 채근담처럼 읽고 또 읽어도 지루하지도 지치지도 않는다. 저자의 개인적 체험을 기반으로 한 위로와 충고에는 생생한 울림과 진솔함이 묻어난다.




저자는 인터넷에서 오랫동안 감성작가로 사랑을 받은 저자는 다음 팬 카페 ‘아름다운 사랑을 너에게’에서 20,000여명의 팬들과 늘 함께 한다. 그런 만큼 독자의 반응을 많이 알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진정한 작가는 가슴을 훑는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삶으로부터 고통 받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치유의 메시지를 선물해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이 이 책을 선물했다.




이 책을 손에 들고 내 나이 서른을 더듬어보았다. 나이를 잊고 살다가도 새해나 한해의 말미에오면 나이라는 벽을 만나 새삼스럽게 자신의 나이를 의식하고 나이 듦을 실감하곤 한다. 남녀노소, 빈부, 국적, 건강의 유무를 불문하고 누구나 공평하게 먹는 나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있어도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더해지는 나이, 그러니 나이 먹는 건 자랑도 아니고 나이 많아 노년에 접어든 것 역시 유세부릴 일도 아니다.




나이와 함께 늘어나는 게 주름살과 흰머리뿐이라면 우리들 인생의 참 의미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가. 또, 나이와 함께 줄어드는 게 체력과 기억력뿐이라면 이 역시 슬픈 일이다.




살아온 시간만큼의 인생 창고에 너그러움과 여유, 신중함 그리고 사랑이 조금씩 늘어나고, 평생을 버리지 못해 끌어안고 살아온 욕심과 헛된 꿈과 나쁜 마음을 하나씩 솎아낼 수 있다면 제대로 잘 나이 들어가는 인생일 것이다. 




서른살에 꿈꿀 수 있는 많은 것들은 평생을 두고 꿈꿔도 후회하지 않을 일들임을 이 책은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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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쾌한 논어, 21세기에 답하다 - 알기 쉽게 풀어쓴 알기 쉽게 풀어쓴 동양철학 시리즈 2
푸지에 해설, 이성희 옮김 / 베이직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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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쉽게’와 ‘명쾌한’ 두 단어가 합쳐지며 큰 기대감으로 책을 손에 들었다. 논어라 하면 실제로 참 어려운 학문임에도 가끔은 세상이치가 논어를 말하게 하는 현실이다.




논어 학이편에 보면 나이에 따라 부르는 말이 달리 나와 있다. 15세는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라 하여 ‘지학’이라 했고, 30세는 예와 악에 대해 뚜렷한 식견을 가지게 된다 해서 ‘이립’이라 했다. 40세는 사리를 알게 되어 남의 말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 50세는 하늘이 준 섭리를 알게 된다고 ‘지천명’), 60세는 듣는 대로 훤해 ‘이순’, 70세는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없다는 의미로 ‘종심소욕 불유구’라고 했단다.




그러고 보면 “너는 언제나 철이 들거냐?” 하는 말은 어린아이들을 야단치고 훈계할 때만 쓸 말이 아니란 생각이다. 오히려 정신없이 살고 있는 우리 각자에게 물어야 할 말이 아닌가? 나는 과연 지금의 내 시간을 제대로 짐작하고 있는지, 때에 맞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알기쉽게 풀어쓴 명쾌한 논어’는 현대인에게 맞게 새롭게 해석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중국 명문대 중 하나인 상하이 푸단대학의 푸지에 교수가 학계동료들과 힘을 모아 책으로 출간했다.




이 책은 시대에 맞도록 단락으로 나눠 어디서나 시간을 만들어 읽기 좋다. 읽었던 페이지를 기억하지 않고 다시 읽어도 새롭다. 그만큼 공자와 제자들의 문답식 대화가 삶의 정곡을 찌른다.




실제로 난 신독이라는 단어를 가장 좋아한다. 혼자 있을 때 더욱 삼가고 경계한다는 뜻이다. 혼자 있을 때 더욱 자신을 살펴 삼갈 것을 삼가고 살필 것을 살핀다는 가르침으로 알고 있다.

 

생각하면 요즘과 같이 인터넷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지켜야 할 마음이 바로 ‘신독’이라 여겨진다. ‘신독’의 마음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밥을 먹을 때도, 황급한 일을 당했을 때도, 심지어는 넘어질 때도 어진 마음을 지킬 때, 그 때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자라는 마음이 바로 ‘신독’일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논어의 가르침이 전혀 낯설지 않음이 신기하다. 아니 논어의 옛 가르침이 그윽하면서도 구체적이다. 또, 구체적이면서도 그윽하다. 세상이 변해도 변함없는, 세상이 변할수록 변함없는 가르침, 고전을 읽는 맛과 멋은 그래서 남다른 것 아닐까.




언젠가 문화센터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70중반의 어르신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 말씀이 당신은 70이 넘은 지금도 늘 쉬지 않고 공부한다고 하는데 배움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얻고 있는 것 같았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는 글을 적어주며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마치 웅변하듯 말씀하셨던 기억이 새롭다.




논어의 말씀을 어르신은 이미 몸으로 깨치고 있었다. 긴 대화시간 말미에 대화를 정리해야 했다. 어르신은 공부를 통해서 느낀 것은 ‘겸손’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세상에 겸손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즘 사람들에게 도리를 알려주고 싶다고 강조하시던 어르신.




현대적 재해석으로 논어를 설명한 이 책은 그 어르신을 다시 불어오는 듯 시간 가는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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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때문이다 - 요셉 조성만 평전
송기역 지음 / 오마이북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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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치열한 삶이다. 나무는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에게 잎과 열매, 그리고 목재를 주며 본연의 몫을 다한다. 또다른 매력은 단순함과 질박함이다. 나무에 가까이 가서 껍질과 잎을 보면 군더더기가 없다. 어떤 나무는 꽃을 화려하게 피우지만 그것은 열매를 맺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나무와 같은 사람. 그러한 청년을 만났다.




“사랑때문이다. 내가 현재 존재하는 가장 큰 밑받침은 인간을 사랑하려는 못난 인간의 한 가닥 희망 때문이다. 이 땅의 민중이 해방되고 이 땅의 허리가 이어지고 이 땅을 사람 사는 세상이 되게 하기 위한 알량한 희망, 사랑때문이다. 나는 우리를 사랑 할 수밖에 없고 우리는 우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사랑 때문이다 중 1988년 3월18일 조성만 열사의 일기장에서)




‘사랑때문이다’의 저자 송기역은 ‘트랙터 순례자들의 노래’로 전태일문학상을 받았으며, ‘허세욱 평전-별이 된 택시운전사’, ‘흐르는 강물처럼-우리 곁을 떠난 강,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등을 저서로 갖고 있다. 이처럼 시대의 깨어있는 정신을 말하는 그의 신작인 ‘사랑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의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은 1988년 5월 15일, 한반도 통일, 미군 철수, 군사정권 퇴진, 서울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등을 요구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할복 투신한 조성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결코 가벼운 심정으로 책을 읽을 수는 없었다. 한 청년의 절규가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같은 절규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두 가지다. 88년 그 시절을 확실하게 기억하고자 함과 세례를 받으며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책은 첫 장부터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1988년 5월15일 청년은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삶이 가식적이었다는 걸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옳은 것은, 옳게 체화할 수 있는 자신의 점검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내가 보여주었던 모습들은 가식의 모습이었다."




열흘 후 청년은 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서울 명동성당 교육관 앞에 싸늘한 주검으로 누워 있게 된다. 한반도 통일, 미군 철수, 군사정권 퇴진,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를 외치며 할복·투신한 조성만 열사다.




도대체 1980년대의 시대정신과 지금의 그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조성만 열사는 대답한다. "사랑 때문이다. 내가 현재 존재하는 가장 큰 밑받침은 인간을 사랑하려는 못난 인간의 한가닥 희망 때문이다."




첫 장을 넘기면 검은 바탕에 흑백사진이 무언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조성만열사의 서울대학 입학사진부터 평범한 학창시절 사진이 펼쳐진다. 씨름과 야구를 즐기는 청년은 잠시 후 투쟁 속으로 들어가더니 급기야 명동성당에서 투신하는 현장 사진까지. 가슴이 답답해왔다. 몇 장의 사진과 그의 추모비를 보고나서 일주일이 지나서 책을 손에 들었다.




세례를 준 문정현 신부는“조성만을 자신이 영세를 주었지만, 조성만은 통일의 스승으로 자신의 가슴속에 늘 살아 있고, 14년 전에 열사가 주장한 내용은 진정 옳은 일이며, 현재에도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반미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매진하고 있다”며 추모식에서 울먹였다. 책 마지막 그의 유서는 더욱 안타깝게 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기도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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