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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평점 :
[서평]『기울어진 미술관』-그림을 통해 살펴본 권력관계 속 소수자의 현주소
한겨레 출판의 하니포터 4기로 활동하며 두 번째로 신청한 책이다. 보자마자 이거다! 하고 고민하지 않고 선택했다. 가제는 ‘그림 속 권력’이었는데, 미술 작품 속에 담긴 다양한 층위의 권력관계와 부조리를 보여 주는 ‘교양 미술 에세이’라고 했다. 너무 내 취향이라 기대 만발이다. 도착한 책은 가제와 달리 ‘기울어진 미술관’이란 제목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어두운 느낌의 표지다. 책의 앞, 옆, 뒷면이 다 어두운 톤이라 인상이 전체적으로 너무 칙칙해서 책등이나 뒤표지의 색을 흑갈색보다 밝게 하거나 튀게 했으면 좀 더 좋았을 듯하다. 서점에서 봤으면 눈에 띄는 느낌은 아니어서 안 짚었을 듯하다. 줄거리를 말하기 앞서서 미리 말하는데, 정말 재밌었다. 진짜 재밌다. 진짜 마음에 들었고, 작가의 다른 작품이 읽고 싶어졌다고 미리 말하고 싶다.
-줄거리-
'미술 작품 속에 담긴 다양한 층위의 권력관계와 부조리를 보여 주는 에세이'라고 앞서서 말했었다. 그림은 시대를 증언하고 고발한다. 그림을 통해 지금 그 당대를 살펴보면 어이없고 화가 나는 현실도 많다. 그래도 결국 우리는 ‘그땐 지금과 가치관이 달랐잖아’라고 말하며 과거를 별생각 없이 넘길 거다. 하지만 작가는 ‘당대가 떠안아야 했던 시대적 한계가 과연 오늘날에는 시원하게 끊어졌는지’ 의문을 표한다. 솔직히 딱히 현대의 현실과 과거의 역사를 긴밀하게 연결 지어 설명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무 잘 이야기해서 진짜 과거는 반복되고,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이렇게 현재와 과거의 부조리가 크게 바뀌지 않는 걸 보면 가치관이 달랐다고 해서 과거를 그냥 넘기면 안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특정 미술 작품을 해석하여 그 작품 속에 담긴 당대의 현실을 이야기하리라 생각했으나, 특정 미술 작품을 중심에 두기보단, 작가가 다루고 싶은 현실의 단면과 과거의 단면을 잇고 그 단면을 담고 있는 미술 작품을 보여 주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미술 작품보단 그 그림이 그려졌던 과거의 문제와 현재의 문제에 집중한다는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용을 같이 살펴보기로 하자. 4장으로 나뉘며 장 제목은 ‘기울어진 그림을 부수는 존재들’, ‘그림 속 소품이기를 거부한 여성들’, ‘뒤틀린 권력에 균열을 내는 그림들’, ‘선전 도구에 저항하는 예술가들’이다. 혹시 내용이 상상이 가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제목 같은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1장 ‘기울어진 그림을 부수는 존재들’은 제목과 내용을 같이 본다면 그림 속 다양한 이유로 기울어진 관계(예를 들어 흑인-백인)를 ‘부수는’ 존재들이 있어야 하는데, 모든 부분이 그렇진 않다. 작가는 예를 들어 여성과 여성의 권한을 도둑질한 남성, 흑인과 흑인을 백인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이용하는 백인, 장애인과 장애인을 구경하는 비장애인,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대중, 성소수자와 성소수자임을 숨기게 하는 소수자가 아닌 사람, 흑인/여성과 그들의 몸을 강탈하는 강자의 관계를 다양한 그림을 통해 보여 준다. 하지만 이 기울어진 관계를 부수는 존재들은 일부만 등장한다. 따라서 동등하지 못한 관계를 부수는 내용을 기대하고 봐선 안 된다. 오히려 그 동등하지 못한 관계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걸 주로 보여 준다.
2장도 그렇다. ‘그림 속 소품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이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모던걸’ 외엔 소품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을 주로 다루는 느낌은 아니다. 그냥 그림들을 통해 주로 가부장제 또는 남성이 제한된 여성, 어머니, 아내 역할만 수행하도록 여성의 삶을 강제하는 과거부터 현재를 주로 보여 준다.
3장 ‘뒤틀린 권력에 균열을 내는 그림들’ 또한 제목만 보면 뒤틀린 권력층이 그림을 통해 균열이 생겨 바뀐 내용이 나올 것 같지만, 어린이, 노인, 가난한 장애인, 인디언, 재개발 구역 시민, 동양인 등 소수자를 함부로 다루는 과거와 현재의 권력층의 모습을 주로 보여 준다.
4장은 제일 의문인 장제목이다. ‘선전 도구에 저항하는 예술가들’이라니. 제목만 보면 저항하는 예술가들의 삶이 주가 되는 장처럼 보이지 않나? 저항보단 구경거리가 된 동물, 오염된 환경, 길거리의 여성, 이득을 위해 후원하는 후원자, 선전 도구로 사용된 예술, 인간의 투기 행동을 소재로 다룬다.
따라서 그냥 4장 나눴다고 내용도 나뉜다고 생각하지 말자. 장 제목을 크게 신경 쓰지 말고, 미술 작품 속에 담긴 다양한 권력관계, 마이너, 부조리를 그림을 통해 반복적으로 보여 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걸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게 뒤표지 카피다.
뒤표지 카피를 보면 ‘무용수, 흑인 하녀, 장애 소년, 전시된 코뿔소까지 캔버스 속 소품이기를 거부하고 뛰쳐나와 마침내 해방에 이른 존재들에 대하여’라고 적혀있다. 무용수는 2장, 흑인 하녀는 1장, 장애 소년은 3장, 전시된 코뿔소는 4장 소재다. 전부 다 다른 장에 있는 소재들인데, 설명은 2장 제목처럼 ‘그림 속 소품이기를 거부한’이다. 그렇다. 4장으로 구분해 놨지만, 사실 그냥 뚜렷한 차이를 갖고 묶어 놓은 게 아님을 뒤표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어쩌면 장 제목을 좀 바꾸면 장 속 소재들을 묶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저 장 제목들은 각 장 속 부분들을 묶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심지어 뒤표지 카피에서 소품이기를 거부하고 뛰쳐나와서 해방됐다고 표현했으나, 내용을 보면 다른 두 소재는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을지언정 장애 소년과 전시된 코뿔소는 해방됐다고 표현할 수 없어서 공감 가는 카피도 아니다. 그냥 뒤표지 메인 카피에 써진 대로 권력으로 빚어낸 예술작품 속에는 '수많은 마이너’가 있는 걸 살펴볼 수 있다.
-예비독자에게-
내가 장 제목들을 너무 깎아내린 것 같지만, 내용 자체가 굉장히 훌륭했고, 마음에 들었다. 이번 서평에서는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하며 마무리해 볼까 한다.
좋았던 점은 내용 자체?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은 그림 자체의 내용 구성보단, 그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는 당대 현실, 권력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그림이 그려진 과거와 현대의 실태를 이어서 해석하는데, 나는 그 속에 녹아있는 작가의 시선과 해석이 좋았다. 물론 여태껏 읽어왔던 예술 서적과 다른 작품 해석이 있으므로, 어디까지나 이유리 작가만의 의견 정도로 받아들였지만, 작품을 통해 보려 하지 않았던 과거부터 이어져 온 소수를 향한 억압을 똑바로 바라보려는 시선이 따뜻하다고 느꼈고, 과거와 작품을 다시 생각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현재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이 뜻깊었기 때문에 교양 미술 에세이로서 적절한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 모든 해석에 어느 정도 다 공감했고, 흥미로웠기에 한 부분만 이야기하긴 아쉬우니까 두 부분 말하겠다. 미리 말하는데 스포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우선 1장의 '릴리 엘베, 커버링을 거부한 성소수자 예술가'다. 이 부분에선 표지의 그림이 나온다. 처음 표지의 그림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가?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퇴폐적 느낌의 여성 그림을 굳이 책표지로 설정한 했다는 점이. 그리고 '내용을 보면 이게 좋은 선택인지, 아닌지 알겠지.' 그런 식으로 생각했었다. 좋은 선택이었다. 읽자마자 그렇게 생각했다. 매번 책을 통해 내가 편견에 갇힌 사람이라고 느낀다. (다시 한번 더 말하는데 스포다.) 나는 소제목을 보고 뭐, 레즈비언이라 애인을 그린 건가? 그 정도 생각했다. 근데 놀랍게도 자신의 남편을 그린 거였다. 상상도 못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남편을 그린 그림일 줄이야. 내 견해가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중립이 됐길 바란다. 하여튼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을 표지로 선택한 건 마음을 울렁이는 좋은 선택이었다. (아, 그 앞에 나온 미켈란젤로 예시도 좋았다.)
‘덴마크의 화가 게르다 베게너는 릴리 엘베라는 이름의 이 사람을 정성을 담아 그려냈다. 당연했다. 릴리는 게르다가 사랑하는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남편! 릴리는 당시 생물학적으로는 남자였다. ~ '정상적으로 살라'는 시대의 폭력에 맞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하트의 여왕> 속 릴리는 '나의 본 모습으로 사는 것이 바로 정상성'이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하다. 결국 1930년 48세의 릴리는 좀 더 릴리답게 살기 위해 수술대 위로 올라갔다.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것이다.’ p68~69
또 기억에 남는 부분은 3장 '가난한 장애 소년 그림을 ‘천국행 보험’ 삼은 부자들'이다. 가끔 가난한 이들이 그려진 그림을 볼 때마다 '이들의 삶에 관심 있는 화가도 그 시대에 있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스포) 설마 부자들이 의뢰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성경에서 부자들은 천국에 갈 수 없고, 자비를 베풀면 갈 수 있다고 해서 자비를 베풀고(음식을 주는 등) 선행의 증거를 남기기 위해 그림을 그리게 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생각지도 못한 이유 아닌가? 심지어 부자는 정원에서 삶의 무상함과 부의 덧없음을 표현해 타인에게 자랑하기 위해 살아있는 가난한 사람을 조각상으로 활동하게 했다고 한다. 참 대단한 부자들이다.
‘그림 속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의 유용한 가축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자신의 자비로움을 만천하에 표명하는 도구이자 천국 문을 여는 열쇠로, 때로는 자신의 정원을 좀 더 진지한 사색의 장으로 업그레이드해 줄 비싼 액세서리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에게 '만능열 쇠'와 다름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선거철만 되면 돈을 쥔 자들은 출마를 준비하며 굳이 낙후된 재래시장과 쪽방촌을 찾는다’ p181
이제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하고 마무리하겠다. 그림 화질이 아쉬웠다. 전체적으로 종이에 돈을 많이 들이지 않은 것 같다. 책에서 그림은 종이 화질 따라 확 달라지는데 아쉽다. 음, 이건 사진으로 표현이 안 되니까 보여 줄 수도 없고. 직접 보고 판단하길. 그래도 내용이 워낙 좋고, 작품보단 내용에 더 시선이 가는 작품이라 읽는 데 큰 무리는 없다.
ps. 2장의 도비라 밑바탕 그림을 왜 1장 도비라와 같은 그림(1장에서 나온 그림)으로 했는지 의문이었다. 굳이 왜? 3, 4장은 각각 자신의 장에 있는 그림으로 해놓고.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제 감상대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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