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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 돔 아래에서 - 송가을 정치부 가다
송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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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라고 바다도 가고, 친구도 만났더니 벌써 며칠이나 지났네요. 여러 서평을 쓰다가 다음 책으로 넘어가고 또 넘어가다 보니 밀리다 못해 끝이 안 보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그런 책 가운데 유일하게 서평이 마감기한이 있는 작품 『민트 돔 아래에서』입니다. 한겨레 하니포터 4기로 받은 작품이거든요. 이번 책은 <한겨레>기자인 송경화 작가가 쓴 『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의 주인공 송가을이 몇 번의 특종을 터트린 후 정치부에 가게 된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비록 1권을 안 봤지만 기자의 일상은 어떤지 잘 모르고, 특히 정치부 기자는 드라마에서 악역 조연으로 가끔 본 기억밖에 없다 보니 궁금해서 선택했습니다. 제목이 『민트 돔 아래에서』라 그런지 책 표지가 민트색 계열로 되어있고, 사진상으로는 확인이 힘든데 반짝이는 효과가 있어서 예쁩니다.

<줄거리>
『민트 돔 아래에서』는 사회부 특종 기자인 송가을이 정치부로 가게 되면서 대선이 끝날 때까지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소설입니다. 사회부에선 어느 정도 지위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송가을은 정치부 막내(말진)로 들어갔기 때문에, 특종 기사를 낸 기자로서의 대우는 없었습니다(오히려 첫날부터 지각이라 욕만 더 먹었죠). 정치부는 처음이었지만 뭘 하라고 상사가 알려주기보단 눈치껏 알아서 배우게 하다 보니 사회부 3년 경력의 주인공도 꽤 얼 탑니다. 막내답게 여당인 다민당 쪽을 뺑뺑이 돌게 되는데 정치부 막내에서 벗어나는 건 대선 끝난 후라니 꽤 먼 미래였죠.
그때 같이 뺑뺑이 도는 인물이 바로 기민호입니다. 기민호는 같은 사회부에서 일했고, 주인공보다 아주 약간(2주였나?) 빨리 정치부에 간 동기로 주인공이 오자 야당 보국당을 전담으로 돌게 됩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 시점에서만 전개되지 않고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에서 전개되기도 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기자입니다. 일일이 비교해 보지 않았지만, 어쨌든 제가 봤을 땐 투 탑 주인공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분량? 주인공 송가을이 내향적이고 속에 열정이 많은 야무진 스타일이라면, 기민호는 외향적이고 요령 있게 해결하는 스타일입니다. 둘 다 기자가 된 이유와 목표가 책에서 나오는데 그런 목표가 주인공과 기민호를 다른 방향으로 행동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그렇다고 둘이 반목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서로 협력하는 파트너이지만 행동 선택이 달라, 성과는 둘 다 내지만 활약 분야가 좀 다른 느낌?
작품은 정치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 사고 자체를 옴니버스 식으로 다룬다기보단, 인사청문회/법안 심사/국정감사/예산 심사/당대표 선거/지방 선거 그리고 대선같이 국회의 중요한 이벤트들이 흘러가는 가운데 정치계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을 다루는데요. 예를 들어 정치 관련 뉴스를 보면 상대 당의 말꼬투리를 잡고 계속 공방이 이어지는 데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국정감사나 예산 심사 시 벌어지는 비리들을 보여주고, 법 제정을 위해 단식투쟁 또는 끝장 연설을 하거나, 선거의 승기를 위해 이슈를 만들고 선거 연설 시 사람을 부당 동원하고, 제보를 조작하는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정치계를 잘 몰랐던 주인공이 현실에서도 일어날법한 정치계 이슈를 경험하고 조사하고 보도하면서 정치부 기자로서 성장하는 모습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예비 독자들에게>
위에서 줄거리를 간략하게 이야기해 드렸는데요. 이번 서평에선 저의 감상을 중심으로 좋았던 점이나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하며 마무리해 볼까 합니다.

1 현실적이고 담담하고 극적인 이야기 전개
전 아무래도 주인공의 직업이 기자인 만큼 많은 사람이 나오다 보니 읽을 때 약간 헷갈렸었습니다. 특히 당에 따라 작품 속 포지션도 달라지는데 인물이 기억이 안 나다 보니 앞으로 가서 무슨 당 사람이었는지 확인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엔 인물관계도를 그리면서 봤는데요. 어휴, 나중에 다시 보니까 등장인물이 많다고 느끼긴 했는지 등장인물 관계도가 작품 시작 부분에 있었더라고요(물론 제가 따로 그린 등장인물 관계도에 훨씬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허무한 건 어쩔 수 없네요).
책 앞 부분의 인물 관계도를 보면 알 수 있듯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또 정치계다 보니 그 많은 인물들이 상호작용하며 작품이 굉장히 역동적으로 진행됩니다. 작 중에 “정치는 생물이야”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 대사를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역동적인 현실 정치를 굉장히 잘 보여줘서 모순적이게도 전체적으로 잔잔하면서도 극적인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치계를 익살스럽게 풍자한 부분도 없잖아 있는데 현실의 정치가 워낙 극적이어서 소설을 보며 그럴 수도 있지,라며 소설이 좀 잔잔하다고 느겼어요.
또한 작가가 기자라 그런지 담백하게 사건을 전개하고, 정치부 기자로서의 삶을 정말 잘 보여주다 보니 소설이 개연성 있고 현실적이라고 느끼는데 한몫했던 것 같아요. 뉴스에서 기자들이 정치인을 따라다니면서 대답해 주지 않는데도 질문하는 장면을 많이 봤었는데, 그런 장면이 어떤 의미인지, 정치부 기자는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메커니즘으로 기사를 쓰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정치인을 따라가며 추가 워딩을 받아내는 ‘백블’, 취재원의 발언을 받아쳐 회사로 보내는 ‘받아치기’, 회의실 문에 귀를 대고 대화를 엿들어 따내는 ‘귀대기’, 의원과 밥 약속을 공유하는 기자들 네다섯 명의 모임 ‘꾸미’ 등) 단, 어떤 기사를 쓸 때 너무 특종을 보도하는 데 초점을 맞춘 모습이 아쉬웠는데요. 고도일보는 얼마나 정치계에서 벗어난 중립적인 곳이기에 저렇게 여야당을 골고루 저격하는 기사들을 많은 제재없이 그저 특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올릴 수 있는지 의문이었습니다(기업관련으론 압력을 받는 것 같긴 했지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기사인데 위에서 크게 압력이 내려오지 않는 부분이 좀 비현실적이지 않나요?

2 순탄한 주인공의 대인관계
주인공을 직접적으로 적대하는 뚜렷한 악역이 거의 없고, 큰 비중은 없지만 러브라인이 있는 등 주인공의 대인관계가 꽤 순탄하게 흘러가서 좀 판타지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많은 인물이 정치계답게 계산적이고 양면적인 면모를 보여주다 보니 대인관계까지 순탄치 않으면 이야기에서 피로감을 느꼈을 것 같아 적절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위에서도 언급했듯 기민호와의 관계가 이 소설의 중요 쟁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둘은 한 팀에서 상호 협력은 하지만 둘이 다르게 선택하는 장면에서 주인공의 선택이 좀 더 강조되면서 저는 작가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기자를 이들을 통해 보여줬다고 생각하고, 그런 장치가 좋았습니다.

3 순진한 주인공의 모습
1권에서는 어떤 성장 서사를 보여줬는지 모르겠지만 2권 『민트 돔 아래에서』는 어떤 기자가 좋은 기자인가에 대한 확고히 정의 내리고 과거를 극복한 주인공의 성장 서사를 매끄럽게 보여줘서 좋았습니다. 단, 주인공의 성격이나 행동에서 의아한 부분이 있다면 정치인의 행보에 꽤나 순진한(?) 반응을 보여줄 때였습니다. 전작을 안 봤기도 했고, 사실 우리나라 정치를 잘 모르는 저도 정치인의 정치 행보를 보고 어느정도 다 계산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사회부 기자를 경험한 주인공이 저렇게 정치인의 정치 행보를 다 진실되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나? 의아했습니다. 사회부의 사건도 솔직히 정치권과 관련된 사건이 많은데 1권에서 주인공은 어떤 사건을 주로 보도했길래 저럴까, 이런 생각? 1권을 봤다면 주인공의 성격이나 경험을 좀 더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물론 저처럼 1권을 안 본 분들도 1권을 안 봐도 후속작인 『민트 돔 아래에서』를 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여튼 그런 부분에서 의문을 끝까지 느꼈고 설령 주인공이 사회부에서 정치계와 전혀 관련 없는 사건들만 보도했다고 하더라도 사회부에서 사람들의 여러 면을 봤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정치계 인물의 행동을 잘 믿는 모습들이 너무 주인공이 정치부 초보임을 강조하려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인상깊은 장면>
"기자님. 정치인한테는요. 자기 부고 기사를 제외하곤 모든 기사가 이득이에요."

아무래도 가장 인상 깊은 장면 가운데 하나는 기저귀 기사다. 여기서 정치인 이응섭은 끝장 연설을 계속 이어서 하기 위해 하기스 팬티(기저귀)를 착용하고 그걸 기사로 쓰는 데 흔쾌하게 허락하고 사진까지 전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위의 이응섭 측 사람의 대사가 바로 정치란 무엇인지 그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인상깊었다.

#민트돔아래에서 #송가을 #송경화 #한겨레출판 #하니포터4기 #하니포터 #하니포터4기_민트돔아래에서 #정치부기자 #책서평 #소설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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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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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기울어진 미술관』-그림을 통해 살펴본 권력관계 속 소수자의 현주소

한겨레 출판의 하니포터 4기로 활동하며 두 번째로 신청한 책이다. 보자마자 이거다! 하고 고민하지 않고 선택했다. 가제는 ‘그림 속 권력’이었는데, 미술 작품 속에 담긴 다양한 층위의 권력관계와 부조리를 보여 주는 ‘교양 미술 에세이’라고 했다. 너무 내 취향이라 기대 만발이다. 도착한 책은 가제와 달리 ‘기울어진 미술관’이란 제목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어두운 느낌의 표지다. 책의 앞, 옆, 뒷면이 다 어두운 톤이라 인상이 전체적으로 너무 칙칙해서 책등이나 뒤표지의 색을 흑갈색보다 밝게 하거나 튀게 했으면 좀 더 좋았을 듯하다. 서점에서 봤으면 눈에 띄는 느낌은 아니어서 안 짚었을 듯하다. 줄거리를 말하기 앞서서 미리 말하는데, 정말 재밌었다. 진짜 재밌다. 진짜 마음에 들었고, 작가의 다른 작품이 읽고 싶어졌다고 미리 말하고 싶다.

-줄거리-
'미술 작품 속에 담긴 다양한 층위의 권력관계와 부조리를 보여 주는 에세이'라고 앞서서 말했었다. 그림은 시대를 증언하고 고발한다. 그림을 통해 지금 그 당대를 살펴보면 어이없고 화가 나는 현실도 많다. 그래도 결국 우리는 ‘그땐 지금과 가치관이 달랐잖아’라고 말하며 과거를 별생각 없이 넘길 거다. 하지만 작가는 ‘당대가 떠안아야 했던 시대적 한계가 과연 오늘날에는 시원하게 끊어졌는지’ 의문을 표한다. 솔직히 딱히 현대의 현실과 과거의 역사를 긴밀하게 연결 지어 설명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무 잘 이야기해서 진짜 과거는 반복되고,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이렇게 현재와 과거의 부조리가 크게 바뀌지 않는 걸 보면 가치관이 달랐다고 해서 과거를 그냥 넘기면 안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특정 미술 작품을 해석하여 그 작품 속에 담긴 당대의 현실을 이야기하리라 생각했으나, 특정 미술 작품을 중심에 두기보단, 작가가 다루고 싶은 현실의 단면과 과거의 단면을 잇고 그 단면을 담고 있는 미술 작품을 보여 주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미술 작품보단 그 그림이 그려졌던 과거의 문제와 현재의 문제에 집중한다는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용을 같이 살펴보기로 하자. 4장으로 나뉘며 장 제목은 ‘기울어진 그림을 부수는 존재들’, ‘그림 속 소품이기를 거부한 여성들’, ‘뒤틀린 권력에 균열을 내는 그림들’, ‘선전 도구에 저항하는 예술가들’이다. 혹시 내용이 상상이 가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제목 같은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1장 ‘기울어진 그림을 부수는 존재들’은 제목과 내용을 같이 본다면 그림 속 다양한 이유로 기울어진 관계(예를 들어 흑인-백인)를 ‘부수는’ 존재들이 있어야 하는데, 모든 부분이 그렇진 않다. 작가는 예를 들어 여성과 여성의 권한을 도둑질한 남성, 흑인과 흑인을 백인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이용하는 백인, 장애인과 장애인을 구경하는 비장애인,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대중, 성소수자와 성소수자임을 숨기게 하는 소수자가 아닌 사람, 흑인/여성과 그들의 몸을 강탈하는 강자의 관계를 다양한 그림을 통해 보여 준다. 하지만 이 기울어진 관계를 부수는 존재들은 일부만 등장한다. 따라서 동등하지 못한 관계를 부수는 내용을 기대하고 봐선 안 된다. 오히려 그 동등하지 못한 관계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걸 주로 보여 준다.
2장도 그렇다. ‘그림 속 소품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이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모던걸’ 외엔 소품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을 주로 다루는 느낌은 아니다. 그냥 그림들을 통해 주로 가부장제 또는 남성이 제한된 여성, 어머니, 아내 역할만 수행하도록 여성의 삶을 강제하는 과거부터 현재를 주로 보여 준다.
3장 ‘뒤틀린 권력에 균열을 내는 그림들’ 또한 제목만 보면 뒤틀린 권력층이 그림을 통해 균열이 생겨 바뀐 내용이 나올 것 같지만, 어린이, 노인, 가난한 장애인, 인디언, 재개발 구역 시민, 동양인 등 소수자를 함부로 다루는 과거와 현재의 권력층의 모습을 주로 보여 준다.
4장은 제일 의문인 장제목이다. ‘선전 도구에 저항하는 예술가들’이라니. 제목만 보면 저항하는 예술가들의 삶이 주가 되는 장처럼 보이지 않나? 저항보단 구경거리가 된 동물, 오염된 환경, 길거리의 여성, 이득을 위해 후원하는 후원자, 선전 도구로 사용된 예술, 인간의 투기 행동을 소재로 다룬다.
따라서 그냥 4장 나눴다고 내용도 나뉜다고 생각하지 말자. 장 제목을 크게 신경 쓰지 말고, 미술 작품 속에 담긴 다양한 권력관계, 마이너, 부조리를 그림을 통해 반복적으로 보여 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걸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게 뒤표지 카피다.
뒤표지 카피를 보면 ‘무용수, 흑인 하녀, 장애 소년, 전시된 코뿔소까지 캔버스 속 소품이기를 거부하고 뛰쳐나와 마침내 해방에 이른 존재들에 대하여’라고 적혀있다. 무용수는 2장, 흑인 하녀는 1장, 장애 소년은 3장, 전시된 코뿔소는 4장 소재다. 전부 다 다른 장에 있는 소재들인데, 설명은 2장 제목처럼 ‘그림 속 소품이기를 거부한’이다. 그렇다. 4장으로 구분해 놨지만, 사실 그냥 뚜렷한 차이를 갖고 묶어 놓은 게 아님을 뒤표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어쩌면 장 제목을 좀 바꾸면 장 속 소재들을 묶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저 장 제목들은 각 장 속 부분들을 묶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심지어 뒤표지 카피에서 소품이기를 거부하고 뛰쳐나와서 해방됐다고 표현했으나, 내용을 보면 다른 두 소재는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을지언정 장애 소년과 전시된 코뿔소는 해방됐다고 표현할 수 없어서 공감 가는 카피도 아니다. 그냥 뒤표지 메인 카피에 써진 대로 권력으로 빚어낸 예술작품 속에는 '수많은 마이너’가 있는 걸 살펴볼 수 있다.

-예비독자에게-
내가 장 제목들을 너무 깎아내린 것 같지만, 내용 자체가 굉장히 훌륭했고, 마음에 들었다. 이번 서평에서는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하며 마무리해 볼까 한다.
좋았던 점은 내용 자체?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은 그림 자체의 내용 구성보단, 그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는 당대 현실, 권력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그림이 그려진 과거와 현대의 실태를 이어서 해석하는데, 나는 그 속에 녹아있는 작가의 시선과 해석이 좋았다. 물론 여태껏 읽어왔던 예술 서적과 다른 작품 해석이 있으므로, 어디까지나 이유리 작가만의 의견 정도로 받아들였지만, 작품을 통해 보려 하지 않았던 과거부터 이어져 온 소수를 향한 억압을 똑바로 바라보려는 시선이 따뜻하다고 느꼈고, 과거와 작품을 다시 생각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현재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이 뜻깊었기 때문에 교양 미술 에세이로서 적절한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 모든 해석에 어느 정도 다 공감했고, 흥미로웠기에 한 부분만 이야기하긴 아쉬우니까 두 부분 말하겠다. 미리 말하는데 스포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우선 1장의 '릴리 엘베, 커버링을 거부한 성소수자 예술가'다. 이 부분에선 표지의 그림이 나온다. 처음 표지의 그림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가?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퇴폐적 느낌의 여성 그림을 굳이 책표지로 설정한 했다는 점이. 그리고 '내용을 보면 이게 좋은 선택인지, 아닌지 알겠지.' 그런 식으로 생각했었다. 좋은 선택이었다. 읽자마자 그렇게 생각했다. 매번 책을 통해 내가 편견에 갇힌 사람이라고 느낀다. (다시 한번 더 말하는데 스포다.) 나는 소제목을 보고 뭐, 레즈비언이라 애인을 그린 건가? 그 정도 생각했다. 근데 놀랍게도 자신의 남편을 그린 거였다. 상상도 못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남편을 그린 그림일 줄이야. 내 견해가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중립이 됐길 바란다. 하여튼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을 표지로 선택한 건 마음을 울렁이는 좋은 선택이었다. (아, 그 앞에 나온 미켈란젤로 예시도 좋았다.)

‘덴마크의 화가 게르다 베게너는 릴리 엘베라는 이름의 이 사람을 정성을 담아 그려냈다. 당연했다. 릴리는 게르다가 사랑하는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남편! 릴리는 당시 생물학적으로는 남자였다. ~ '정상적으로 살라'는 시대의 폭력에 맞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하트의 여왕> 속 릴리는 '나의 본 모습으로 사는 것이 바로 정상성'이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하다. 결국 1930년 48세의 릴리는 좀 더 릴리답게 살기 위해 수술대 위로 올라갔다.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것이다.’ p68~69

또 기억에 남는 부분은 3장 '가난한 장애 소년 그림을 ‘천국행 보험’ 삼은 부자들'이다. 가끔 가난한 이들이 그려진 그림을 볼 때마다 '이들의 삶에 관심 있는 화가도 그 시대에 있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스포) 설마 부자들이 의뢰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성경에서 부자들은 천국에 갈 수 없고, 자비를 베풀면 갈 수 있다고 해서 자비를 베풀고(음식을 주는 등) 선행의 증거를 남기기 위해 그림을 그리게 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생각지도 못한 이유 아닌가? 심지어 부자는 정원에서 삶의 무상함과 부의 덧없음을 표현해 타인에게 자랑하기 위해 살아있는 가난한 사람을 조각상으로 활동하게 했다고 한다. 참 대단한 부자들이다.

‘그림 속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의 유용한 가축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자신의 자비로움을 만천하에 표명하는 도구이자 천국 문을 여는 열쇠로, 때로는 자신의 정원을 좀 더 진지한 사색의 장으로 업그레이드해 줄 비싼 액세서리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에게 '만능열 쇠'와 다름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선거철만 되면 돈을 쥔 자들은 출마를 준비하며 굳이 낙후된 재래시장과 쪽방촌을 찾는다’ p181

이제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하고 마무리하겠다. 그림 화질이 아쉬웠다. 전체적으로 종이에 돈을 많이 들이지 않은 것 같다. 책에서 그림은 종이 화질 따라 확 달라지는데 아쉽다. 음, 이건 사진으로 표현이 안 되니까 보여 줄 수도 없고. 직접 보고 판단하길. 그래도 내용이 워낙 좋고, 작품보단 내용에 더 시선이 가는 작품이라 읽는 데 큰 무리는 없다.

ps. 2장의 도비라 밑바탕 그림을 왜 1장 도비라와 같은 그림(1장에서 나온 그림)으로 했는지 의문이었다. 굳이 왜? 3, 4장은 각각 자신의 장에 있는 그림으로 해놓고.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제 감상대로 작성한 글입니다-

#기울어진미술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4기 #하니포터4기_기울어진미술관 #하니포터 #에세이추천 #책서평 #교양미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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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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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H 마트에서 울다』 - 엄마가 없다면 나는 한국인일 수 있을까?
이번에 읽은 도서는 『H 마트에서 울다』입니다. 저는 음식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을 자주 보는데요. ‘음식 애니메이션’을 보면 평소 먹을 때 생각하지 못했던 섬세한 맛 표현이 나와 음식에 대해 재인식하게 되고, 감각도 함께 일깨워 주는 느낌이 좋아서 자주 봅니다. 이번 책 역시 음식 애니메이션을 보는 이유와 비슷하게 외국인의 시각에서 본 한국 음식이 궁금해서 보게 됐습니다.

-줄거리-
책 제목 『H 마트에서 울다』와 표지만 봐도 알 수 있듯 저자 ‘미셸 자우너’는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슬퍼합니다. (시작부터 언급되니 스포는 아니겠죠.) 이번 책은 미셸 자우너가 자신의 삶을 돌아가신 어머니,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 한국 음식과 연관 지어 바라보는 일종의 애도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주의할 점은 표지나 첫 장을 보고, 이 책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의 주인공의 삶을 다룬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 책은 어머니를 기리는 애도의 과정 속 쓰인 글이기에 생각 이상으로 어머니의 돌아가시기 전 이야기 비중이 높습니다. (거의 대부분) 자신의 삶 속 어머니는 어떤 분이고, 어머니와의 삶은 어떠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과정은 어떠했는지를 한국 음식과 연관 지어 작성한 글입니다.

-예비 독자들에게-
이번 서평에선 특정 독자분들에게 책을 추천드리며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평소 외국 도서를 읽고 싶었지만 막상 읽으면 거부감이 들어서 못 보셨던 분들에게>
평소 외국 도서를 읽고 싶었지만 막상 읽으면 거부감이 들어서 못 보셨던 분들에게 외국 도서 입문작으로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외국 작가 글을 보면 항상 미묘하게 재밌습니다. 다른 문화에서 자란 작가의 글이다 보니, 재밌긴 한데 100% 이해하고 공감되지 않고 겉돌게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외국 시트콤에서 웃긴 포인트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처럼요. 근데 이번 책에선 그런 부분을 크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물론 작가분이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미국 정서가 분명히 느껴집니다만, 이번 책의 소재는 '한국인 어머니/ 한국 음식'이라서, 공감 가는 지점이 많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떠오르는 한국인이라면 공감할 장면들 덕분에 책에 겉돌지 않고 스며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국 특유의 정서에 익숙지 않은 분이 좀 맛보기로 외국 정서를 경험하기 좋은 책인 것 같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외국 작가의 한국에 대한 책을 이런 식으로 추천드리니 기분이 묘합니다만.)
🏷️'엄마는 집안일에도 똑같이 결벽증이 있어서 집을 빈틈없이 관리했다. 매일 청소기를 돌렸고, 일주일에 한 번씩 걸레받이에 묻은 먼지를 먼지떨이로 닦아내라고 내게 시키고 엄마는 나무 바닥에 기름을 바르고 걸레로 훔쳐 바닥을 반들반들하게 만들었다. 아마 엄마는 아빠와 나를 데리고 사는 것이 자신의 완벽한 세상을 파괴하기로 작정한 몸집 큰 두 어린이와 함께 사는 느낌이었을 것이다.~매주 먼지떨이로 걸레받이 청소를 하고 나면 엄마가 기분 좋아하던 걸 떠올리면서, 엄마가 돌아왔을 때 집이 더 깨끗해져 있으면 다시는 나를 혼자 남겨두고 외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리라 믿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엄마를 회유하려는 나의 처량한 몸짓이었다. 언젠가 라스베이거스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 부모님은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려고 몇 시간 동안 나를 호텔방에 놔두고 나간 적이 있었다. 혼자 있는 동안 끊임없이 방을 치우고, 부모님의 짐 가방을 정리하고, 수건으로 가구를 구석구석 닦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요즘 모든 음식이 지루해서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는 분들, 혹은 음식 에세이 또는 먹방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요즘 모든 음식이 지루해서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는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음식 에세이 또는 먹방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추천.) 주변 사람들이 무슨 음식을 말해도 지겹고, 새로운 음식 어디 없나 고민하시지 않나요? 저는 그럴 때 주변의 아무 자극 없이, 그저 그 음식을 오래 음미하려고 노력하는데요. 이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에게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 유튜브를 보면 가끔 답답해요. ‘아, 그렇게 먹는 거 아닌데.’라고 자주 생각합니다. 저자의 어머니도 같은 생각을 하셨나 봐요. 저자에게 어떻게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제대로 전수해 주고 가셨어요. 그래서 외국인이 한국 음식을 맛깔나게 너무 잘 묘사해서 먹는 법이 제대로 설명됐다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외국인의 독특한 시각이 담긴 맛 설명이 지루했던 음식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 줍니다. 색다르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이 책에서 얻어 갈 수 있다면 좋겠네요.
🏷️'아파트 출입구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부리나케 달려온 남자는 철가방 문을 열고 수북한 면과 돼지고기튀김과 걸쭉한 소스가 담긴 그릇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놓았다. 그릇마다 비닐 랩이 씌워 있고 옴폭 꺼진 랩 안쪽에는 수증기 방울이 몽글몽글 맺혀 있었다. 우리는 랩을 벗겨낸 다음 고기와 야채 덩어리가 든 검정 소스를 면 위에 골고루 얹고, 반들반들 하고 끈적끈적한 반투명 오렌지빛 소스는 돼지고기튀김 위에 쏟아부었다.'

<어머니가 그리운데 잘 떠오르지 않는 분들에게>
어머니가 그리우신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책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저희 어머니와 저자 어머니의 공통점이 너무 많아서요. 한국 어머니가 보편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개별성을 버리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기이한 구조에 종속돼서 그런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지만, 쉽게 설명하지도 떠올리지도 못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엄마는 외모에 집착이 심해서 밤이고 낮이고 QVC 홈쇼 핑 채널을 들어놓고 클렌징 컨디셔너며 특수 치약이며 캐비 아 오일 스크럽이며 세럼이며 모이스처라이저며 토너며 노화 방지 크림 따위를 전화로 주문했다. 엄마는 음모론자만큼이나 광적으로 QVC 제품을 신봉했다. 누가 그 제품에 의구심이라도 제기하면 엄마는 벼락같이 철벽 옹호에 나섰다.'
Ps.
추천사에 ‘이 책을 읽고 울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문장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울지 않을 사람이 없을 거라고? 진짜 기대되는데? 재밌겠네.’ 같이 호승심에 불타며 얼마나 슬플지 기대하는 분들도, ‘아, 진짜 슬픈 가보다. 너무 슬픈 건 싫은데.’하며 슬픈 정서에 거부감을 표하는 분들도,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가 슬픈 가보다’하고 호불호가 아닌 사실 직시만 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중 마지막 분류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두 번째 반응을 보였겠지만, 어머니의 투병 생활 중에 고른 책이라 그렇게 좀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너무 슬플까 봐 걱정하는 분들을 위해 제 감상을 말씀드리자면, 안타깝게도 저 역시 울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울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슬픈 책은 아니었습니다. 담담한 슬픔이랄까. 고조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라디오, 유튜브, 서평 등 다양한 추천을 본의 아니게 받으면서 스포 당했기 때문에 정작 책을 읽을 때 감흥이 크지 않았던 거 일 수도 있고, 저희 어머니가 병실 생활을 했지만 정정하시기에 감정 이입이 덜 됐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우울할까 봐 걱정돼서 읽고 싶지 않은 독자분들에게, 책 자체가 담백해서 그렇게 우울하진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라면, 책 자체보단 책으로 떠올리는 돌아가신 부모님으로 인해 꽤 슬플 수도.)

#H마트에서울다 #미셸자우너 #문학동네 #재패니즈브렉퍼스트 #에세이추천 #편집자지망생 #책서평 #책추천 #북리뷰 #북에디터 #어머니 #한국음식 #음식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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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썸머 - 나의 여름 방학 이야기 위 아 영 We are young 2
김다은 외 지음, 양양 그림 / 책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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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으면 봄이 가고, 여름이 옵니다. 아니, 사실 날씨만 보면 벌써 여름이죠. 여름이 오는 기념으로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사실 저는 여름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여름엔 개구리가 나오잖아요? 제가 개구리를 무서워하거든요. 그냥 무서워하는 정도를 넘어 개구리 사진도 못 보고, 개구리 보고 기절하기도 하고… 제가 이상심리학 수업을 들으면서 알았는데, 전 개구리 공포증입니다. 다행이더라고요. 어렸을 때, 전 굉장히 비웃음 받았어요. 사람들이 뱀 무서워하는 건 이해해도, 개구리 무서워하는 거? 이해 못 하거든요. ‘그게 뭐가 무서워, 징그럽긴 한데.’ 제 책상 위에 개구리 가져다 놓은 친구도 있었고, 개구리 사진을 잘라서 절 쫓아오며 사진을 보여주는 친구도 있었어요. 그냥 놀림감이었던 거죠. 주변 반응이 그러니까 저도 사실 제가 유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유난인 게 아니라니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하여튼 개구리가 무서워 주로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여름방학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는데, 이번에 제가 가제본 서평단 신청을 해서 받은 ‘우리 지금, 썸머’는 기억나지 않던 여름 방학을 떠올리게 해줘 느낌이 색달랐던 작품이었습니다. ‘우리 지금, 썸머’는 8명의 작가가 자신의 여름방학을 이야기해 주는 앤솔러지입니다. 이번 책은 책폴 출판사에서 나오는 ‘위 아 영’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데요. 첫 번째 책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어’(겨울 방학 이야기)를 ‘책읽아웃’에서 소개받고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운명처럼 2권이 서평단 모집하길래 냉큼 신청했죠.

?

-차례-

‘우리 지금, 썸머’는 여름 방학 이야기입니다.

김다은의 '나의 지나간 여름에 대하여', 류시은의 '더 깊은 곳으로 풍덩'

장경혜의 '여름의 끝과 시작', 박다해의 '여름을 걷는 시간',

박산호의 '여름 그리고 사람', 이병윤의 ‘무지개가 피었다’,?

이현석의 '우리가 함께 보낸 여름', 하고운의 ‘렘브란트의 여름-부산 덕천동 이야기‘?

등의 작품이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수록됐고, 마지막에 그림작가 양양의 말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번 작품을 읽기 전, 저는 어렸을 때의 여름 방학만 떠올렸었는데요. 막상 보니 ‘어렸을 때’라기보단, 아주 어렸을 때부터 현재를 아우르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어렸을 때의 비중이 압도적이지만요. 또한 어떤 작가님은 기승전결로 글을 쓰셨지만, 어떤 작가님은 관련 없는 과거의 파편들을 같이 넣어두신 분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일기장 느낌)

-예비 독자들에게-

모든 작품을 소개하기엔 좀 부담스러워서 일부만 소개해 드릴까 하다가 4가지 경우로 나눠 예비 독자분들이 어떤 작품의 어떤 부분을 집중하면 좋을지 말하려 합니다.


<여름 방학 때, 바다로 놀러 갔던 경우>

혹시 어렸을 때 여름방학마다 어디로, 누구와 놀라갔던 기억 있으신가요? 친가나 외가에 놀러 갔거나, 바다에 놀러 갔거나 아니면 방학마다 같이 놀던 친구가 있으신 분들! 김다은의 '나의 지나간 여름에 대하여', 류시은의 '더 깊은 곳으로 풍덩'을 추천드립니다. 그중 특히 어렸을 때 바다에서 일어난 일을 집중적으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의 지나간 여름에 대하여'엔 저자님이 여름방학에 바다가 코앞인 외갓집에 놀러 갔던 이야기가 담겨있고, '더 깊은 곳으로 풍덩'엔 저자님이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c와 바다에서 놀던 이야기가 담겨 있어 어렸을 적 바다에서 여름 방학을 누군가와 보낸 추억을 떠올리기 좋습니다.

'물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겁쟁이가 되는 게 싫었던지라 바다에 나가기를 게을리하진 않았다. 물론 어떻게 해야 내뺄 수 있을지 늘 핑계를 찾아 두리번거리곤 했지만'p14

?

'그 동네가 좋았다. 줄과 몽둥이를 들고 개를 잡으러 돌아다니는 아저씨들 대신 바구니를 들고 전복 껍데기를 수거하러 다니는 아주머니가 있는, 창문을 넘어온 강도가 식칼로 엄마의 목을 겨눌 일 같은 것은 없는, 안전하고 쾌적한 그 집에 오래 머물렀으면 했다.' p56

<어렸을 적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하고

배제당한 기분을 느낀 경우>

어떤 무리에 속하지 못하는 기억은 참 슬픕니다. 저도 초등학교 때 부탁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팀에서 괴롭힘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팀이 금방 바뀌어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아주 잠깐 경험했는데도 불구하고 평생 제 마음속에 남아 안 좋은 버릇으로 나타났어요. 저와 같이 소속되지 못하고 배제 당한 기분을 경험했던 분들! 장경혜의 '여름의 끝과 시작', 박다해의 '여름을 걷는 시간’을 추천드립니다. 그중 특히 배제 당했을 때의 감정과 고민, 그를 이겨내는 모습을 집중해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름의 끝과 시작' 속 저자님은 중학교 때, ‘액취증’으로 갈등을 겪었는데, 직접 해결하지 못하고 졸업으로 그 상황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후 고등학교 시절엔 땀 냄새가 나지 않도록 자신을 검열했고, 결국 대학교 시절엔 액취증 제거 수술을 했지만 감정만큼은 해소되지 못했기에 일의 끝을 스스로 잘 매듭짓지 못하는 버릇이 생겨 고민이라고 합니다. '여름을 걷는 시간’ 속 저자님은 학창 시절, 잦은 이사로 9년 동안 다양한 학교를 다녔는데, 영동대교 북단의 중학교의 친구들과 영동대교 남단의 친구들은 매우 달랐습니다. 저자님은 두 곳에 적당히 적응할 수 있는 존재이면서 완전히 스며들 수 없는 경계에 서, 그 시절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세상엔 '힘내'라는 말보다 '나도 그랬다'라는 말이 더 위로될 때가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읽을 여러분에게도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열다섯의 나는 늘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미움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에 대해. 내가 남을 해하거나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닌데 존체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 경멸의 대상이 되고 사랑받지 못하다는 것은 얼마나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인지에 대해. 그리고 그런 불합리한 시선을 받았을 때 왜 나는 당당할 수 없는지에 대해.' p39

?

'가끔씩 한강을 건너며 열다섯 살에 처음 서울에서 만난 인연들을 곱씹곤 했다. 이미 성공을 보장받은,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사는 고등학교 친구들에 견주면 한없이 불안한 삶이라고 사회는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연한 차이였을 뿐, 어른들이 보지 못한 세계의 이면엔 이곳 친구들만의 따스함과 포용력, 이타심이 존재했다. 어른이 되어 갈수록 그 가치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것들이었다.' p132

<학창 시절 선생님에게

체벌과 언어 폭행을 당한 경우,

혹은 본인이 선생님인 경우>

선생님. 참으로 좋은 단어이지만, 세상에 좋은 선생님은 흔하지 않죠. (스승의 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좀 그렇지만) 저는 학교를 다니며, 선생님도 학교란 직장을 다니는 나이가 어른인 사람일 뿐, 선생님이란 직함이 성숙함을 보장해 주진 않는다는 사실을 체벌과 언어폭력을 경험하며 느꼈습니다. 저와 같은 경험을 하신 분들이라면, 혹은 본인이 선생님이라면, 박산호의 '여름 그리고 사람', 이병윤의 ‘무지개가 피었다'에서 선생님 관련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굉장히 많은 영향을 주잖아요? 이 두 작품에서 성숙지 못한 사람이 선생님이 될 경우, 학생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학생의 입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담임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반의 모든 아이들에게 무례했다. 아이들을 철저하게 성적으로만 평가했으며, 10개 반 중에 항상 9,10등을 해서 자신을 망신시킨다며 우리들을 증오했다. 월말고사가 끝날 때마다 모두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 꿇게 한 후 허벅지를 회초리로 두들겨 팼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정이고 뭐고 싹틀 수 있겠는가. 그토록 외로웠던 한 해가 다시 있을까 싶을 만큼 나는 처절하게 고독했다.' p86

?

'학교에는 불량 학생과 문제 아이들을 따로 모아서 교화하는 'Peak'라고 불리는 교실이 있었는데, 나는 항상 폭행을 당한 피해자 입장임에도 'Peak'에 보내졌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는 잘 가지 않는다.'p167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경우>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어린이에게 존댓말 하는 것부터 연습해요. 한두 살 차이 나는 경우는 쉽지만, 너무 나이차가 많이 나면 '안녕하세요'가 어렵더라고요. (저도 참 편견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면, 이현석 '우리가 함께 보낸 여름'의 국어선생님과 하고운의 ‘렘브란트의 여름-부산 덕천동 이야기' 속 예정 언니를 유심히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 보낸 여름'에선 국어선생님이 여름방학에 학생들이 만들고 싶은 문지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모습이 나오고, ‘렘브란트의 여름-부산 덕천동 이야기'에선 저자의 요구를 거절 없이 존중하며 받아주는 예정 언니의 모습이 나와 존중의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옆에서 방법은 제시했지만 방향은 제시하지 않았다. 무슨 주제를 택할지는 전적으로 우리 몫이었고 선생님은 우리를 지켜보다가 꼭 필요한 때만 말을 거들었다.' p102


'언니는 언니 뜻대로 내게 뭔가를 요구하거나 해 준 적이 없다. 다만 내가 뭔가를 하고 싶어 할 때, 옆에서 그걸 같이 해주었다. 생각해 보면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어른의 태도가 무엇일까 생각할 때 나는 때때로 예정이 언니를 떠올린다. p157

-이 책은 책폴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제 사견대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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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들 - 모마 미술관 도슨트북
SUN 도슨트 지음 / 나무의마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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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SUN 도슨트의 ‘그림들’

모마 미술관 도슨트가 알려주는 쉬운 현대 미술

미술관에 간지 너무 오래됐다. 그림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러다 ‘미국의 그림 해설가가 직접 선정하고 안내하는 모마 도슨트 북 『그림들』라는 문구를 SNS로 봤을 때, 미국의 그림 해설가가 직접 선정하고 안내한다는 말에 꽂혀 ‘모마 도슨트 북’은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다음 목차를 볼 때도, 작가들 구성에 흥분해 또 보지 못했다. 그렇다. 사실 빌릴 때까지, 이 책이 미국 뉴욕의 모마 미술관 도스 노트북인 줄 몰랐다. 그저 표지가 예쁘고 그림 해설가가 안내하고, 내가 좋아하는 화가가 많이 나온 책. 이게 내가 생각한 『그림들』이다. 희망도서로 책을 도서관에서 받고 딱 앞표지의 ‘모마 미술관 도슨트 북’이란 부제를 보고 나서야 깨달았는데, 뒤표지의 질문들이 나를 홀려 그건 아무 상관 없었다.

편집자의 센스에 감탄한다. 질문을 보고 당장 책을 펼치고 싶어졌다.


-차례-

<그림들>은 모마의 작품 해설, 작가 일생과 작품 세계, 작가/작품 관련 이슈 등으로 구성됐다. ‘모마 도슨트 북’이 맞다. 다만, 그렇다고 생각처럼 모마 미술관의 그림에 대해 줄줄이 설명한 책은 아니었다. 저자는 모마 미술관 작품 중 꼭 봐야 할 대표작 16편을 작가와 연관 지어 설명하고,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 되는 다른 미술관 작품도 이야기한다. (즉, 모 마의 작품보단 작가에 더 큰 비중을 둔다. 하긴, 애초에 목차 구성이 작가 중심이니까.)

<그림들>의 작품에는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 나는 밤>,

클로드 모네 <수련>,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앙리 마티스 <춤 1>,

마르크 샤갈 <나와 마을>,

르네 마그리트 <잘못된 거울>,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프리다 칼로 <풀랑-창과 나>,

에드워드 호퍼 <주유쇼>,

피에트 몬드리안<브로드웨이 부기우기>,

잭슨 폴록 <원 : 넘버 31>,

마크 로스코 <넘버 5/ 넘버 22>,

로이 리히텐슈타인 <공은 든 소녀>,

앤디 워홀 <켐벨 수프 캔>,

장 미셸 바스키아 <글렌>,

이중섭 <신문 읽는 사람들>,<낙원의 가족>, <복숭아밭에서 노는 아이들>등이 있다.

정말… 다 가슴 설레게 하는 화가와 작품이다.



-예비 독자들에게-

‘모마 도슨트 북’은 특정 외국 미술관 도스 노트북인 걸 떠나서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미알못에게 추천하고 싶을 만큼 읽기 쉬운 책이었고, 정말 솔직히 근래에 본 작품 중 가장 책 내용 구성,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화집은 이런 식으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 서평에서는 특정 화가의 이야기를 보라고 하기보단, <그림들>의 강점, 단점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강점-


<그림들>은 화북이라 그런지, 작가 또는 출판사의 능력인지 책 내용 구성, 디자인이 돋보였다. 면지부터 그냥 색지가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 오요우의 일러가 들어갔다. 또한 도슨트북인 만큼 독자들이 ‘모마 미술관에서 보는 느낌’에 몰입하도록 연출했다. 첫 번째로 처음부터 모마 미술관 건물도와 함께 6층 또는 5층까지 올라간 다음, 한 층씩 내려오면 모마의 작품들을 시대순으로 관람할 수 있다는 감상 팁을 알려줬다.




이는 <그림들> 작품 소개 순서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6층 작가부터 소개하여 최대한 실제 관람과 비슷하게 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두 번째, 모마의 작품을 포함한 주변 풍경을 담은 현장 사진을 장 전체에 큼직하게 넣어 작품 앞에 실제로 내가 있는 느낌이 든다. (관람객이 모마 작품을 보고 있는 사진도 있다)



마지막으로, 모마 미술관과 관련된 이야기로 모마 미술관에 친근감을 느끼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어 모마 미술관에 BTS가 와서 작품을 감상했던 일화라든지, 모마에서 전시했던 한국의 화가 이중섭 이야기를 특별부록으로 수록한다든지, 모마 미술관 관련 역사를 삽입한다든지, 모마 미술관이 각각의 작품을 소장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한다든지.(유일하게 클로드 모네만 소장 배경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일까?)

친근감을 느낄수록 모마 미술관에서 보는 느낌에 더 잘 몰입됐다.

그 외에 한 파트 끝에 화가 일생을 요약한 부분에서 감탄했다.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 참 잘 정리했다. 또, 작가의 말이나 인터뷰 부분은 삽입한 부분도 실제 작가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단점-


굉장히 마음에 든 책이지만, 그렇다고 단점이 없진 않다. 우선, 소소하게 장의 시작 부분, 작가 이름은 외국어로 작게, 장제목은 크게 디자인하여 작가를 한 번에 인지하기 어려웠다.

미술관처럼 작가 이름은 작게 넣고, 작품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게 한 걸까? 그렇다기엔 애초에 작가 중심으로 전개되니까 하다못해 페이지 표시 옆에 작가 이름을 삽입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또한, 아무래도 크라우드 펀딩해 주신 분들이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미알못)에게도 쉬운 책을 요구해서 쉽게 구성하다 보니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도 많았다. ‘미알못’이 보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미술에 어느 정도 관심 있는 분들이 보기엔 이미 알고 있는 내용 일수 있다는 단점도 동시에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작가 당 배분된 장수. 한 작가에게 배분된 장수가 10장도 안되는 건 좀 그렇다. 이야기를 쉽게 하다 보니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만약 지면의 한계 때문이라면, 차라리 작가를 줄이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한다. 앞에 비해 뒤로 갈수록 점점 작가 당 장수가 짧아지는 느낌이라 독자 입장에서 좀 마음이 불편했다. 특히 개인적으로 장 뒤표지의 ‘요즘 광고와 영화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핫한 까닭은?’이런 질문에 어떤 답을 줄 기대했는데, 책 내용상 답을 지나치게 짧아 실망했다. (편집자 지망생으로서 뒤표지 질문엔 감탄이 나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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