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초병이 있는 겨울별장
박초이 지음 / 문이당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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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초병이 있는 겨울 별장> 박초이 장편소설 문이당 삶과 세상의 원형감옥


 첫눈이 내리던 일요일, 창문으로 보이는 밖은 동화의 세계였다. 헐벗은 나뭇가지에 소록소록 눈이 쌓이고, 어릴 때 함박눈 속에서 뛰놀던 고향이 그림으로 그려졌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하얀 세상과 아름다운 시간이 아련히 다가왔다 멀어졌다. 내리는 눈을 보며 소설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드르륵 핸드폰이 떨었다. ‘코로나 19’ 검사를 받으라는 메시지였다. 일주일 전, K의 허리병이 도져 갔던 온천에서 코로나 19’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다. 집에서 가까운 X보건소 선별진료소 가는 길은 멀었다. 잿빛 하늘에서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X보건소 선별진료소 천막 안에 서있는 사람들 뒤에 엉거주춤 섰다. 그들의 얼굴은 불안과 추위에 떨고 있었다. 곧 내 뒤로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천막 밖까지 긴 줄이 이어졌다. 오래 기다린 후에 접수를 하고, 체온을 재고, 마지막 컨테이너 안에 들어갔다. 매일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의료인이 내 코와 입에서 검체를 앗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어둡고 잿빛이었다.

 

 ‘코로나 19’ 검사를 받고 몇몇 사람들과 회사에 비상연락을 했다. 떨리는 목소리들이 오고 가고, 여러 상황들이 긴박하게 취해졌다. 밤이 불안으로 찢어져 내렸다. 밤은 긴 어둠에 잠겨버렸고,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았다. 깜박 졸다가 깨었는데, 어느새 동이 트기 시작했다. 밑바닥까지 잠겨있던 어둠이 물러가고, 강추위와 함께 날이 밝았다. 창문에 성에가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고, 격리된 삶도 싸늘했다. 오후 1시에 되어도 보건소에서 검사 결과를 알려주는 메시지가 오지 않고, 여기저기서 걸려온 목소리들이 떨려왔다. 급기야 보건소로 간신히 통화 끝에 음성이라는 검사 결과를 들었다. 불안감이 조금 걷혔지만, 긴장으로 몰려온 피곤으로 푹 쓰러지고 말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다가왔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소설가 박초이가 쓴 <보초병이 있는 겨울 별장>을 읽었다. 이 소설은 코로나19’로 어둠과 죽음에 빠진 지금의 삶과 세상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있다. 혈액원 출장 팀이 양천에 있는 부대에서 채혈을 마치고 보초병이 있는 군인별장인 용호별장에서 묵는다. 요즈음 매일 듣는 코로나 바이러스 뉴스처럼 필리핀 치커 섬에서 발병한 바이러스 뉴스를 소설 속에서 읽었다.

 

 “채널을 돌리자 최의 손이 멈췄다. 치커바이러스에 관한 내용이었다. 치커 섬에서는 단백질 보충을 위해 개미를 먹는 습관이 있는데, 개미에 의한 바이러스로 추정된다고 앵커가 말했다. 증상으로는 설사와 구토, 복통, 가려움증이 수반되며 긁을 경우 출혈이 생긴다고 했다. 또한 심할 경우 몸이 붓고 급기야는 피를 토하고 죽게 된다고 앵커가 전했다. 필리핀 당국에서 치커 섬을 봉쇄했는데도 불구하고 도시에서 증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말도 했다. 외교부에서 필리핀 여행 자제를 부탁했다.”

 

 양천 사람들이 지역 축제에 다녀온 후 치커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한다. 결국 전국적으로 치커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2만 명을 넘어선다.

 

 “뉴스에서 우리나라 확진자 수가 2만 명이 넘었다고 보도했다. 모든 식당과 카페, 놀이시설은 영업금지를 당했다. 행사나 모임, 종교시설에 대한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졌으며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다. 고속버스나 열차 운행도 중단됐다. 확진자가 천명 아래로 떨어질 때까지 강경한 대응을 하겠다고 정부에서 발표했다. 외국 소식도 온통 비극적인 소식뿐이었다. 연일 확진자 수가 증가했고, 교통이 마비됐으며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치커바이러스 확산으로 혈액원 출장 팀은 대위에 의해 용호별장에 격리된다. 영천산을 뒤덮는 폭설이 내리고, 눈과 바이러스에 갇힌 용호별장은 원형감옥이 된다. 원형감옥에서 출장 팀은 치커바이러스처럼 무서운 대위의 광기를 견뎌야만 했다. 출장 팀 책임자 최는 치커바이러스 확진되어 죽음을 당하지만, 영미는 바이러스와 싸워서 살아남는다. 눈이 녹고 꽃이 피는 봄이 왔다. 부대 복귀 명령을 받은 대위에게서 풀려나 원형감옥을 벗어나는 출장 팀에게 두 번의 총소리를 들려온다. 원형감옥은 무너지고, 항체로 바이러스를 이겨낸 출장 팀은 집으로 돌아간다. 소설가 박초이가 쓴 <보초병이 있는 겨울 별장>이라는 소설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자화상을 비극적으로 그려냈다.

 

 ‘코로나19’로 시작되는 성탄절 아침이 밝았다. 아침부터 우리 부서 T와 접촉한 사실을 묻는 메시지가 오고, 곧이어 익명으로 어느 직원이 코로나19’에 확진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제 내 주위에도 코로나19’가 가까이 와서 어둠의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확진된 직원은 이제 조사를 받고, 격리를 당하고, 치료를 받아야하는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틀어놓은 뉴스에서 성탄절에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최대치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올해는 우울한 성탄절이 되고 말았다. 이제 삶과 세상은 코로나19’에서 벗어날 수 없는 원형감옥이 되고 말았다. 소설가 박초이가 쓴 <보초병이 있는 겨울 별장>이라는 소설처럼 우리도 언제 코로나19’의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소설은 현실의 거울이다. 그 거울로 지금의 삶과 세상을 비쳐보며 어둡고 비극적이다. 벌써 세계적으로 코로나19’에 확진된 사람이 8천명을 넘어섰다. 전 세계 인구의 1%코로나19’에 감염되고 말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을까?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가. 소설은 이 어두운 바이러스 시대에 삶과 세상을 성찰하고, 길을 찾게 한다. 그 험난한 길을 소설 <보초병이 있는 겨울 별장>이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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