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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내가 선명해지는 동시에 내가 사라지는 기분은 아주 근사했다.” 이 문장 속에서 나는 나의 짧았던 대학 시절과 그것을 툭 끊어내버린 자퇴 하던 날이 떠올랐다. 여름학기 이후로 동기들이 하나 둘 휴학을 하거나 보이지 않았고 자퇴를 하겠다는 친구들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학교를 그만두는 일은 큰 결정인데 그때의 나는 신중하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망설임이 없었다. 새로운 학교와 꿈을 찾겠다는 친구들 말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나도 덜컥 학교를 자퇴했다. 스무살 늦가을,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캠퍼스는 온통 황금빛이었다. 자퇴서를 작성하고 교수님과 면담을 마친 뒤 밖으로 나왔다. 학교를 그만둬도 삶은 이어지겠지만 이곳에서의 나는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허무하면서 시원했고 앞으로가 기대되면서도 절망적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거의 곧바로 대전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는 자연스러운 이별을 가장해 부자연스럽게 헤어졌다. 고향에 내려오니 불과 며칠 전 까지 함께 밥을 먹고 일상을 공유하던 ‘그곳 사람들’이 아주 멀고 원래부터 모르던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유효할 것 같았던 사랑은 삽시간에 무효해지면서 귀찮아졌다. 화를 낼 일이 아니었는데 화를 냈고, 다퉜고,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의 설득이나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모른 체 했다. 어서 빨리 사라지고 싶었던 것 같다. 되도록 멀리.
그와 헤어지고 나니 얼추 모든 게 정리되었다. 하지만 급하게 서둘러 정리한 탓인지 당시 처리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여전히 나를 괴롭힐 때가 있다.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 지 여지껏 알 수 없었지만 소설 속 ‘나’가 ‘혜인’을 만난 뒤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느낀 기분과 비슷한 것 같다. “뛰는 심장의 무늬를 구별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답을 찾고 싶지도 않았다.”
올 3월 기차를 타고 그 시절의 친구를 만나러 갔었다. “향기라기보다는 기운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는, 혹은 머릿속이 만들어낸 환후일지도 모르는” 그것을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나도 느꼈던 것 같다. “그건 꼭 일년중 3월에만 찾아왔고 나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그 향기를 감각할 수 있었다. 그 냄새를 맡은 내 심박은 빠르게 뛰어올랐고 그것은 내 입가로 와 미소가 되어 터졌다.” 소설을 읽으면서 또 다시 그 시절을 찾으러 가는 기분이었다.
소영과 나는 성심당 옆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소영은 나보다 먼저 학교를 그만두고 새로운 학교와 꿈을 찾았고 심지어 최근에 졸업까지 했다. “우리가 대전에서 만날 줄이야.” “그러게,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았는데.” 둘 다 이곳을 떠났지만 6년만에 이곳으로 여행을 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학교 쪽으론 절대 가지 말자.” 약속했다. 사실 나는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들을 일별하려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친구가 싫어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 막상 그렇게 하기엔 ‘내가 이곳을 잘 모르지 않나.’라는 의문도 들었다.
우리는 학교 다닐 때 가봤던 곳들이 아닌 sns로 찾아낸 식당과 카페에 갔고, 동기들이나 선배들 소식과 동떨어진 대화를 했다. 같은 시절을 공유했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때와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그것이 좋기도 슬프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즐거웠고 우리가 그저 친구라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소영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엄습하는 감정이 부끄러움이 아니라서, 누릴 것이 많았음에도 그 시절을 강제 종료시켜 버린 스스로에게 드는 죄책감을 그나마 억누를 수 있었다. 사방이 어둑해지자 슬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카페에서 나와 대전역 쪽으로 걸었다. 그때 그곳으로 걷지 말 걸 그랬다고 이 글을 쓰면서도 조금 후회하고 있다. 대전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저 너머 밝은 불빛이 켜진 우리의 x - 대학교가 보였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렇게 역에 도착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포장마차들이 있었다. 대전역 앞 포장마차로 인해서 내가 과거를, 나의 스무살과 대학시절을 멀리 하려고 했던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되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던 일들까지, 아니 내가 왜 이런 것까지 기억하고 있나 싶은 일들까지 모조리 떠올라버렸다. 포차에서 파는 우동 맛, 손을 잡고 걷던 밤들, 혼자 되돌아 가던 골목길, 내일 또 볼 거지만 못 볼 사이처럼 플랫폼에 서서 나눈 긴 작별 포옹까지 모두 다. “가슴 안쪽을 고운 사포로 긁어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울 것 같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의 나를 다시금 체감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긴 흘렀다, 그 시절을 통과해 왔구나 라고 감각했다. 그 감정은 고향에 도착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김봉곤 작가님의 <시절과 기분>은 지금의 나에게, 잊고있던 그 시절의 나에게 한 번 다녀오라고, 다녀와도 아무 일 없다고, 슬프고 괴로울 것 같지만 마주하면 나름대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소설이었다. 흑역사와 부끄러움만 남겨져 있을 것 같았던 나의 그 시절에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반짝거리는 마음이 있었고 세상 모든 게 다 처음이라 서툴지만 귀여웠던 우리가 있었다. “누가 회계사가 되었고, 누가 공사에 들어갔고, 부가율과 소득률이 뭔지 알 게 뭐였으며 마찬가지로 혜인은 내가 어디에 무엇을 발표했고 무슨 글을 쓰는지 한발짝만 벗어나면 전혀 알 수 없었다. 한편 그녀가 나의 세계를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는데, 그 시절의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모르고 관심도 없다는 사실은 내 용기이기도 했다.” 소설의 ‘나’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 또한 그 시절의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그리고 미래의 나를 앞으로도 영영 모르고 관심도 가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따금 자신들의 그 시절 속에 존재했던 나를 뭐라도 어떻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그리워하거나,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그때로 퐁당 들어가 나와 만나 주길 원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주아주 오랜 뒤에 고백해줬으면 한다. “슬픈 것과 사랑하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 슬픈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 생각했고 아무여도 아무래도 좋을 일이라고도 잠시 생각했다.” 착각하고 있었다면 바로잡고, 착각하지 않은 채 살고 있었다면 잠시나마 ‘그것이 대체 무엇이었나’ 충분히 헷갈려 해 보기를. 그 시절 그 기분에 퐁당 들어갔다 나오면, “그래서 지금의 나는 무엇이냐?”고 대면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훨씬 간단해진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무엇이다.”라고 대답하는 것 대신 ‘지금 이 시절은 또 어떻게 쓰여질지’ 궁금해진다. 김봉곤 작가님이 그려내실 또 다른 시절에 나는 언제코 기쁜 마음으로 끌려 갈 것이고, 앞으로 나는 내가 지나쳐 온 그 시절의 아름답고 귀한 찰나의 순간들을 잊은 채 과거를 부끄러운 흑역사로 퉁 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거라고 얕은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