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그리너리 - 도시를 걸으며 생태를 발견하다
최성용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때 학교에서는 자연과 도시를 대립적인 개념으로 배웠다. 물론 사전에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상태로 저절로 생겨난 것을 '자연'이라고는 말한다. 그래서인지 분명 도시에는 나무와 풀의 푸른 빛이 있고,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곤충과 고양이가 있어도 자연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티 그리너리>를 보며 인간이 살아가는 도시 역시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인간 외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제거 대상에 가깝다. 공존을 위해서라고 말하며 TNR 사업을 진행하는 길고양이도 그렇고, 평화의 상징에서 게으르고 지저분한 동물로 낙인찍힌 비둘기도 그렇고,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는 모기에서부터 낯선 형태로 혐오감을 주는 모든 곤충과 절지동물이 그렇다. 그런 점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로 (인간에게 이로운) 산소를 내뿜어내는 식물은 긍정적으로 허용되는 생물체다. 다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늘 가까이에 있고 눈으로 보고 있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빈약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식물의 치열한 삶이 느껴져, 가로수길을 걷는데 생동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사실 예전에는 가로수나 공원, 아파트 단지의 나무와 풀을 보며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자연에서 자랐다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는 것을, 식물을 통해 도시의 공기를 정화하겠다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괴로운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고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식물은 나름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었다. 


특히 식물이 종족 번식을 위해 인간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껏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도시에 있는 모든 식물은 인간의 취향에 맞게 심어진다. 인간이 먹기 위해 기르는 채소는 물론이고, 유전자 조작을 해서 길러내는 식물도 모두 인간이 인위적으로 골라내어 길러낸 식물이고, 가로수도 취향에 따라 바뀌어 심긴다. 여기에 식물의 의지는 전혀 반영되지 않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식물의 처지에서 보면, 인간도 자연의 포식자 중의 하나일 뿐이다. 식물은 포식자에게 잘 보이는 종이 살아남아 종족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그들 나름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자연 상태에서 은행나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멸종위기 종이라고 한다. 하지만 멸종위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도시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고 가을이 오면 노란 은행잎을 떨어뜨리거나 고약한 은행 냄새를 뿜어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인간은 은행나무가 멸종되지 않도록 열심히 묘목을 심고, 은행나무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아름다운 풍경(과 구우면 맛있는 은행)을 제공한다. 인간과 은행나무는 서로의 이해관계를 충족하며 공생 관계를 이어간다. 한마디로 인간은 은행나무의 종족 보존을 돕는 생물체인 것이다.


자연에서 인간을 제외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자연보다 우월하다는 어떤 근자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행동도 사실은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일지 모른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틈새를 잘 찾아 살아갈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인간이 차지한 틈새가 영원히 인간의 것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