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 허스토리
윌리엄 몰튼 마스턴 원작, 질 르포어 지음, 박다솜 옮김 / 윌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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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원더우먼 허스토리를 읽었다. 원더우먼을 그저 헐벗은 유사 남성 히어로라고 생각했기에 그 캐릭터가 시사하는 여성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겠지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원더우먼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전에 원더우먼의 창작자 윌리엄 마스턴의 이야기가 충격을 주었다.


어릴 때 부터 함께 자라와 결혼으로 인연을 맺은 할러웨이를 두고 헌틀리와 연애를 했다는 것은 새발의 피였다. 열 살 아래에 스승과 제자로 만났던 올리브와 함께 살고자 할러웨이에게 선택을 요구한 것은 기상천외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할러웨이 역시 함께 사는 것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거짓말쟁이에 성도착자로 낙인 찍혀 학계에서 쫓겨난 마스턴 대신, 할러웨이가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해야했고, 할러웨이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낳은 아이를 올리브가 돌봐야 했다. 이보다 영화 같은 일이 있을까 싶은데.. 역시 올해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한다고 한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일부일처제 사회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다자간의 연애와 중혼이라는 주제는 마치 금기와도 같았다. 게다가 '아내가 결혼했다'처럼 한 여자가 두 남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었다면 그래도 이해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한 남자에 두 여자라니, 너무도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틀이 아닌가. 물론 이들은 흔히 여자들을 시기와 질투심의 화신처럼 묘사하며 서로를 물어뜯는 형태로 관계를 맺는 것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의 아버지를 비밀리에 부치고 그것을 죽을 때까지 지키고 싶었던 올리브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가족의 평화는 유지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생각해보자. 내가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살지 않았다면, 한 사람을 독점하여 평생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회에서 교육받지 않았다면 그래도 그것에 거부감이 들었을까? 비록 키우는 고양이가 나보다 동생에게 더 의지할 때 질투심을 가질만큼 독점욕이 강하더라도, 그것이 본성이 아니라 교육된 것일 수 있을까?


배타적 연애감정에 대해 생각하면서, 마스턴이 올리브와의의 동거를 제안했을 때 할러웨이의 마음을 떠올렸다. 나라면 그 순간, '다른 여자와 함께 살고 싶음 = 나를 사랑하지 않음'으로 생각하고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 관계를 파탄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할러웨이가 그 관계를 유지하겠다 생각한 것은 마스턴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확고함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만약 한 사람이 다른 한사람하고만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없다면,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을만하고 분명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나도 다자간 연애가 가능할까?


솔직히 일부일처제의 시스템의 환상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내게는 불가능하다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진짜 원더우먼은 그 시대의 관념을 벗어던진 할러웨이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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