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 -THE GHOST IN THE SHELL-
시로 마사무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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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마사무네의 공각기동대는 단편으로 시작했다가 연재가 된 경우라고 한다. 그래서 이야기 분량도 들쭉날쭉하고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이런 정신사나운 책을 다듬은 것이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 애니다. 만화책의 여러 가지 소재를 잘 이어붙였으나, 유머 없이 메시지에만 집중했다. 오래전에 애니를 봤었는데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었다. 그 이유를 몰랐으나 이번에 다시 보고나니, 애니만 보고 파악하기에 내용이 어려워서였던 것 같다. 확실히 만화책을 보고 애니를 보니 배경 지식이 있어 이해하기가 수월했다. 뒤이어 TV판 애니도 조금 봤는데, 책과 스토리 자체는 동일하지 않지만 같은 세계관의 이야기를 다뤘다. TV판에서는 유머를 살려서 보기 더 편했다.

공각기동대는 만화책에서 애니 극장판, TV시리즈, 소설, 게임, 영화 등등 원 소스 멀티 유즈로 다양하게 활용될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어떤 것이 가장 재미있었냐고 묻는다면 현재로서는 TV시리즈이지만, 원작도 날것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만화책을 보면서 생각났던 몇 가지 생각들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1. 걸크러시 쿠사나기 토모코

p.41
"우릴 해방시키러 와주신거죠?"

"너도 고스트가 있을 텐데?
뇌도 멀쩡히 있고, 전뇌에도 액세스 가능해.
네 미래는 네가 직접 만들어."

소좌가 멋있다 생각한 부분이다. 어쩌면 매몰차지만, 현실적인 이야기.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구원자가 될 수는 없다. 구원은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 내가 종교에 빠지지 못했겠지.

나무위키를 보면 작가가 여체와 메카닉에 홀릭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그 옛날 시대에 여성인 쿠사나기 토모코가 주인공이 되었겠다 싶다. 그래도 TV판에 비해서 쓸데없는 노출은 없어서 보는 데 불편하진 않았다. 온몸이 사이보그인 소좌가 여성의 신체를 유지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작가의 이런 집착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데, 그래도 TV시리즈에서는 개연성 있는 이유를 만들어냈다. 소중한 사람한테 받았던 여성용 시계를 계속 차고 다니고 싶어서라고.

2. 인간인 나는 실존하는가

p.102
난 종종 '진짜 나는 이미 죽었고
지금 이 나는 의체와 전뇌로 구성된 모사 인격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어.

매트릭스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내가 사는 세계가 진짜 세계가 아닐 수 있다니! 공각기동대는 반대로 나 자신이 실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던진다. 물론 소좌의 경우 온몸이 사이보그인 데다가 뇌까지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어서 이런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홀로그램 우주설이 대두되는 지금, 내가 인간으로 실존하고 있는지 의심되는 것이 사실이다. 아니 이쯤 되면 인간이 도대체 뭐길래 실존이고 뭐고 논한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3. 인간만이 가진 무언가?

p.144
옛날 어느 모험가가 이런 말을 했지...
'인간은 가끔씩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다.'

근래 즐겁게 보고 있는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2회에는 디지털이 발달하기 전과 후의 인간이 뇌를 쓰는 방식을 비교하는 내용이 나온다. 원고지에 글을 쓰던 시절에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종이와 펜, 잉크의 값) 마구 휘갈기기보다는 한 문단을 머리에 어느 정도 완성시킨 후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는 컴퓨터로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고, 지우고, 수정한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은 어쩌면 머리를 많이 쓰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글을 수없이 쓰고 지우고 하는 것은 머리 속에서 글을 다듬는 것만큼이나 훌륭한 결과를 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멈춰 서서 생각하는 것도, 컴퓨터가 수없이 많은 루트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것과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4. 생존은 본능인가

p.340
이로써 나는 진정한 생명체가 된다...
하늘에 떠도는 구름처럼 변천하는..
불확실하고 다양한 세계의 일부가-.

인간의 영혼의 복사체도 아니고, 네트워크상에서 우연히 발생한 자의식을 가진 '인형사'는 소좌와 하나가 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생존본능. 하나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멸종할 수 있지만, 다양한 변이가 일어난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지므로 자신과 결합할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한다. 솔직히 이 부분은 생존본능이 약한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세상은 유전자를 남기고자 하는 생물들 덕분에 살아 움직인다. 하지만 나는 왜 생존하기 위해 애를 쓰는지, 세계의 일부가 되려고 위험을 무릅쓰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생존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은 본능에 반하는 것일까?

공각기동대는 짧지만 별의별 생각을 하게 한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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