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은 보육원에 버려진 아이였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그대로 살지 않았다. 버려졌다는 기억은 마음을 좀먹었고, 대신 그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동생에게만큼은 ‘우리는 버려진 게 아니다’라고 말해주기 위해서였다. 그 거짓말은 자신을 꾸미기 위한 것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성실함이었다. 혜성에게 성실함은 생존의 방식이었다.
성인이 된 혜성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말이 적었고, 불평도 적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6개월간 밀린 월급과, 끝내 사망해버린 사장이었다. 책임은 사라졌고, 문제는 남았다. 혜성은 그저 당연한 것을 받기 위해 움직였을 뿐이었다. 밀린 월급을 받으러 간 자리에서 그는 복자 할머니를 만난다. 이 만남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복자 할머니는 친절한 어른의 전형은 아니었다. 다정하지만 날카롭고, 따뜻하지만 현실적이었다. 할머니는 혜성에게 연민을 먼저 주지 않는다. 대신 일을 맡기고, 김치를 맡긴다. 여기서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삶의 은유로 등장한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필요하며, 쉽게 평가할 수 없는 것. 혜성은 김치를 통해 처음으로 ‘기다림이 허락되는 삶’을 경험한다.
혜성의 성실함은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그는 김치를 대충 만들지 않는다. 할머니의 방식을 배우고, 반복하고, 실패를 견딘다. 누군가는 단기간의 성과를 원하지만, 혜성은 오래 묵히는 쪽을 선택한다. 이 성실함은 그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을 끌어당긴다. 조급한 사람, 계산적인 사람, 상처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혜성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킨다.
이 소설이 인상적인 이유는, 혜성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타고난 천재도, 극적인 반전을 만드는 주인공도 아니다. 다만 그는 계속해서 자기 몫을 해낸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 속이지 않기 위해, 대충 살지 않기 위해 선택을 반복한다. 그 반복이 쌓여 삶이 된다. 『오로라 맨숀』은 그 과정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진짜처럼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