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올 여름은 왜 이렇게 긴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비로소, 시간은 원래 넘쳐흐르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신은 사실 인간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이나 긴 시간을 누구에게나 주고 있었다. 즉 누구에게라도, 새로 사온 치약만큼이나 완병하고 풍부한 시간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지난 5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이 책, 264-265쪽에서)
 
 
기대를 걸었던 책이 기대를 배반하지 않을 때 독자는 행복합니다. 박민규에 대해서는 그저 명성만 접했을 뿐 이렇다 할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의 소설에 관해 소개한 글이나 리뷰는 일부러 읽지 않았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제목이 뭔가 기대를 걸게 했습니다. 'OB 베어즈'도 아니고 '삼성 라이온스'도 아니고 그 처절한 기록의 보유자 '삼미 슈퍼스타즈'라니! 그 야구팀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책의 내용에 호기심이 안 생길 수 없었습니다.
 
거기다, 다른 출판사도 아니고 '한겨레'에서 문학상을 탄 작품이라는 점도 저에게 기대를 부추겼습니다. 출판사와 문학상이 반드시 컨텐츠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지만요. ^^ 어쨌든 이 책은 다시 읽고 싶은 책이 되었고 박민규는 챙겨 읽고 싶은 작가가 되었습니다. (^^) 지난 겨울에 구입한 박민규의 책이 대략 서너권은 되는 것 같습니다.
 
 
>>> 박민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한겨레출판, 2003.
 
 
2003년 8월 1쇄를 발행한 이 책은 2010년 11월 36쇄까지 찍었군요. 저는 그 36쇄본을 읽었습니다. 한겨레출판에서 낸 책 가운데 36쇄까지 찍은 책을 첨 봅니다. 박민규가 이만큼 파괴력이 있는 소설가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리고 독서를 통해서 그 파괴력의 실체가 무엇인지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박민규의 매력이자 이 책의 흡인력일 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 시간을 내어서 올해 안에 한번 더 읽고 싶은 책입니다.
 
 
 
▩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삶의 방식에 관한 고민이 돋보이는 소설 ▩
 

  
 
 
1. 이 책은? 박민규는?
 
이 책은 일단 제목에서 궁금증을 유발시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궁금한 것도 없진 않겠지만, 작가가 소설의 내용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작가가 소설로써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하는 그런 궁금증이 컸습니다. 물론, 그 궁금증은 소설에서 완벽하게(^^) 해소됩니다.

박민규에 관해서는 별도의 소개를 적지 않도록 하죠. ^^ 이 책에서 박민규가 적고 있는 '삶의 방식' 혹은 '삶의 양식'(modus vivendi)에 관한 생각이 맘에 듭니다. 모두 소위 '상위 10%'를 지향하지만 어차피 거기에 들 수 있는 건 10%일 뿐, 절대 다수의 90%는 그 테두리 밖에 머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지는 것'도 아니고 '실패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은 언제나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죠.

90%가 좇는 '삶의 방식'은 10%가 주입하거나 강요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90%에게는 '90%의, 90%에 의한, 90%를 위한' 삶의 양식과 사고 방식이 필요합니다. 저는 박민규의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부분에 관한 힌트를 화두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또 읽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의 다른 책도.
 
 
  
2. 박민규의 능청스러움, 그의 매력의 하나
 
크게 '주류일체완비'의 현판이 붙어 있던 그 횟집은─작지만 방바닥이 따뜻하고, 창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낡고 운치 있는 집이었다. 그리고 그 집에는, 다른 무엇보다 마치 인어와 같은─얼굴은 도다리고 몸은 사람인 주인 아줌마가 있었다. "회는 뭐로 하실래요?" "아‥‥‥ 아나고." 나는 그 얼굴을 쳐다보면서 도다리가 아닌 아나고를 말할 수 있는 아버지의 정신력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26쪽에서)
 
 
소설가는 일단 '말빨'이 세야겠죠. 설득을 위한 말빨이어도 좋고 독자를 미소 짓게 하는 말빨이어도 좋습니다. 박민규의 이 소설은 설득을 큰 밑그림으로 깔고 그 위에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은) 자잘한 읽는 재미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박민규의 능청스러움이라 표현할 대목들인데요. 책의 전체에 걸쳐 무수히(?) 등장합니다. 그의 소설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 중 하나이자 박민규가 가진 강점 중 하나입니다.
 
재미난(?) 기억으로, 저 역시 '인어'의 컨셉에 관해서 '위가 물고기, 아래가 사람'인 구성을 상상한 적이 있다죠. 개인적으로 박민규에 대해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이런 대목이 적지 않아 좋았습니다.
 
 
 
3. 빼놓을 수 없는 소재, 음악과 노래
 
종종 웃음거리가 되면서도 나는 그들과의 만남이 즐거웠다. 한결같이 특이한 성격들이었지만 근본적으로 낙천적이고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또 이들을 통해 내가 몰랐던 영화와 음악의 비밀들을 하나하나 깨우쳐가는 것도 당시의 내겐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그해의 11월, 나는 고작 4개의 테이블이 전부인 그 작고 냄새나는 가게에서 레드 제플린과 도어스와 지미 헨드릭스와 재니스 조플린을 달달 외우고 있었다.   (158쪽에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악과 노래는 등장인물의 정서적 코드를 읽을 수 있는 열쇠인 동시에 시대적 배경를 읽어낼 수 있는 힌트가 됩니다. 그 외에 (운이 좋다면)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있죠. 박민규의 이 소설에 등장하는 레드 제플린과 도어스와 지미 헨드릭스와 재니스 조플린이 바로 그랬습니다. 저는 이런 시도에서 살포시 (제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연상되었습니다. 하루키의 소설에서 음악과 노래는 빠질 수 없는 하나의 코드이거든요.
 
 
 
4.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가 왜?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
그럼, 그게 핵심이야. 그해의 리그에서 삼미 슈퍼스타즈가 <자신의 야구>를 완성하지 못했다면 아마 우리는 구원받지 못했을 거야. ...삼미가 <자신의 야구>를 완성하고, 그 플레이를 사람들의 가슴 속에 전파하는 모습...
그 <자신의 야구>가 뭔데?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바로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
뭐야, 너무 쉽잖아?
틀렸어! 그건 그래서 가장 힘든 <야구>야. 이 <프로의 세계>에서 가장 하기 힘든 <야구>인 것이지. 왜? 이 세계는 언제나 선수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야. 어이, 잘 하는데.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누군 이번에 어떤 팀으로 옮겨갔대. 연봉이 얼마래. ...
(251쪽에서)
 
 
소설의 후반부에서 '삼미 슈퍼스타즈'가 멋지게(^^) 소설의 내용과 어우러집니다. (조금 과찬일지도 모르지만) 따로 흘러오던 두 강이 하나로 합쳐지는 느낌? 바로 그런 것이죠.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 '프로의 세계'에서 이탈한(탈락된?) 삶에 대한 긍정은 공감을 불러일으킬만 합니다. 물론, 독자에 따라 수긍을 할 수도, 못 할 수도 있긴 하겠습니다만, 저는 (동의까지는 아니어도) 이해가 되는 쪽이었습니다. '프로의 세계'는 바꿔 말하자면, 무한 경쟁, 약육강식, 승자독식, ...을 떠나선 생각할 수 없는 세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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