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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에 걸린 나라
조기숙 지음 / 지식공작소 / 2007년 2월
평점 :
"왼쪽 깜빡이 켜고 오른쪽으로 간다."
참여정부에 대한 진보 사회단체의 비판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한 번도 좌파였던 적이 없다.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에 비해 진보적이었을 뿐이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 일부 좌파들이 섞여 있는지는 몰라도 어느 면으로 보아도 참여정부가 좌파정부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189쪽, <왼쪽 깜빡이 켜고 오른쪽으로 간다?>에서)
조기숙 교수에 끌려 읽은 책입니다. 조기숙의 글은 명쾌합니다. 티비 토론에서 접한 조기숙 그리고 다른 책(공저)에서 접한 조기숙이, 저로 하여금 단행본을 검색하게 만들었습니다. 공저의 책은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입니다. 독서는 독서를 부르고 책은 책을 부릅니다. 그렇게 조기숙을 읽게 되었습니다.
>>> 조기숙, 마법에 걸린 나라, 지식공작소, 2007. * 총 288쪽.
읽는 내내 지적으로, 정치적으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조기숙 교수의 다른 책을 검색했으나 이런 성향(?)의 책은 아직 없군요. -.-;
▩ 마법에 걸린 나라(조기숙), 담론 경쟁에서 이기는 자가 사회를 지배한다! ▩
조기숙의 「마법에 걸린 나라」. 수구 세력의 '마법'은 마술처럼 잘도 먹힌다.
담론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가 사회를 지배한다. 권력만큼 중요한 담론에 관한 분석.
1. 조기숙 교수는? 이 책은?
청와대에 들어가게 된 것은 참여정부의 성공이 그리 녹록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회의 모든 권력이 보수의 손에 있는데 겨우 행정권력만 장악한 참여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라고 생각했다. ... 참여정부를 성공시키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은 버려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 것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했던 그래서 감히 진보임을 자처하지도 못했던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보진영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285-286쪽, <글을 마치며>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일했던 대통령 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 노 전대통령을 위한 악역(?)을 자임. 이화여대 교수, 정치학 박사. 티비 토론에서 명쾌한 논리와 정곡을 찌르는 말로 강한 인상을 남긴 토론 패널. 이런 수식어를 단 조기숙 교수가 책을 썼습니다. 2007년 출간된 이 책은 이미 썼던 글을 묶은 책이 아닙니다(적어도 독자로서의 느낌은 그렇습니다). 책 전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료합니다. 책의 각 장들은 그 주장을 뒷받침하고 한 꼭지 한 꼭지의 글은 그 글이 속한 장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시평집(?)으로는 오랜 만에 전체로서 읽히는 책을 접했습니다.
이 책에서 조기숙 교수는 대한민국이 '마법'에 걸려 있다고 말합니다. 언론과 정치를 장악하고 있는 수구 세력의 마법에요. 그리고 그 마법은 그야말로 마술같이 잘도 먹혀듭니다. 수구 세력은 미디어와 당을 통해서 담론 경쟁을 주도하고 그 경쟁에서 승리합니다. 물론 그 과정은 조기숙의 표현대로 치졸함과 비열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조기숙은 그런 '마법'에 관해서, 장작을 팰 때 결을 따라 패듯, 굵직하고 중요한 것들을 골라 하나씩 격파해(?) 나갑니다.
2. 왜곡 보도가 진실이 되어버리는 마법
왜곡보도를 수십 번 당하다보면 어느덧 그것은 하나의 진실이 되어 버린다. 아무리 초보자라도 같은 주문을 열심히 외다보면 마법을 걸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236쪽, <경계 또 경계했어야>에서)
수구 언론(이라는 말도 아까운 신문지회사)은 대한민국 사회를 상대로 '마법'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술같이 잘도 걸려듭니다. 반복의 효과, 세월의 힘이 작용하는 것이죠. 더욱 슬픈 것은, 소위 진보 쪽에서도 그 '마법'에 빠져듭니다. 소위 조중동 프레임이라고 불리는 잣대와 기준과 해석으로 특정 대상을 난도질하는 것이죠. '마법'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
초입에 인용한 '좌파' 이야기도 같은 '마법'의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조기숙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에 대해 좌파정당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좌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는 유권자들을 선동하기 위한 일부 언론이나 한나라당의 책략이라고 할 수 있다"(267쪽).
3. 담론 경쟁에서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수구 언론과 정치 세력
참여정부가 국민으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이전 정부에 비해 특별히 일을 잘못해서가 아니다. ... 참여정부가 보수진영과의 경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아니, 진보진영이 보수세력과의 담론경쟁에서 패했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마법에도 주술이 필요하듯 정치에도 담론이 필요하다. (27쪽, <마법사의 실력 차이>에서)
돌아가는 정치 현실을 보면서 늘 왜 저런 말(=담론)은 이쪽에서 먼저 쓰지 못하는 걸까 많이 답답했습니다. 실은 정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만큼이나 치열해야 할 담론 경쟁일 텐데 늘 이쪽은 끌려다니는 인상만 줍니다. (권력을 장악하는 경우에도) 미디어는 저쪽에서 장악한 상태이기에 담론 경쟁에서 이기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여기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한 여론(=민심)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권력을 도로 내어주는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죠. 조기숙이 이 책에서 환기시킨 '담론 경쟁' 개념은 신선했습니다. 그 신선함만큼 현실적 힘을 획득했으면 합니다.
4. 수구언론의 사악하고 비열한 연좌제
어렸을 때 증조부[고부군수 조병갑]가 역사책에 나쁜 사람으로 나오는 것이 속상했지만 살아오면서 아버지조차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증조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의도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205-206쪽)
<월간조선>이 2006년 10월호에 증조부에 관한 기사를 탑으로 실었다. 가장 독살[스럽게 나온] 내 사진을 사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뜬금없이 족보 검증을 하려니 자신들도 양심에 찔렸는지 내가 청와대 권력을 이용해 증조부의 선정비를 새단장했다는 소문을 입수했다는 것이 ... 동기라고 주장했다. (206쪽)
결국 <월간조선>이 스스로도 밝혔듯이 송덕비 단장은 터무니없는 헛소문이었고... (206쪽)
한 마디로 <조선일보>의 행태는 백주대낮의 테러였으며 비열하고 치졸한 족보 검증이었다. 연좌제를 금지한 헌법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불법으로 남의 호적을 입수해 공개했고 나에 대한 대부분을 허위날조했로 일관했다. (207쪽)
(205-207쪽, <비열하고 치졸한 족보검증>에서)
<월간조선> 따위 보지 않고 살기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조기숙 교수는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소위 '찌라시즘'에 물든 매체들은 상식과 법 같은 건 내팽개친 채 '소문'을 팩트라며 보도합니다. 진위가 입증되지 않은 그 소문은 대개 선상적이기 마련이어서 후속 보도로 정정을 하고 사과를 해도 대중들에게 행해진 각인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누구의 증조 할아버지가 학정을 펼쳤든 어쨌든 그것이 증손녀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증조할아버지의 역사속 부정적 이미지를 현실의 증손녀에게 씌우려고 안달인 겁니다. 자신들의 정적(政敵)에 대해 치졸하고 비열하고 사악하다 할 짓을 서슴지 않는 것이죠. 조기숙 교수와 그 가족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의연하고 꿋꿋하게 대처한 모습이 감탄스럽습니다.
5. 그 외, 인상적인 지적 하나.
문단속을 잘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도둑을 잘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도둑을 맞은 사람도 도둑의 부도덕함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고 또 지속적으로 말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세상은 문단속 안 해도 도둑맞지 않고 잘 사는 세상 아니겠는가. ... 도둑맞은 사람은 도둑을 비판할 자격도 없다거나 집단속 안 한 사람이 도둑 탓한다고 나무라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102쪽,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에서)
도둑 맞은 것이 문단속을 잘 하지 못한 거주자의 잘못인 경우에도, 그 거주자는 도둑을 욕할 수 있고 도둑질을 비난할 수 있다! 멋진 발상을 담은 인상적인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책에서는 지배적 담론을 형성하는 조중동 신문지 회사가 '도둑'의 자리에, 그리고 여론에 난타 당하는 참여정부가 '도둑맞은 거주자'의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만, 그런 예를 포함하여 조기숙은 우리에게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명쾌한 비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