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상과 시인 아저씨 생각하는 숲 27
박상률 지음, 윤미숙 그림 / 시공주니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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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시공주니어에서 출간한 <개밥상과 시인 아저씨>는 박상률 작가가 글을 쓰고, 윤미숙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이 글이 세상에 처음 얼굴을 내민 때는 2003년이었다고 한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 옷을 새로 지어 입힌 이 책은 읽는 내내 작가의 말처럼 너무 슬퍼 눈물이 쏟아지기도 한다. 작가의 고향인 진도에서는 개를 결코 낮게 보지 않는데, 개도 집안의 어엿한 한식구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고향에서 가끔씩 볼 수 있는 '사람보다 훨씬 나은 개' 이야기로 흰돌이라는 진도개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등장한다. 시인 아저씨와 수년을 함께 가족으로 살아온 흰돌이가 말하는 감동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이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진도에서 태어난 박상률 작가님은 진도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한다. 나 또한 강아지를 키우고 있지는 않지만 진도개의 우직함과 충성심에 늘 든든함을 가지고 있는 1인으로서 이야기에 나오는 흰돌이가 낯설지가 않다. 진도개라면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나 보다. 2003년 세상에 처음 나온 이 책이 18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 앞에서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은 긴 세월 동안 진도개 흰돌이와 시인 아저씨가 서로를 생각하고 위하는 애틋함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며 진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덮고도 여러 생각들이 떠올라 선뜻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던 것 또한 그 감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인 아저씨와 진도개 흰돌이가 함께 살아가는 소박한 삶 속에서 잔잔한 감동도 주지만, 슬픔을 함께 주는 이야기라 더 그랬을 것 같다. 글을 읽는 내내 잔잔한 감동으로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준 동화를 선물 받은 느낌이다.

이 개는 내 보호자입니다.

인적 드문 산골에 사는 시인 아저씨의 보호자는 진도개 흰돌이이다. 이야기의 정황 상 폐암 말기의 투병을 하고 있는 아저씨는 의학의 도움을 받지 않고 유유자적 시를 쓰며 생을 보내고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아저씨의 고난과 고통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흰돌이는 아저씨에게 유일한 보호자이다. 아저씨는 흰돌이와 함께 겸상을 하며 사람대우를 해준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시집의 시들도 읽어준다. 읍내 시장에 나가 장을 볼 때에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공깃밥 두 그릇을 국밥에 말아 흰돌이에게 준다. 시인 아저씨와 함께 산 지 오 년이 넘은 흰돌이는 이제는 시 몇 편은 술술 읊으며 삶을 함께 한다. 아저씨에게 가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부인은 이혼 도장을 찍으러 이야기 중간에 잠시 등장한다. 이 모습이 어찌나 애석하고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몸도 성치 않은 아저씨를 이제는 누가 걱정하고 돌봐야 한단 말인가.. 못내 부인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아픈 몸과 마음을 아무 조건 없이, 불만 없이 온전히 받아내는 시인 아저씨의 모습은 의료인인 나에게도 너무나 아픈 모습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모든 시공을 초월한 듯한 아저씨의 모습이 연약하지만 강단 있게 버텨내는 들풀과도 같은 모습이었기에 더 아름다웠던 것 같다.

사람 사는 일

짐승 사는 일

두 길 아니고 한길이네

나 죽으면 달빛으로 빛나고

너 죽으면 눈빛으로 빛나리

한 밥상에서 같이 밥을 먹고, 한방에서 같이 잠을 자는 흰돌이는 아저씨의 보호자이자 사랑하는 가족이다. 함께 산책하고, 함께 책을 읽고, 함께 장을 보고 모든 걸 함께 하는 흰돌이는 아저씨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특별한 존재이다. 아저씨가 시름시름 앓는 과정을 온전히 지켜보는 흰돌이는 아저씨가 걱정이다. 옆집 할머니가 자주 들여다보며 돌봐주고는 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런 모든 시련과 아픔을 소리 없이 견뎌낸 시인 아저씨의 모습이 아련하다. 아저씨가 이 세상과 이별한 후 상복까지 입게 된 흰돌이는 진정으로 아저씨를 사랑하는 존재였으리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진심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노랑이와 가정을 이루게 된 흰돌이가 아저씨를 떠나보내고 힘을 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 시인 아저씨와 함께 했던 그 풍경을 떠올리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그림과 글의 조화가 아름답고, 아저씨와 흰돌이가 함께 한 모든 순간들을 함께 느낄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소복소복 눈을 밟고 있는 시인 아저씨와 흰돌이가 문득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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