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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촛불이다 - 광장에서 함께한 1700만의 목소리
장윤선 지음 / 창비 / 2018년 5월
평점 :
창비 출판사에서 출간한 <우리가 촛불이다>는 2016년 광장에서 함께 한 1700만의 목소리를 담은 장윤선 작가의 수필집이다. 장윤선 작가는 현재 TBS에서 [장윤선의 이슈파이터]를 진행하고 있는 기자로 2016년 10월부터 시작된 23차례 촛불집회를 생중계하였고, 이 책 속에는 작가가 그 시간 동안 함께 한 모든 순간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우리에게 역사의 현장을 생생한 글과 사진으로 소개한다.
책의 구성은 총 7부로 나뉘며 1부/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를 시작으로 하여 7부/우리가 꿈꾸는 나라로 끝을 맺는다. 나는 4부/ 우리가 촛불이다까지 집필된 가제본을 받아 읽게 되었고, 작가가 써 내려간 각각의 사실적 측면과 작가의 생각이 어우러진 각 세션을 읽다 보니 문득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나는 2016년 가족과 함께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였고, 나 또한 그였을 역사의 순간순간들을 내 평생 잊지 못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고, <우리가 촛불이다>는 나를 그때 그 시간으로 초대하고 있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예정된 날, 기자임을 짐작하는 작가가 이른 시각 잠에서 깨어 출근길부터 헌법재판소에서의 재판 과정, 그 순간 우리 국민들의 모습, 그날 밤 광화문의 모습까지를 소제목으로 상세하게 담고 있다. 희대의 국정 농단으로 분노한 우리를 광장으로 이끌어 2016년 20주간 이어진 1700만 시민의 촛불로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하는 날이니만큼 출근길에서부터 긴장된 모습과 헌재 주변의 삼엄한 경계태세는 짐작된 일이었다. 가슴 졸이며 그 결과에 주목하던 그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마음에 남아있다. 헌재의 재판관 출근길부터 취재진들의 열띤 취재와 긴장된 모습은 이미 짐작하고 있던 터였고, 특히 이정미 권한대행의 헤어롤 사건은 경직되었던 국민의 마음에 웃음꽃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치 그 순간 그 시간으로 돌아간 듯 그날 이루어진 재판 과정을 마치 TV를 보듯 상세하게 기록해 사실감을 더했고, 사실적 사건을 바탕으로 작가의 생각이 더해져 그날의 생생함을 전달해 주는 듯하다. 나 또한 잠을 설치고, 여느 때처럼 출근은 했지만 뭔가 묵직한 부담감에 차분히 아침을 시작했던 기억이다.
작가는 우리가 TV를 통해 보았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여 그날의 긴장된 역사의 순간을 선물한다. 이정미 대행은 선고에 앞서 그간의 진행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특히 차분한 어조로 풀어 나갔는데, 탄핵 사유의 네 가지 쟁점을 사실적이고 순서대로 명기해주어 우리가 박근혜를 촛불로 파면시키기에 충분했음을 대변한다. 사실 우리가 직시하는 박근혜의 잘못이 법적으로 충분히 죄로 입증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 대행의 입에 주목하며 탄핵소추를 이끌어 낼 것이라는 바람으로 TV 화면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던 그 순간은 내 생애 가장 긴장된 순간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작가는 헌재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 순간 시민들의 반응과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그날 대한민국의 광화문 광장의 상반된 모습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알려준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작곡가 윤민석의 음악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의 웅장한 합창이 울려 퍼지는 그 순간 승리를 자축하는 시민들의 모습과 헌재로 쳐들어가자는 탄기국 집회의 모습을 담담히 풀어나간다. 찬성이 있다면 반대가 있듯이 어느 누가 분노에 휩싸인 사람들을 탓할 수 있을까마는 폭력집회로 사상자까지 나와 아수라장이었던 그 현장은 가보지 않아도 글을 통해 볼 수 있었다. 평일이었음에도 주최 측 추산 10만 명의 시민이 광화문광장에 모였고, 시민의 힘으로 이루어 낸 역사적인 날, 봄이 왔음을 알리며 2부가 시작된다.
2부는 광화문에 모인 100만 인파의 촛불을 직접 만나고 인터뷰한 현장의 모습을 그려낸다. 작가가 기자이다 보니 늘 현장에서 생생한 그곳의 모습을 지켜보았을 터이니 그가 만난 사람들은 어쩌면 광화문 촛불, 아니 우리나라를 대변하는 촛불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가족과 함께 두 번의 촛불집회에 참석을 했고,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던 분노감이 집회 참석 후에 어느 정도 해소됨을 느낄 정도였으니, 수백만 인파 속의 내 작은 촛불 하나의 힘이 모여 한마음, 한목소리를 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특히 작가는 숨이 막히도록 사람의 물결에 힘이 들 법도 하지만 누구 하나 화내는 사람 없이 질서 정연한 집회의 모습을 소개한다. 박근혜 하야, 퇴진 촉구를 하는 시민 물결 속에 대한민국 최초로 평화로운 촛불문화제를 경험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경이로운 경험이다. 광화문 촛불집회는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평화로운 분위기였던 것 같다. 작가가 소개한 여러 가지 집회의 진풍경들이 있는데, 매스컴에서 소개도 많이 되었고 여러 SNS를 통해 접할 수 있어서 실시간 광화문의 현장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특히 2016년 11월 19일 4차 촛불집회에서 집회를 마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고, 100만 시민의 촛불 파도타기, 전국 방방곡곡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올라오는 수많은 인파에도 불구하고 서로 먼저랄 것도 없이 양보하고, 배려해 주던 모습들은 현장에서 내가 직접 본 광경들이었다. 경찰과 시민이 대치함에도 비폭력으로 무장한 우리 100만 광화문 촛불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평생 잊지 못할 뇌리에 남을 기록 중의 하나이다.
대학생 때 최루탄이 날라 다시던 그 시절, 동아리 선배를 따라 잠시 집회의 분위기를 경험해 보았던 나로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것이 처음에는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우리가 우려했던 걱정스러운 부분은 직접 집회에 참석하고서 사라졌다. 그 정도로 촛불집회는 평화적이었다.
LED 촛불, 누가 만들었을까, "바람 불면 촛불은 꺼진다"이라는 촛불 비아냥이 나오자마자 꺼지지 않는 LED 촛불이 등장했다. 3부에서는 촛불과 함께한 광화문에 집결한 예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11월 8일 음악인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민중가요 가수 손병휘씨는 광화문 텐트촌에 입촌한다. 임옥상 화백은 박 터뜨리기 작품으로 시민과 함께 호흡한다. 광장에서는 시국 백일장도 열렸으며, 각종 퍼포먼스를 벌이는 시민들 또한 민주주의를 향한 광장을 한껏 돋보이게 했다. 특히 촛불집회가 평화적이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음악과 공연, 문화예술이 함께 어우러져 모인 시민들이 함께 공감하고, 나누고, 치유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길가에 버려지다' 음원은 무료 배포되어 젊은이들의 마음을 울렸고, '하야체조'는 제작비 3000원에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되었다. 특히 경찰 차벽에 붙인 꽃 스티커는 우리 가족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 중의 하나이다. 작가는 이렇게 촛불과 함께한 많은 이들에 대해 한 명 한 명 소개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 자발적인 참여로 촛불의 의미를 더한 그들이 있었기에 촛불과 함께 한 시간이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작가는 20차 촛불집회가 이어지는 동안 보여준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 중 단연 이목을 끈 것이 대국민 실시간 검색어 1위 만들기, 정부청사에 레이저 빔을 쏴 구호 만들기, 그리고 1분 소등을 꼽는다. 난 개인적으로 1분간의 소등을 선택한다. 1분 소등은 정말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장엄한 행사였다고 작가는 말한다. 소등이 끝나고 다시 촛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할 때 흘러나온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노래는 광장을 지킨 우리들을 치유시켜 주기에 충분했었다.
5,4,3,2,1. 소등!
곧 새벽이 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둠은 물러가지 않았다.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혼돈의 시간.
...
촛불이 겨울공화국을 바꿀 것이다.
추위와 어둠을 몰아내는
촛불을 켜주십시오!
4부에서는 촛불집회에서 촛불이 된 수십 명의 사람들을 소개한다. 이미 언론과 매스컴을 통해 알고 있는 분도 있고, 새롭게 알게 된 분도 있다.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 때마다 '하야커피'를 만들어 제공한 바리스타, 박종성씨,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청년 3인방이 쏜 스테이크 1000인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자는 취지의 손팻말을 만든 일산 학부모님들, 퇴진행동 집계에 따르면 촛불집회에 참여한 자원봉사자가 연인원 12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집회에 왔을 때 질서 정연하게 안내해주고, 핫팩과 촛불, 종이컵을 나눠 준 이들 다 자원봉사자 들이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촛불들이 몸과 마음을 다해 자신의 촛불을 밝혀 주었고, 특히 퇴진행동에 빚이 1억이라는 이야기에 십시일반 보낸 누적 후원금이 38억 5000만 원이라고 하니, 촛불시민이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다는 이야기는 다시 들어도 감동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시민의 힘으로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낸 시민혁명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혁명으로 남지 않을까 작가는 말한다. 나 또한 그 생각에 동의하는 바이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매주 토요일 광화문광장은 수많은 의제가 함께 움직이는 축제의 장이었고, 촛불 속에는 또 하나의 시민운동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환경운동연합, 국정교과서 폐기 서명운동,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한 수요 집회 등 우리의 바람을 온 국민이 함께 모여 나누고 발언하는 귀중한 시간들이 허락되었다. 이 흐름 또한 촛불집회의 물결이 이어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촛불이 하나둘씩 모여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되듯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이 사회가 이제는 상식이 살아있는 사회로 변화되고 있음을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또한 집회에서 이루어진 3분 자유발언대 또한 상세하게 소개가 되어 있어 공감대를 이룬다. 나 또한 참여했던 집회에서 함께 웃고 함께 소리 지르고 함께 외쳤던 그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나 추웠던 최강 한파 속에서 이루어진 2017년 1월 14일 12차 촛불집회에 10만 인파가 모였다. 그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말로 4부는 마무리된다. 그녀는 세월호 가족들의 모습을 30년 전 본인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을 하면 가슴이 정말 많이 아프고 춥다 말한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자식과 교감하지 못하는 슬픔을 수천만 번 겪으며 살고 있는 그녀의 애절한 마음은 나를,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세월호는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나의 마음에 남아있는 슬픔이며 아픔이다. 우리는 같은 동시대를 살고 있고, 같은 아픔을 경험했고 또 함께 촛불을 들며 한사람 한 사람이 촛불이 되었다.
나 또한 가족과 함께 한 촛불집회를 통해 하나의 촛불로,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한목소리를 낼 수 있음에 감사한 날들이었고, 그 시간들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발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