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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 (리커버) - 인간을 완성하는 12가지 요소
제롬 케이건 지음, 김성훈 옮김 / 책세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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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서, 못배워서 범죄자라서 안된다고?


안될거라고 미리 정해놓고 그래서 뭘하겠어요?


해보고 판단해야지? 내 가치를 니가 정하지마!"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이태원클라쓰'의 주인공


'박새로이'의 대사다.



유물론의 영향인지, 현대인들은 인간을 이루는 요소들에 대해서도


물질화시키고 수치화 시키길 좋아하며,


과학이 그러하듯 원인에는 필연적 결과가 따르고


인간의 현재나 미래는 과거에 의해 결정된다고 자신도 모르게 믿어가게 된다.



사람의 심리는 유전자나 뇌에 대한 문제로 규정하길 좋아하고,


생각은 언어와 지식이라는 틀 안에 가둬버리며,


모든 관찰에 대하여는 객관화된 크기의 수치를 부여하기를 좋아한다.



현재는 과거의 양적 수치들에 의해 결정되고,


유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들은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연결되어 있어


생후 첫 2년의 경험이 그 사람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믿음을 가진다.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이미 정해진 수치로 인간의 가능성을 제한하며,


현재보다는 이미 결정된 과거에 주목한다.


어렸을 때의 경험이 그 아이의 평생의 성격을 결정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갈라파고스의 핀치새의 부리의 크기나 모양이 변화한 것이


예측불가능한 기후적 사건에서 비롯되었던 것처럼,


생후 2년의 심리 프로필로는 성인이 되었을 때의 아이를 예측할 수 없고,


과거의 내 삶이나 배경은 나의 미래 혹은 내일의 나조차도 결정하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나이가 들수록 나의 꿈은 작아졌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 또한 작아졌다.


교육수준이나 재산, 직업 등 이미 결정되어진 나의 과거가


이미 나의 가능성을 축소시켜왔다고 나도 모르게 체념한 채 살아왔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작아진 것은 나의 가치나 가능성이 아니라,


생각의 폭이었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적어도 어린 시절에는 그러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고 지식이 늘면서, 상상하기를 포기했고 폭넓게 생각하기를 멀리했다.


수치로 객관화된 나에 대한 관심만큼 본질적 나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지 못한지도 오래다.



인간의 가치는 변화무쌍한 환경과 삶의 여정속에서


나를 믿는 믿음 가운데서 나오고,


무한한 생각과 세상과의 끊임없는 교감 사이에서 나온다.



지식과잉의 시대, 언어과잉의 시대를 사는 나는


상상하기를 포기했고, 나의 인생에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과


자신의 삶을 더 많이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되었다.



나를 믿고 미래를 꿈꾸는가?


그것이 드라마속 박새로이와 장근원의 차이였다.


박새로이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장근원은 자신의 뒷배경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박새로이는 자신의 미래를 믿었지만,


장근원은 자신의 과거를 믿었다.



나의 인생 역시 언제나 찬란할 수 있다.


생각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상상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책으로 덮으며, 나의 미래를 다시 한 번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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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
봉태규 지음 / 더퀘스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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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자 했던 건 위로를 얻기 위함이었다. 


결혼전에는 늘 불안함이 있었다. 


'나도 남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나도 결혼할 수 있을까?'


그러다 결혼을 하게 된 이후에도 불안감은 여전했다.


'나는 남들처럼 살고 있는걸까?' '나도 평범함에 도달하고 싶다.' 


가장으로서, 늘 남자다워야 한다는 의무감에 눌려왔고, 


남들처럼 더욱 치열하게 살아가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남자니까 이래야해. 남자니까 이럴거야. 


아버지니까, 남편이니까... 남자니까...


나도 좋은 아버지이고 싶고, 좋은 남편이고 싶고,


좋은 남자이고 싶지만,


나는 아버지거나 남편이거나 남자이기 이전에, OOO(내 이름)이다.


그게 내 본질이며, 그게 나의 전부다..


당연히 나는 세상이 요구하는 아버지상, 남편상, 남자상, 무슨무슨상, 무슨무슨상에 


완벽하게 부합할 수 없다..


나는 그저 OOO이기 때문이다. 


나는 완벽한 아버지, 완벽한 남편, 완벽한 남자, 


혹은 세상이나 직장에서 요구하는 완벽하게 쓸모있는 사람이 될 수 없는데,


자꾸 그런 기준을 들이민다면 난 늘 함량부족이고 기준미달이다. 


늘 자존감이 떨어지고, 나 역시 내가 OOO인걸 잊게 된다. 


그 가운데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다시 나 답게 살고 싶고,


나답게 살아도 틀린 것이 아니란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수가 보기에 좋고 그게 설사 옳다고 해도 개인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본문 189p)


모두 평등하고 서로 존중하며 각자 나답게 사는 것, 


이 가치관을 위해 매일 자신과 씨름하고 고민한다는 봉태규씨..


나도 나답고자 굳이 그와 나를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가 나보다 분명히 나아보이는 한가지는 솔직함이었다.


본인의 치부로 여겨질 수 있는 부분까지도 꽤나 솔직하다고 느껴졌다. 


그런 솔직함이 그가 그답게 살수 있는 원동력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나도 이제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세상에 대해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싶다...


그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고, 사랑받는 방법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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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으로 지구정복 - 프로그래밍 초보자를 위한 나혼자 끝내는 코딩 입문서
코인(코딩하는 사람들) 지음 / 넥서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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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30대이지만, 최근 나보다 어린 세대, 특히 10대 친구들을 보면서

세대차이 이상의 단절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체형도 달라진 것 같고 여러가지 사고방식도 다른 것 같고..

그런데, 단절감, 혹은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 중 하나가 코딩 교육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동네 복지관에서 GW베이직을 배웠지만, 흔치 않았고,

막상 어떻게 활용해야할지도 몰랐고, 집에 PC가 생긴 것도

그로부터 10년뒤였으며, 프로그래밍은 아주 소수의 전유물이었다.

이후, 20대가 되어서는 웹기획자가 되어 일을 했었는데,

개발베이스를 가진 기획자들과는 달리, 프로그래밍 소스를 볼 줄 몰랐기 때문에

그것은 웹기획자로서 컴플렉스가 되었고, 개발자들과의 단절감도 종종 느껴야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아이들이 코딩을 배운다니... 그야말로 신인류처럼 느껴진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서비스를 잠깐 기획한 적이 있었는데,

외부에서 봤을 때는 다소 거창할 수 있는 서비스였지만,

인공지능이란 것도 어차피 큰 틀에서는 프로그래밍된 인간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언어'다.

조상님들이 서양인들을 처음 접했을 때 그들은 그저 괴물이었겠지만,

그들의 언어를 알고 나면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었다.

컴퓨터 역시 마찬가지다. 언어만 알고 나면 컴퓨터도 역시 사람에 의해,

사람의 필요에 따라 만든 아주 단순한 녀석이다.

(감정도 없고 의외성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쉽다.)

'언어'란 것도 외국어로서 공부한다면 참어렵고 힘든 것이지만,

그 나라에 살면서 생활 가운데 익힌다면 어린 아이도 쉽게 익히는 것이 언어이다.

어릴 때만해도 내가 배웠던 GW베이직은 지구 반대편 나라의 언어 같은 것이었다.

쓸 일도 없고, 쓸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개발툴은 물론이고,

오픈소스도 다양하고,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등 플랫폼 사업자들은

서드파티 개발자들이나 일반인들이 개발에 참여하고, 개발을 활용할 수 있는

쉬운 길들을 많이 열어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딩에 둘러싸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코딩도 외국어가 아닌 제2의 모국어처럼,

우리와 생활로서 밀접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20대일때 잠깐 지금의 유튜버들처럼 동영상을 만드는 일들을 했었는데,

그때는 동영상을 만들거나, 개인 진행을 하는 사람들이 드물었기 때문에

연예인들이나 기업의 의뢰를 받아 진행을 하는 다소 전문적인 영역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초등학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유튜버로 활동한다.

코딩도 비슷한 날이 올 것 같다.

처음엔 두렵다. 사실, 이 책도 필요에 의해 읽게 되었지만,

받고나서 며칠간은 책을 펼치는게 두려웠다. 코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그런데, 어느날 누워서 책을 펼치자 마자, 그 어떤 책보다 쉽게 술술 읽혀나갔다.

이 책은 코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기에 참 좋은 책이다.

코딩이 무엇인지에서부터, C, 파이썬, 자바, 자바스크립트, html/css 등

수많은 언어의 특징은 무엇이고, 내게 적합한 언어는 무엇인지,

입출력, 변수, 배열, 조건문, 반복문, 함수와 호출 등 코딩의 구조(블록)는 어떠한지,

그리고 실제로 계산기와 행운번호 추첨기를 만들어보기까지..!

(코딩으로 계산기와 추첨기를 만든다는 건,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진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물론 영어는 유치원생도 배우지만, 영문학은 그 범위도 넓고 소수만의 것이듯이,

코딩도 전문적으로 하자면 여타의 다른 분야들처럼, 배울게 무궁무진하겠지만,

두려워할 필욘 없다.

모두가 생활영어를 배우지만, 영문학자는 소수이듯이,

모두가 전문 프로그래머가 될 필요는 없기 떄문이다.

하지만, 코딩으로 둘러싸인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코딩을 이해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생활코딩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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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인생의 맛 -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간결한 지혜
벤저민 호프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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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다가, 곰돌이 푸가 사는 숲속에 언젠가 일어나게 될지 모를 어떤 변화를 상상해 보았다. 


푸가 사는 숲 속의 꿀은 참 맛있다. 


배가 나왔고 그리 똑똑하지는 않은 그런 푸지만, 친구들과 어슬렁거리다 높은 나무위 벌집을 찾아내고 


그런 푸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맛보게 되는 꿀의 달콤함에 푸는 언제나 행복하다.


그러나 숲이 주는 꿀의 달콤함이 옆 마을에까지 소문이 났던가...


옆마을의 여우가 숲을 통째로 사들였고, 벌집은 모조리 여우의 차지가 되었다.


여우는 푸에게 말했다. "네가 세 통의 꿀을 채취할 때마다 한통을 네게 줄게.."


푸는 한통의 꿀을 먹기 위해 친구들과의 놀이도 잊은채 열심히 꿀을 채취했고 


여우는 푸우가 매일 상납하는 두 통의 꿀을 팔아 더욱더 부자가 되어갔다.


그리고 부자가 된 여우는 옆 마을의 손이 빠르기로 유명한 쿵푸팬더를 고용했다.


여우가 말했다. "쿵푸팬더는 하루에 네통의 꿀을 채취하는데 푸 너는 세 통밖에 못하는구나.. 


너는 가치가 없어. 넌 곧 일자리를 잃게 될거야.. 미련 곰탱이"


푸는 더욱더 숲을 헤집고 다니며 잠도 잊은 채 더욱 열심히 꿀을 채취해댔다. 


그리고 그도 여우처럼 숲의 벌집들을 사들이기 위해 꿀을 먹지 않고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꿀의 달콤함을 잊어갔고, 피글렛과 친구들과의 행복했던 시간들을 잊어갔으며,


그의 사랑스러움을 잃어갔다. 


그대신 그는 꿀을 잘 채취하기로 유명세를 타 생활의 달웅에도 나가고, 안 먹고 모은 꿀을 팔아 벌집들도 조금씩 사들일 수 있었다.


'난 가치있는 곰이야. 더욱더 열심히 꿀을 채취해야지.. 더 잘할 수 있어'


그러나 너무 벌집을 헤집고 다녔던가.. 벌들은 이 숲을 떠났고, 벌들이 떠나자 꽃도 피지 않게 되었으며, 꽃이 피지 않는 숲에는 꿀도 남지 않게 되었다.


어느새 꿀채취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곰돌이 푸.. 


이 숲 속에 그가 채취할 수 있는 벌집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지만, 그는 이제 물고기를 잡는 법도 잊었고, 친구들과 노는 법도 잊어버렸으며, 무엇보다 웃는 법을 잃어버렸다. 그의 노랗던 털은 모조리 하얗게 세었고, 그의 사랑스럽게 나왔던 배는 어느새 앙상한 갈비를 드러내고 있었다.


푸의 가치는 어디에 있던 것일까? 쿵푸팬더와 비교되기 일쑤며, 벌들이 떠나면 아무 쓸모도 없는


꿀 채취 능력에 있던 것일까? 아니면, 늘 웃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던 그의 사랑스러움에 있었을까?


그리고 그의 행복은 어디에 있던 것일까? 아까워서 먹지도 못하게 된, 그리고 여우을 위해 채취하던 꿀 세통에 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과 친구들을 위해 매일 조금씩 맛보던 꿀 한통에 있던 것일까?


그냥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상상해 보았다. 


내일도 사장님께 고용되어 사회의 꿀을 채취하기 위해 야근을 하게 될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내 가치는 어디에 있고 내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인생의 맛은 어디에 있을까.


노장사상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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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유엔인권자문위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시공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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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서두에서 언급한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견해를 잠깐 빌리자면,

오늘날 세상은 어느 때보다 부유하다.


가장 가난한 국가의 생활형편은 1,800년 가장 부유했던 국가보다 낫고, 

소수를 제외한 전 인류가 굶주림을 걱정하던 시대는

이제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이 비만을 걱정하는 시대로 변모하였다.


정말 세상은 진보하였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세계의 역사는 진보의 역사이기 이전에, 전쟁과 다툼의 역사였다. 

사람들은 더 높은 곳에 올라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고,

세상은 권력을 쟁취한 자에 의해 재편되어왔다. 


전쟁에서 이긴 자들은 그들의 파이를 낙오자들에게 나누어주는데는 인색하였다.

권력자들은 권력을 유지하고 그들이 재편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하여 

대중의 환심을 얻어야했고, 대중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하긴 했지만,

대중의 필요에 대한 관심이 하층민에게까지 온전히 이어지지는 않았다. 

결국, 기득권자와 전체를 위하여 하층민들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경제학자 멜서스는 빈민구제법을 폐지함으로써, 

빈민의 사망률을 높이고 적정 인구를 유지해야한다고 보기도 했지 않던가..


역사적으로 분명 기술은 무척이나 발전했고, 기술의 진보는 부의 팽창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의 진보를 의미한다고 보진 않는다.

교통수단의 발전은 세계 어느 곳이든 손쉬운 이동을 가능케 했지만,

자동차가 없거나 비행기를 탈 티켓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화 격차는 더욱 커졌고,

손쉬운 무역을 통해 선진국들은 저개발국의 노동시장에서 얻어지는 부가가치들을 독점하게 되었다.


정보화의 발전은 세상 모든 정보에의 접근을 가능하게 했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에 접근할 수조차 없는 이들의 정보 격차는 더욱 커졌고,

그들은 세계의 변화에서 점점 낙오되어 간다. 


금융시장의 발전은 세계 어느곳에나 손쉬운 투자를 가능케했지만,

자본을 가지지 않은 이들의 소득 격차는 더욱 커졌다.


이처럼 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부의 팽창은 소수에게 독점된 변이 없지 않고,

기술의 발전에 편승하지 못한 이들에게 기술의 발전은

거대한 장벽으로 다가오게 되었다고 본다. 


내가 보는 세계는 끊임없이 발전하는 세계가 아니다. 

기술은 발전할지언정, 그보다 더 중요한 인간 가치관의 발전은 없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교양이 발전하고 법이 발전하고 예절은 발전하였지만,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듯 하다.

기술의 발전은 탐욕스런 소수의 독점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는 기득권 일부가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기심을 이길 '사랑'의 정서가 인류의 보편적 정서로 심어져 갈 때 비로소 해결될 일이다.


권력과 시스템에 대한 봉기 혹은 저항을 통해 해결될 일도 아니라고 본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또다른 권력을 낳는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저항하고 봉기해야 될 대상은 이기적인 우리 마음의 정서이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는 우리가 목적지를 향해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잠시 이 책을 통해서라도 달리는 열차에서 살짝 떨어져 

우리가 과연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세상의 화려함에 속지 않기를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사랑'의 정서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세상의 화려함은 회칠한 무덤에 불과할 뿐이다. 

누군가의 '부'는 다른 누군가의 '가난'을 발판삼아 이루어진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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