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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ㅣ 서울대학교 통일학 연구총서 30
정근식.강성현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6년 5월
평점 :
1972년 한 장의 사진이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알리며 전세계적인 반전운동을 이끌어냈다. 바로 그 유명한 AP통신이 타전했던 일명 <네이팜 소녀> 사진이다. 소녀의 이름은 판티 킴폭. 당시 9살이었던 소녀는 남베트남 트랑방 마을에 떨어진 네이팜탄에 온 몸에 화상을 입고 울부짖으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사진을 찍은 닉 우트는 다음 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기록이라는 가장 큰 목적 이외에 보도와 같이 어떤 사건을 담아내기 위해 현장성이 생명인 르포에 흔히 사용된다. 특히 영상에 비해 사진은 “순간의 포착”이라는 점에서 훨씬 선명성이 강하고 위 사진처럼 한 장의 사진이 가져오는 효과는 주목성 면에서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진이 주는 주목성과 선명성의 충격적 효과 때문에 우리는 한 프레임 속에 갇힌 사진의 이미지를 강하게 하나의 사실(The Fact)로써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사진은 하나의 진실일 뿐.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는다.
정근식·강성현의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은 이러한 사진이 주는 효과를 인식하고 그것을 고정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재현물-기억의 재현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전쟁사진집과 다르게 특기할 만하다. 또한 이러한 시각은 역사를 구성하는 재현물로서 사진이 담은 “기억의 위치성”을 확인하고 있다. 바로 사진 속에서 사라진 혹은 지워버린, 생산맥락에 주목하기 위해 미군 사진부대의 활동을 함께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구성된 재현의 기억에 담긴 기억의 정치를 드러내고 해석하고 저항하는 일이기도 하다.
닉 우트의 네이팜 소녀 사진 시리즈에는 이 책의 맥락과 유사하게 본 사진의 이면을 드러내 주는 다른 사진이 있다. 즉 네이팜 화염 속 카메라와 영사기를 쥐고 있는 무장하지 않은 군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 소녀 주위에 몰려있거나 울고 있는 다른 아이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사진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진 속에서 사라져 있던 모습이다. 바로 미군 속 사진사/촬영사들이다. 책에서 분석한 것처럼 사진을 찍은 주체는 세 부류다. 첫째는 잡지사, 통신사, 신문사 소속 민간인 사진기자들. 둘째는 군의 사진병과 군속사진가들. 셋째는 아마추어 사진가들.
<네이팜 소녀>는 AP통신 소속 닉 우트, 즉 종군사진기자에 의해 찍힌 사진이다. 사진을 전송한 제목은 <전쟁의 공포>였다고 한다. 아마도 닉 우트가 군소속 사진병이나 아마추어 사진가였다면 전쟁이 주는 참상에 대한 시각을 전하는 관점도, 위 사진이 가진 파급력도 그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은 훨씬 더 오래 지속됐을라나? 아무튼 이것은 사진의 해석에 있어서 사진을 찍은 주체와 맥락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전쟁 사진 또한 이러한 점에서 바라 볼 수 있으며 본 책의 내용이 바로 그러하다.
또한, 이 책은 하나의 사진 속에 담긴 한국근현대사가 사진의 해석으로 풍부하게 담겨있다. 저자들이 한국근현대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연구자라는 점이 사진에 담긴 맥락과 역사를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는 점은 커다란 장점이다. 흔히 보도용 기사로 짤려진 사건사나 사진에 적힌 짤막한 캡션만으로는 한국전쟁을 둘러싼 흐름이나 사건들에 대한 이해가 파편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지를 통해 시대적 상황까지 설명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주체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함께 서술함으로써 객관적인 시각에서 판단할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한다는 점은 제목의 그것처럼 한국사회, 한국전쟁을 연구하는 역사사회학이라는 다소 거리감 있는 학문분야를 대중적 매체인 사진을 통해 풀어감으로써 친근하게 대중화하는 영리한 전략이다.
이 뿐만 아니라 각 개별 사진사나 사진병이 찍은 사진을 분석하고 이 인물들의 성향까지 디테일하게 분석하는 치밀함은 한국전쟁 사진분석에 있어서 또다른 방법론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괄목할만하다. 특히 수원역 앞에 대기 중인 사상범을 찍은 사진의 캡션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저자는 북한군 포로나 남한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피난민(실제 이 사진은 p.155 사진 3-106)이라는 각자 다른 사진병들의 해석과 달리 현대사에 입각해 기존 미군병의 해석을 수정해 제시하고 이것이 주체에 따라 어떤 재현물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단순 사진집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강조해준다. 우리는 총 199개의 사진자료를 통해 꼼꼼히 한 장씩 분석하는 저자들의 역사사회학적 해석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한국전쟁을 둘러싼 당시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한국전쟁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대부분의 사진은 바로 미군 사진부대와 소속 사진병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사진 속에는 전술적 활동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의 자연환경과 마을풍경 그리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더욱 중요한 역사적 자료다. 그 중 책에 담긴 인상적인 사진(혹은 전쟁사에서 사각화된 사진) 몇 가지를 꼽아본다면 다음과 같다.
사진생산 조직에 대한 사진 : p.21 사진 2-1, 2-2,
전쟁의 참상 1 : 학살 : p.26 사진 2-20, 2-21 / p.47 사진 2-32 / p.49 사진 2-33(캡션과 다른 사진) / p.134-135 사진 3-77, 3-78, 3-79, 3-80 / p. 136-137 사진 3-81, 사진 3-82
전쟁의 참상 2 : 전쟁고아와 네이팜탄의 피해자들 : p.49 사진 2-34.(전쟁고아) / p.50 사진 2-35(p.211 사진 4-26), p.156-157 / 사진 3-107, 108, / p. 4-27, 사진 4-28
전쟁의 참상 3 : 포로 : 빨치산으로 혐의받은 민간인억류자(포로) : p. 152-153 사진 3-103, 3-104, 3-105(여자들과 아이들)
각 국들의 사진병들, 특히 북한, 중국 사진병들의 존재 : p.236-238 사진 3-4, 사진 3-5, 사진 3-6
그러나 저자들의 촘촘한 역사사회학적 분석이 더해진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쪽에서의 자료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을 둘러싼 시각의 빈 구석을 발견하게 된다. 언젠가는 책의 그림 1-1(p.10)의 아래 부분도 함께 채워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