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 진열실 을유세계문학전집 13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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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계급주의가 만연했던 프랑스의 한 시대를 그려낸 ‘발자크‘의 소설.

제목에서부터 이미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현에 위치한 도시의 귀족들은 옛 타성에 젖어 데그리뇽 후작의 살롱에 모여 그들만의 사교 모임을 형성하는데, 여기에 끼어들 수 없는 신흥 부르주아들이 비꼬아 부르기를 '골동품 진열실’이라 칭한다.


유서 깊은 데그리뇽 가문이었지만 프랑스 대혁명으로 회생은 커녕 몰락 직전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영광을 생각하며 하나뿐인 아들 빅튀르니앵을 파리로 보내 사교계에 입문시키려 하는 데그리뇽 후작.

하지만 철없는 빅튀르니앵은 파리에 입성하자마자 사치와 향락에 빠지고 만다.

‘젊은 백작의 저녁 시간은 사교 모임, 무도회, 연회, 공연 같은 것들로 채워졌다. 빅튀르니앵은 도처에 자신의 재치의 구슬을 뿌리고 다녔기 때문에, 사방에서 빛을 발했다. 그는 난해한 재담으로 사람들, 사물들, 사건들에 대해 판단했다. 마치 꽃만 피는 과일나무와도 같았다. 어쩌면 돈 이상으로 영혼이 탕진되는 삶, 더없이 훌륭한 재능이 매장되는 삶, 완전무결한 청렴성이 죽어 가는 삶, 최고로 단련된 의지가 녹아내리는 삶, 그는 그런 나른한 삶을 영위했다.’ (p.108)


수중에 있던 돈을 모두 탕진하고 제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에서 데그리뇽 가문에게 복수를 하고자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부르주아 뒤 크루아지에를 만나면서 권모술수에 빠져 어음을 남발하고 결국엔 어음을 위조했다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빅튀르니앵의 이런 무모하고 바보같은 짓을 뒤에서 늘 봐주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 집안의 집사이자 끝까지 헌신적이었던 공증인 ‘쉐넬’ 이란 인물이다.


‘쉐넬은 사생활의 그런 미지의 위대한 인간들 가운데 하나만이 아니라, 위대한 사실 그 자체였다. 그의 희생의 계속성이야말로 그에게 무언가 엄숙하고 숭고한 면모를 부여하지 않는가? 그것은 언제나 순간적인 노력이라 할 수 있는 선행의 영웅성을 넘어서는 것이 아닌가? 쉐넬의 덕성은 본질적으로 민중의 비천과 귀족계급의 영화 사이에 위치한 계층에 속하는 것으로서, 그 계층은 확고한 교화의 횃불로 양자를 비춤으로써, 부르주아의 소박한 덕성을 귀족의 숭고한 사상에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다. (p.233)

발자크는 보수적 신념의 작가였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이 변화하는 흐름을 꿰뚫어 보고 사태 파악을 함으로써 ’쉐넬‘이라는 인물에게 자신의 심정을 담아낸 건 아닌가 싶다.

데그리뇽 가문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표현한 부분들이 너무 흥미로웠고, 우리의 현 시대의 모습들과도 비슷한 장면들이 보여서 비교 해 가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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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 관하여 - 훌륭한 것을 만들어내는 일에 대한 뉴욕 목수의 이야기
마크 엘리슨 지음, 정윤미 옮김 / 북스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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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흥미진진하다.
특히 나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는 더더욱 끌린다. 이 책의 저자 마크엘리슨은 뉴욕의 최고 목수라고 불리우는 사람이다. 40여년 동안 집을 지으며 수많은 현장에서 배우고 실패를 거듭하며 얻은 귀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늘 함께하는 존재는 자기 자신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삶을 공유한다. 나는 만족감, 성취감, 품위야말로 삶의 질적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라 생각한다. 인생을 살면서 모든 순간이 가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자신을 만족시켜야 한다.” (p.256)


"의지는 사람의 행동에 달려 있다. 모든 영역에서 능력과 성취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의지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데, 나는 이 점이 늘 의아했다. 사람들은 의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서 의지의 결과에만 초점을 맞춘다. 과정은 대부분 무시된다. (…)
의지는 행동에 중심을 두지만, 그 마법은 우리의 능력과 정체성까지도 바꿀 수 있다. 의지의 결과를 인식할 때 영감을 줄 수도 있을 만큼의 의지는 강력한 힘이 있다.“ (p.288)


건축 관련 용어들이 다소 들어있는 편이라 중간중간 진도가 안나갈때가 살짝 있었지만 다양한 현장에서 클라이언트들의 까다로운 요구조건에도 무사히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고, 예기치 못한 변수에도 기지를 발휘하여 일을 마무리 짓는 모습이며, 무언가를 새롭게 창조 해 내는 일에도 두려움은 커녕 지루 할 틈이 없으니 죽을 때까지 해도 좋을 것 같다는 마인드를 가진 그.

일을 대하는 태도란 이런 것일까?내가 일을 따라가는게 아니라, 일이 나를 따라오게끔 하는 그런 내공을 가진 듯 해 보였다. 책을 완독한 후에 내 일과 삶의 대해서도 다시 한번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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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책상
하루 지음 / 아침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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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고 나름 열심히 읽고 있지만 독서기록은 좀처럼 잘 되지 않는 편이다. 그저 독서기록 비법(?)을 공유 받고자 이 책을 펼쳤는데 자그마한 책 한권에 나를 사로잡은 글들이 넘쳐났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더 자주 책을 찾았다. 책 읽기는 현실 도피할 수 있는 매력적인 수단이니까.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일 때 미뤄두었던 책이 술술 읽힌다. 여행 가서 이런 책들을 읽어야지, 하고 야심 차게 여러 권을 챙겼다가 정작 한 권도 못 읽고 돌아올 때는 여행이 그만큼 재미있었다는 말인 것처럼. 고민에 대한 답을 쉽게 정할 수 없었던 시기를 책을 읽으며 유예했다.’ (p.20)

고민이 있을 때 책을 찾게 되면 잠깐이지만 고민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거나, 책을 읽다가 문득 해결책이 떠올라 오히려 가지고 있던 고민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책이란 나 자신을 환기시키는 도구로서 다시 한번 ‘나’ 라는 사람으로 되돌아 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듯 하다.

'완성되지 않은 나는 무엇일까. 그냥 견디는 사람? 완성이 되어야만 의미 있는 거라면 완성되지 않은 지금의 나는 의미 없는 시간을 버티고 있는 건가? 무엇보다, 완성이라는 것이 있긴 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책을 읽고 기록하면서
찾았다. 읽고 쓰는 일에는 시작과 끝이 없었다.’ (p.81)

‘독서노트의 어떤 페이지를 완성하지 못했다고 해도 거기까지 기록하는 동안 내가 보낸 시간은 없어지지 않는다. 목표를 세우고 시작했던 순간, 무언가 해 보려고 구상하고 노력한 마음.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그 시간이 모두 지워질 수는 없다. 나는 완성하지 않아도 좋은 기록을 믿는다.’ (p.82)

독서기록을 자꾸 망설이게 되는 이유가 뭘까 했는데 이 책에서 해답을 찾았다. 동시에 용기도 얻은 듯 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틀에서 벗어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읽고 쓰는 것이 곧 ‘나’ 자신이 아닐까.

책 마지막 부분에는 부록으로 ‘독서기록을 위한 안내서’가 나와 있다. 참고 해서 나만의 독서노트 만들기에 다시 도전 해 볼 생각이다.

독서가로 거듭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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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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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작성 해 보는 티저북 서평.
'끝나지 않은 일’이라는 제목을 가진 처음 접해 보는 비비언 고닉의 글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 이 글에서는 다시 읽기를 통한 새로운 자기발견과 삶을 위한 끊임없는 사유의 추구를 갈망한다.

얼마 전 나도 재독의 매력을 알게 되었는데 몇년 전 꽤나 재미있게 읽었었던 일본 소설책을 어쩌다 생각이 나서 다시 접하게 되었다. 이미 시간이 꽤 흐른지라 줄거리만 기억할 뿐 거의 새로 읽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읽는 내내 다양한 생각들을 했었던 듯 하다.

내가 이 책을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다시 한 번 상기 시킬 수 있었고 예전엔 그저 단순하게 ‘재밌다’라는 생각을 끝으로 책을 덮었었는데 지금의 ‘나’는 이 책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가며 더욱 더 깊이 매료되어 즐기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마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마주보는 기분이랄까.

사적인 읽기의 행위가 끊임없는 자아탐구의 길로 이어질 수 있다니 이만한 매력이 또 있을까.

작정하고 읽는 자는 늙지 않고 영원히 성장한다고 말하고 있는 이 책.

집요하게 읽고 또 읽으며 나의 인생이라는 책을 펼쳐 나가고 싶다.

#비비언고닉#끝나지않은일#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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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게이하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2
윌라 캐더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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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7 : 날씨와 생활을 테마로 한 다섯권의 책 중 한권인 ‘루시 게이하트’

피아니스트가 꿈인 주인공 ‘루시’는 고향을 떠나 시카고에서 학교 생활을 하던 중 교수님에게 유명한 성악가 ‘서배스천’의 보조 연주자 일을 소개받게 되는데 그와 엮이면서 새로운 감정들과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을 마주보게 된 루시.

동경과 사랑이란 감정들이 움트면서 점점 더 ‘서배스천’에게로 물들어가고 있는데..
하지만 ‘루시’에게는 고향에서 알고 지낸 8살 위의 번듯한 부잣집 도련님 '해리 고든’이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커져가는 자신의 마음을 숨길 수 없었던 루시는 어느 날 시카고에 자신을 보러 온 해리에게 그대로 이실직고를 하고 만다.
프로포즈 비슷하게(?) 얘기를 꺼낸 해리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소리..
루시의 말에 괘념치 않은 듯 해 보였지만 완강한 루시의 태도에 결국 둘은 그 날을 마지막으로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얼마 후 공연을 떠난 서배스천이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되고.. 그 사이에 해리는 다른 부잣집 아가씨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

고향에 돌아온 루시는 마을 사람들이 몰라 볼 정도로 예전에 그 생기있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잔뜩 움츠린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에 더해 해리와 화해를 시도했지만 이미 해리는 루시가 알던 해리가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매서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처럼 지내고 있던 루시는 어떠한 계기로 인해서 다시 혼자서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마치 찰나의 봄처럼 루시의 새로운 삶은 시작도 해 보기 전에 스테이트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인해 끝이 나고 만다.

소설 속의 루시의 삶에는 겨울과 봄, 단 두 계절만 존재했던 것일까.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에 서배스천을 만났고 그와 함께 한 시간들이 곧 봄이었으며, 고향으로 돌아와 차가운 겨울처럼 우울했던 나날들을 지나 다시 혼자만의 삶을 시작하며 봄을 맞이하려 했던 ‘루시’

이미 천상에 가 있었던 서배스천을 만나 진정한 봄을 느꼈으려나 싶다.

작가는 이 소설을 두고 결말 부분인 제3부가 가장 훌륭하다고 했는데 해리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하는 바로써 공감하는 부분이다. 루시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시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의 해리의 모습이 짠해보였다.
이미 떠나간 루시를 어떻게든 기억하려고 하는 절절한 마음도 잘 표현되어 있다. 올 겨울에 이 책을 다시 한번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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