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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개벽 2021.봄 - 형상 없는 흔적, 흔적 없는 형상
다시개벽 편집부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21년 3월
평점 :
"다시개벽"이라는 말은 '다시'와 '개벽'이라는 말로 구성됩니다. 여기서 '개벽'은 일반적으로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증산 계열의 신종교의 용어가 아니라, 본래[그보다 앞서서] 동학을 창도(1860)한 수운 최제우 선생이 가장 먼저 '철학적/사상적/역사적/문명적' 차원에서 쓴 말입니다.[물론 '개벽'이라는 말 자체는 그 이전부터 널리 쓰여 왔습니다만.]
수운 역시 '개벽'을 본래의[전통적인/오래된] 의미로 쓰기도 했습니다. 그 의미는 '천지개벽'의 뜻으로 오늘날의 현대과학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빅뱅'의 순간이나 '지구와 대기가 처음 형성되는 것'쯤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개벽'이라는 말의 '전통적인 의미'이지요. 그러나 이런 의미의 '개벽'을 수운이 '말하고자' 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수운의 동학에서 '개벽'이 본격적으로/창의적으로/동학적으로 쓰일 때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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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다시개벽'의 뜻입니다. 이때 다시의 의미는 이 시대가 마치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생길 때처럼, 다시 말해 무에서 유로, 혼돈에서 질서로, 불모에서 (생명)가능성의 세계로 전환하던 때처럼 근본적이고, 막대하고, 막강한 대전환의 시기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이것이 다시개벽의 첫 번째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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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인문개벽'의 뜻입니다. 즉 수운의 동학의 개벽의 본격적인 의미의 두 번째는 선천개벽이 주로 물질적인 측면에서 하늘과 땅이 생성되거나 그 기능을 발휘하는 때라는 의미와 대비해서, 다시개벽은 '인문개벽' 다시 말해서 인류의 사회적/역사적/문화적 삶의 방식, 세계관, 인간관,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전환되는 시기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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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정신개벽/인심개벽'의 뜻입니다. 이것은 비유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수운이 동학을 창도하던 근대 시기[19세기 중엽] 전후의 시기까지 인류 역사는 일찍이 마르크스가 통찰하여 설파한바 있듯이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해 온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물질적인 토대/존재의 조건이 정신적/문화적/심리적/사상적인 양상을 결정하였다는 것이지요. 마르크스는 인간의 역사의 제 양상을 섭렵하고 망라한 결과로 이러한 통찰을 얻어냈습니다. 그러나 수운은 이러한 선천의 역사, 즉 물질적/생산관계적 토대가 인간의 삶과 운명을 결정적으로 결정하는 시대로부터 '개벽'적인 '변곡'이 일어나고 있음을 통찰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사상과 정신과 심리와 문화 같은 상부구조가 도리어 하부구조[물질적/존재론족] 조건에 영향을 끼치며, 그 역전관계가 점점 더 심화/확장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 중요한 것은 이 시기에 들어 현실 세계에서는 '물질적 측면의 영향력과 발전 정도가 점점 왕성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대로 지난 1.5세기 혹은 3세기 정도의 시기에 인간이 달성한 물질적 발전(?)의 성취는 가히 가공스러울 정도로 전면적이고, 급진적이고, 압도적으로 진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것은 정신적/문화적/심리적/사상적인 측면의 개벽 즉 정신/인심 개벽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성대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다른 한편으로, 이 시기를 '인심개벽/정신개벽'의 시대로 규정하는 것은 물질의 기운이 극단적으로 왕성해지는 데에 대응하여 인심/정신의 기운이 '극단적'/'도약적'으로 성숙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개벽되어야 한다"는 당위론적인 명제로서 제시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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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곧 닥쳐올 '기후위기'(로 우리가 알고 있는)의 전주에 불과하다는 인식은 어느 정도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이 '코로나19팬데믹"이나 "기후위기" 또 그에 따른/병행하는/그 일부로서의 생물대멸종이나 대재난의 빈발은 바로 이 시대가 "다시개벽"의 시대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혹은 바로 그러한 현상을 일컬어 '다시개벽의 양상'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는 단지 최근 몇 십년 사이에 진전된 시대가 아니라, 이미 수 세기 전에 이미 접어든 '변곡구간'의 일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변곡 구간을 지나가는 시기와 그 지나감'을 일컬어 다시개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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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다시개벽>은 이러한 우리 시대의 우리의 의지를 확인하고, 그것을 갈고 다듬는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오늘 각자의 삶의 행태를 돌이켜보고, 우리가 더불어 사는 이 사회의 삶의 양식을 점검해 보고, 우리가 맞이해야 할/맞이하고 싶은 미래 세계 - 우리의 노후,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갈 세계를 고난과 재난과 재앙이 없는 / 최소화된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제안하고, 토론하고, 공유하고, 공감하는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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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새로운 생명의 의미와 더불어 새로운 삶,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대의 의미합니다. 무엇보다 그 주인공은 새로운 존재[새싹 = 새 사람]입니다. '나'를 '다시개벽'하는 새 봄이 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꼭 읽어 보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