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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지구를 먹어치우는가 - 초가공식품과 식품산업이 만들어낸 게걸스러운 인류의 탄생
헨리 딤블비.제미마 루이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1월
평점 :
“요리가 아니라 재료를 먹는다”라는 타박을 종종 듣는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고, 맛있는 건 몸에 해롭다”라는 말에 세뇌된 것일까? 아니, 그냥 의심이 많은 사람일 뿐이다. 의심 많은 사람은 요즘의 먹는 풍경이 불편하다. 먹는 일이 영 이상하고 수상하다. 한 끼 식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양을 한 끼에 한 사람이 먹는다. 고자극 음식일 수록 먹는 열의에 불타며 식탐을 자랑스러워 한다. (자랑스러운 게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인지, 아니면 먹으면서 돈을 번다는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이상하고 수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러한 의문을 품고 살다 보니 먹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난생처음 홀린듯? 서평단을 신청했다.
<우리는 어떻게 지구를 먹어치우는가>의 원제는 Ravenous다. 사전적 정의는 ‘배고파 죽을 것 같은’ 또는 ‘엄청나게 굶주린’이다. 배고파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을 위해 20세기 중반, 노먼 볼로그 같은 과학자들이 밀 품종을 개량했다. 이후 식품 생산량은 급증했다. 그러나 많이 생산한다고 끝나지 않는다. 많이 사.서. 먹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사서 먹도록 입에 넣으면 도파민이 마구 분비되게 하는 초가공식품이 대거 등장했다. 사람들이 더 먹고 싶어 하도록 지방과 설탕을 완벽한 비율로 배합해서 말이다. 이렇게 게걸스러운 인류가 지구를 먹어치운다. 앉아서 꼼짝하지 않은 채로, 아주 편안하게. 이 모든 게 누구를 위한 걸까?
이 책에는 식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들어보고 읽어봤을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육류 소비가 기후변화를 촉진한다는 것, 동물의 고통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고기를 먹고 싶다는 욕망이 동물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게 만든다는 것, 성분표를 보면 난생처음 보는 화학물질 이름으로 가득하다는 것 같은. 그러면서 신선한 내용도 있다. 오늘날 면역 질환이나 생식계 질환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에너지 소비량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우리 몸의 방어 기제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좀 더 풀자면, 하루 에너지 소비량은 일정하다. 이는 운동을 더 하거나 덜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만큼 일정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과거에 비해 몸을 정말 적게 움직이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미처 소비되지 못한 에너지는? 만성 염증과 생식기 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몸매 유지를 위해 하는 운동은 작심삼일로 끝나기 일쑤인데, 아프지 않으려면 에너지 소비를 위해 운동해야 한다고 하니 연초부터 운동할 동기부여가 팍팍 된다.
이 게걸스러운 문화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식품 산업과 의료 업계를 모두 만족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 좋은 일만 시킨다”라는,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기에 적극 가담한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따금 찾아오는 달콤한 두쫀쿠, 짜릿한 마라탕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역시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겐, 나에겐 이런 책이 여전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