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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너무 힘들어서 학생들이 기피한다는 신경외과의가 되기로 선택한 폴 칼라니티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높은 업무강도를 견뎌내며 레지던트 생활을 해나가던 중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절망한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대체 얼마인가? 몇 개월인가 몇 년인가? 죽고 나면 아내인 루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남은 시간동안 평생 쓰고 싶었던 글을 써야 하는가, 아니면 레지던트 생활로 돌아가야 할까? 하고 싶은 걸 마무리할 시간이 있기조차 한걸까?
어린 시절 풍부한 독서를 하며 문학의 매력에 푹 빠지고, 대학생 때 철학과 신경과학에 관심이 높아졌던 폴은 수업의 일환으로 심각한 뇌 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생활하는 시설을 방문했다가 큰 충격을 받는다. 의과 대학원에 진학한 후 그는 지속적으로 죽음과 접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폴과 동료들이 겪는 고통과 혼란이 간결하지만 유려한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한 번 시작되면 최소 6시간 넘게 서서 진행되어야 하는 수술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순간적으로, '차라리 환자의 종양이 전이되어 손 쓸 수 없는 상황이었으면 좋겠다' 하고 바랐다던 선배 레지던트의 일화였다. 절개 후 살펴보니 실제로 상태가 심각해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환자를 봉합 한 후 수술실을 나와서 자책하던 그녀의 이야기는 신의 영역에 가깝지만 한계가 있는 인간일 수 밖에 없는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 책은 정말 특별하다. 폴의 문학적 소양을 느낄 수 있는 글 솜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스스로의 한계와 싸우는 그의 내적 고민과 종국에는 죽음과 최전선에서 싸우던 입장에서 죽음에 무릎꿇어야 하는 위태로운 생명이 되어버린 아이러니를 짧은 분량 속에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을 의사로서 대면했을 때와 환자로서 겪었을 때의 차이를 묘사한 부분이나, 폴이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에게 사무적으로 대했을 때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를 암 선고를 받고 난 이후에야 진정으로 이해했다는 고백을 통해 그의 모순된 상황이 역설적으로 진정한 의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아내인 루시 칼라니티가 남편에 대한 사랑과 슬픔을 담아 마무리했다. 그녀가 지켜본 폴은 죽음을 앞에 두고 애써 용감한 척 하려 하지 않았고, 사후 루시와 그들의 딸이 안전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쏟았다.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고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우아하게 스스로의 죽음을 맞았다고 했다. 독자로써 다행스럽게 느낀 건 폴과 루시의 가족들이 성숙한 태도로 그의 죽음을 함께 준비했으며,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그녀와 딸 케이디를 보살펴 줄 것이라는 점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의사의 길을 걷는 이들, 죽음을 목격하거나 겪을 사람들, 그리고 훗날 이 책을 읽게 될 딸 케이디에게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큰 선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