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좌충우돌 몽골제국사 - 2024 세종도서 ㅣ 한빛비즈 교양툰 32
봉닭 지음 / 한빛비즈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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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몽골 초원의 유목제국에서 유라시아 세계를 장악한 세계제국으로

- <만화로 보는 좌충우돌 몽골제국사>(봉닭, 한빛비즈, 2024)를 읽고 -


 


1. 몽골제국의 추억과 질문하지 않는 것들 : 두렵고도 흐릿한 ‘외세’의 초상

 

몽골. 이 두 글자를 들으면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일단 저 이름을 딴 지명, 몽골 초원의 광막한 풍경이 떠오른다. 그리고 몽골 초원을 지배한 유목민, 몽골인과 그들이 세운 정치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몽골 초원’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정치체가 점거하고 지배하며 각축을 벌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몽골인’과 그들이 세운 정치체는 그 강력한 군사력과 광대한 영역으로 말미암아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이름을 떨쳤다. 끝없이 회자되는 소위 ‘몽골제국’이 그러하다.

 

하지만 몽골제국, 그리고 제국을 건설한 주역이자 그 지배층이라 할 만한 몽골인에 대해서 필자는 감히 ‘모른다’고 답해야 할 것이다. 호사가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것들은 상당히 파편적이며 또한 편향적이다. 몽골인들이 누구였냐는 질문에 흔하게 ‘잔혹한 학살자와 약탈자’라는 스테레오타입이 딸려나온다. 몽골제국을 건국한 원동력은 ‘강력한 군사력과 잔혹성’으로 뭉뚱그려 설명하고, 정작 몽골인이 건설한 제국이 어떤 사상과 체제를 갖추고 다양한 문화권을 지배해나갔는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쿠빌라이 칸 이후의 몽골제국에 대한 인식 또한 마찬가지다. 몽골제국의 존재감은 급속도로 축소되어 중국대륙을 차지한 원(元)으로 바뀌고, 대칸 울루스의 존속과 쇠망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은 두지 않는다. 오히려 대칸 울루스와 관계를 맺으며 일명 ‘원간섭기’를 겪었던 고려와의 관계가 두드러지게 조명을 받곤 한다. 즉 몽골제국의 초기에는 몽골인의 잔혹한 정복 활동을 소비적으로 조명하고, 중후기에 한해서는 급작스럽게 원조(元朝)로 영역을 축소하고 관심 대상도 한중관계사의 일부로 국한해버리는 셈이다. 그간 일반적으로 소비되어 온 몽골제국과 몽골인의 이미지는 ‘단장취의(斷章取義)’의 극한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런 현상이 비단 몽골제국사에 한해서만 나타나는 특이하고도 고립된 것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과언이다. 허나 필자가 그동안 접하거나, 주변인과의 대화에서 접한 일반 내지는 대중의 몽골 인식을 정리해보자면 상술한 내용과 거의 다를 것이 없다. 먼저 정주세계의 입장에서 유목민을 적대시하거나 야만인으로 규정하는 스테레오타입이 종종 나타난다. 이어서는 지극히 ‘한국사’의 입장에서 몽골제국과 접촉했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지엽적인 관계사로 뛰어넘어간다. 좀 더 생각해본다면 전자의 스테레오타입 역시 고려가 경험한 여섯 차례의 전쟁에서의 패배와 치욕을 그대로 세습한 결과와 마찬가지다. 이러한 인식의 기저에는 전근대 한반도의 정치체를 오늘날 국민국가의 정체성으로 이어붙여 이해하는 국사관이 자리한다. 결국 몽골제국에 대해서 질문되어야 할 것들은 암흑 속으로 사라지고, 현대 한국인의 따가운 눈총을 견디는 것은 잘라내고 이어붙여진 제국의 부스러기들이나 마찬가지다. ‘(대한민국과 동일시되는)과거 한반도 정치체를 포함한 정주세계를 잔혹하게 공격하고 지배한(혹은 지배하려 한) 외세의 제국’이 흐릿하게나마 대중의 인식 속에 그려진 몽골제국의 초상이 아닐까 싶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몽골’이라는 유목민 집단이 어째서 유라시아의 광대한 정치체와 문화권을 통합하는 제국을 세웠는가? 그 제국이 다시 다섯 개의 울루스로 나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다섯 개의 울루스로 나뉜 후에도 그들은 ‘몽골제국’이었는가? 정복의 시간이 끝나고 제국이 구축한 지배질서는 어떠했는가? 지배질서는 체제 속에 어떻게 구현되고 피정복자들에게 스며들었는가? 몽골제국의 존재 이전에 서로 분리되어 있고 접촉할 수 없었던 여러 ‘세계’는 어떤 시스템을 통해서 서로 연결되었는가? 몽골제국의 존재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활발한 교류’는 유라시아에 어떤 정치·사회·문화적 영향을 낳았는가? 몽골제국의 멸망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유라시아사에 무슨 영향을 끼쳤는가? 통시적 시각에서, 몽골제국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력이란 ‘광대한 영토의 정복’ 내지는 ‘무역의 활성화’ 이상의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

 

현장에서 다양한 사료를 접하고 연구를 진행하는 전공자들도 간명하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지만, 간명하게 답하기 어렵다는 것은 그 질문의 가치를 대변할 뿐 ‘질문되지 않을 권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간명한 답을 찾지는 못하더라도, 몽골제국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을 이해하는데 무의미한 질문들은 아니다. 나아가 어떤 정치체와 그것이 ‘세계’에 끼친 영향을 역사학적으로 독해하는 방식을 이해하기에 좋은 질문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대중서 내지는 교양서의 영역에서, 몽골제국을 언급하거나 다루는 글에서 전술한 질문들에 적절한 답 혹은 고민이라도 보여주는 사례는 상당히 드물었던 것 같다. 특히 그 양식이 만화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만화라는 장르 속에서도 몽골제국의 존재는 주축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주축을 차지하더라도, 그것은 대개 인물의 서사를 구성하는 시대적 배경이나 그 서사의 결과 정도로 자리했다.

 

그렇기에 <만화로 보는 좌충우돌 몽골제국사>의 연재 및 출간 소식을 접했을 때 상당한 흥미를 느꼈다. 연구서 혹은 학술서가 아니라면 종합적인 시선에서 다뤄지지 않는 ‘몽골제국’의 역사를 만화를 통해 설명하고 해설하며 또 연출한다니. 그간 칭기스 칸 같은 소위 ‘영웅’이나 몽골의 정복 과정에서 피정복자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만화는 접했지만, 몽골제국 자체를 중심에 놓겠다고 천명한 만화는 필자에게 본서가 처음이었다. 따라서 흥미는 곧 몇 가지 기대와 의문으로 변했다. 학술적 시선과 서사적 흥미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 사건과 인물을 씨줄과 날줄로 삼은 통사적 서술을 취할 것인가? 세계사와 지역사 그리고 한국사 사이에서 얼마나 균형잡힌 시선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간간히 접해온 단편적 정보들 이상의 복합적인 역사상을 접할 수 있을까? 딱딱한 정보를 이미지로 표현하고 복잡한 사건을 함축하는 만화적 연출은 어떤 모습일까?

 

정리하자면, <만화로 보는 좌충우돌 몽골제국사>(이하 <좌충우돌 몽골제국사>로 약칭)는 흐릿한 몽골제국의 초상을 대체할 인식의 방향성을 마련해줄 수 있을지를 기대하게 되는 도서였다. 요컨대 잔혹성과 군사력으로 건설되고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무너진 제국의 역사상이 아닌, ‘좌충우돌’이라는 수식어로 함축되는 ‘몽골제국’의 역동성과 역사적 영향력을 충분히 조명하는 ‘만화’를 기대했다.

 

2. 인드라망처럼 얽힌 14세기 유라시아에서 세계제국의 초상을 추출하다

 

<좌충우돌 몽골제국사>는 총 20화의 분량을 갖추었는데, 각 화의 말미에는 간단한 칼럼을 첨부했다. 목차에서 본서가 어떤 방식으로 몽골제국사를 조명할 것인지를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일찍이 필자는 혜안 출판사에서 출간했던 <중국의 역사 : 대원제국>으로 몽골제국사를 접했던 경험이 있다. 해당 도서는 몽골제국의 탄생에서 멸망까지의 사건들과 인물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13~14세기 전후의 역사적 흐름과 사회·경제·제도사 관련 서술을 그에 버금가는 분량으로 배분했었다. 즉 몽골제국이라는 정치체의 탄생과 쇠망의 서사를 연대기처럼 서술하는데 무게를 둔 통사(通史) 형식이라 할 만한데, <좌충우돌 몽골제국사>는 목차만 보더라도 그러한 통사 형식과는 비교적 거리를 둔 구성을 보였다. 국제정세와 제국의 흥망성쇠의 서사는 전체 분량에서 생각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지만, 그보다도 몽골제국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력이라 할 만한 요소들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 이때 ‘몽골제국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력’이란 상당히 다양한 분야와 연결되어 다뤄진다. 제도와 학문, 이동과 교류, 음식과 여가, 무역과 상품 등 꽤나 미시적인 주제를 통해 몽골제국의 존재감이 모자이크처럼 재구성된다.

 

시작인 1화는 한국사의 영역과 인접한 몽골제국사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목호의 난’을 배치했다. 제주도에 몽골제국의 영향력과 존재감이 어떻게 자리잡고 또한 퇴출되었는지를 통해, 앞으로 소개할 몽골제국의 양면적 속성을 명확하게 요약한다. 정복을 통한 대학살과 파괴 이면에, 여러 문화권 혹은 ‘세계’의 연결과 교류가 자리했으며 그것이 몽골제국의 멸망 후에도 세계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이다. 2화에서는 몽골제국의 등장에 앞선 유라시아의 정세를 소개한다. 13세기를 전후한 국제정세를 설명하는데, 그 단위가 동아시아가 아니라 ‘유라시아’라는 점은 꽤나 흥미롭다. 정복왕조(요·금)와 북·남송, 탕구트가 균형을 유지한 중국 대륙, 무신정권과 막부가 전권을 장악한 한반도(고려)와 일본 열도(가마쿠라 막부)의 상황은 전형적인 ‘동아시아사’의 영역이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시선을 더욱 넓힌다. 인도양과 동아시아의 교두보였던 동남아시아의 정세 변화는 물론, 몽골제국에 앞서 유라시아를 무대로 활동한 유목민 튀르크의 흥망, 레콩키스타와 수차례의 십자군 전쟁을 겪으며 이슬람으로부터의 ‘고전’ 유입으로 문예 부흥을 이룩한 12~13세기 유럽 대륙의 상황까지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와 레반트, 유럽 대륙에 자리한 여러 ‘세계’의 소개가 끝나서야 몽골족이 몽골 초원에 입성하고, 몽골제국의 건국 과정을 다루는 3화로 이어진다. 얼핏보면 장황한 세계사 서술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독자로 하여금 몽골제국의 등장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게 만드는 연출이자 서술이다. ‘유라시아’라는 지리적 범위를 단위로 삼고, 그 속에 복수(複數)의 (자기완결적)‘세계’가 공존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몽골제국의 등장’이라는 사건이 지닌 복합적 의미를 예상하게 만들면서도, 복수의 ‘세계’들이 나름의 교류와 이동을 통해 간간이 연결되거나 느슨하게 공존했음을 전달한다. 몽골제국의 존재 이전에도 교류와 이동, 연결은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이 몽골제국의 탄생 이후에 전개된 교류·연결과 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저자는 유라시아 단위의 12~13세기 국제정세를 제시함으로써, 몽골제국이 추동한 ‘세계의 통합’과 이후에 전개된 다양한 문화권의 ‘연결’이 이전 시대의 그것과 어떻게 질적으로 달랐을지를 독자가 스스로 비교하게 한다. 간단한 국제관계사 개설처럼 보이지만, 본서가 강조하는 ‘세계의 연결과 교류’가 단순히 몽골제국의 등장으로 갑작스럽게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과, 그것을 질적으로 변화시킨 요인이 몽골제국 내부에 자리한다는 점을 효과적으로 피력했다.

 

3화~5화는 몽골제국의 등장에서 쇠망까지를 압축적으로 다룬다. 연대기적 서술에서 꽤나 상세하게 서술될만한 사건과 인물이 거의 한 칸에 뭉탱이로 등장했다가 퇴장하고, 그간 호사가들의 흥미를 돋구었던 ‘잔혹한 정벌’ 대신 칸·카안·울루스 등의 개념과 칭기스 일족의 권력 투쟁에 집중한다. 물론 단순히 개념 설명과 정쟁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정복 활동이 간간히 소개하면서, 울루스를 통해 몽골제국의 중추를 이룬 정치 단위를 해설하고, 칭기스칸 사후 전개된 우구데이가vs.톨루이가·쿠빌라이vs.아릭부케의 대립을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그간 무의식적으로 ‘황금씨족’으로 뭉뚱그려 생각해왔던 몽골제국의 지배층 집단이 분열한 요인을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특히나 쿠빌라이가 카안을 차지하게 된 전후의 사정을 압축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3~5화를 관통하는 주요한 주제는 몽골‘제국’이 어떻게 통합되고 또한 서서히 분열되었는가라고 볼 수 있다. 통사 형식의 역사책에서는 연대기에 가까운 서술을 통해 상당한 분량을 할애할 내용이지만, 본서에서는 핵심적인 개념과 정치적 사건을 짚고 넘어간다. 몽골제국의 연대기적인 역사를 바라는 독자에게는 조금 아쉬운 점일 수 있겠으나, 필자에게는 그다지 큰 흠결로 느껴지진 않았다.

 

6화부터 19화까지는 미시적인 주제들을 선정하여 몽골제국이 추동한 세계의 연결과 문화·경제적 교류를 소개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차례대로 천문학(6화), 고려인의 한어·몽골어 학습(7화), 소주(8화), 매사냥(9화), 잠치(10화), 이탈리아 상인의 대(對) 몽골 무역(11화), 비단(12화), 대도와 상도(13화), 청화백자(14화), 안경의 이동과 확산(15화), 말과 북중국의 누리(16화), 설씨 가문의 이동과 활약(17화), 의학(18화), 화약(19화)을 통해 ‘세계제국’으로써의 몽골제국사를 재구성한다. 굳이 분과를 확정해본다면, 6~19화까지의 내용은 크게 문화사와 교류사로 범주화할 수 있겠다. 워낙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만큼, 본고에서 일일이 언급하긴 어렵다. 그러므로 몇 가지 흥미로웠던 주제를 중심으로 서평을 이어가겠다.

 

먼저 몽골제국이 카안의 권위를 제고하고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마련했던 장치들이 눈에 들어왔다. 6화의 천문학, 10화의 잠치, 13화에서 소개된 대도와 상도의 운영이 그러했다. ‘관상수시(觀象授時)’는 예로부터 동아시아에서 군주의 권리이자 의무로, 천문을 읽고 역법(曆法)을 정리하여 시간의 흐름을 지배하고 백성에게 나누어주는 것이었다. 아울러 천문 현상의 해석은 곧 군주의 권력을 신성화하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몽골은 이슬람과 중국의 천문학 체계를 병용하였으며, 쿠빌라이 카안이 반포한 수시력(授時曆)은 청대 시헌력(時憲曆)의 등장 이전까지 동아시아의 시간을 지배했다(6화). 몽골제국의 지배 하에서 동아시아와 이슬람 세계의 지식이 이동하고 교류하는 장이 마련되었으나, 그것이 학문적 융합을 저해하기도 했다는 점은 의외였다. 다양한 지식·문화의 공존과 병용이 통합과 동일하지 않다는 점에서, 몽골제국이 추동한 교류의 역사가 통합의 역사로 등치될 수 없다는 점을 곱씹었다. 역참 제도 즉 ‘잠치’의 경우(10화), 일찍이 세계사와 동아시아사를 배울 때 몽골제국사를 요약하는 주요한 제도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잠치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제도의 시행과 정비에 어떤 폐단과 노력이 있었는지는 본서를 통해 대략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다. 더불어 유라시아의 연결을 가속화한 역사적 영향 배면에 자리한, 당대인-특히 잠치 운영자인 참호(站戶)가 맞닥뜨린 고통과 문제들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대도와 상도 이야기(13화)는 몽골제국의 ‘도시사’와 연계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집중해서 읽었다. 몽골제국은 누가 뭐래도 ‘유목민’이 세운 제국이었다. 정주하지 않고 목초를 찾아 떠도는 습속을 가진 사람들이 세운 제국인 셈이다. 오르두에 익숙했을 카안이 울루스의 고정된 수도를 정하고 도시를 건설한 내력은 꽤나 이례적이었다. 흉노에는 선우정, 돌궐 제 1제국에는 외튀켄 의쉬가 있었으나, 쿠빌라이 카안의 대도와 상도처럼 정주세계의 도시로 세워진 수도는 아니었다. 또한 도성의 건설과 양도 순행이 곧 유목민의 습속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주세계의 도성과 유목세계의 계절 이동이 한데 어울린 결과였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세 주제는 곧 몽골제국이 추동한 ‘세계의 연결’이 지닌 양면적 측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배와 교류가 하나의 제도 속에서 공존하고, 또한 서로 다른 지식과 문화가 공존하되 통합하거나 융합되지는 않는다. 나아가 ‘세계의 연결’이라는 역사상 이면에 자리한 당대인의 현실적 고충도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소개했다.

 

한편 교류와 무역, 이동과 이주 등 경제사와 문화사의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주제들도 눈에 띄었다. 이탈리아 상인의 대몽골 무역(11화), 몽골제국의 비단(12화), 청화백자의 생산과 소비(14화), 안경의 확산 과정에서 회복된 유라시아 연결망(15화)가 대표적이다. 11화와 12화는 내용 측면에서 서로 연결되는 내용처럼 느껴졌다. 11화에서는 이탈리아 상인이 어떻게 몽골제국의 유라시아 연결망에 접근하게 되었는지를 맥락적으로 접근하여 소개했다면, 12화는 동서교류에서 유구한 사치품으로 교역해왔던 ‘비단’이 몽골제국 휘하에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에 집중했다. 그간 유럽과 몽골의 접촉은 소위 바투의 서방원정으로 거론되어 왔다. 따라서 마치 유럽에게 몽골은 침략자로써 두려운 존재로만 다가왔던 것처럼 느껴졌으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으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상인의 활동은 유럽 측에서도 몽골과의 접촉을 의도하고 추동한 존재들이 있었음을 일깨워준다. 나아가 서아시아와 동아시아의 문양과 도식이 시문된 비단이 유럽의 회화-특히 성화들에서 적극적으로 묘사된 점은 ‘유라시아의 연결’ 속에 자리한 다양한 교역 주체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부각하는 요소였다. 청화백자(14화)도 마찬가지였다. 단색이 지배하던 중국의 도자기가 서아시아의 코발트블루로 장식되어, 제국 각지로 수출되는 것은 물론 지역에 따라 그를 모방하고 변형시켰다. 15화에서는 유리의 등장과 이용, 그리고 안경의 확산 과정에서 몽골제국 멸망 이후 회복된 유라시아 연결망에 주목한다. 실제 안경이 몽골제국에서 사용되었다는 언급은 없어 ‘홍철 없는 홍철팀’ 같다는 인상도 있지만, 몽골제국이 형성한 소위 유라시아 연결망이 그 멸망 이후에도 유효한 영향력을 발휘했음을 보여준다. 첨부된 칼럼에서 소개한 아부루고드의 ‘13세기 세계시스템’ 등은 13세기 몽골제국의 역사적 영향력이 세계사에 장기적으로 작용했음을 실감케 한다.

 

한반도·한국사와 긴밀한 연결성을 과시하는 주제들도 간간이 보여 반가웠다. 고려인의 외국어 학습(7화), 소주의 등장과 확산(8화), 매사냥(9화), 경주 설씨의 이동과 한반도 정착(17화)이 그러햇다. 7화에서는 북중국의 한어(漢語)가 몽골제국 중심지의 언어로 부상하면서, 고려인이 다양한 언어 교재를 통해 그를 학습한 내력을 소개한다. 토익과 JLPT 등 여전히 외국어 학습 열풍에 시달리는 오늘날의 풍경과 그리 달리 보이지 않으면서도, 몽골제국의 경계에 자리한 채 복합적인 위치를 보유한 고려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8화에서 다룬 증류주의 확산과 소주의 등장은 소재 자체의 일상성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서아시아와 동아시아의 증류주가 몽골 발효주의 자리를 대체한 내력과, 다시 증류주가 한반도에서 가장 인기있는 주류로 자리잡은 요인이 서로 멀지 않았음을 효과적으로 소개했다. 필자는 술을 즐기지 않으나, 주위 사람들이 하루의 피로를 풀고자 자주 찾는 음료가 유라시아 연결망의 영향 하에서 전래된 것이라는 사실은 꽤 흥미로웠다. 술자리 안주로도 적절한 이야기가 하나 더 생긴 느낌이었다. 9화의 매사냥은 그 자체로 몽골제국의 유목민적 속성을 드러내는 주제이면서도, 매사냥과 ‘응방(鷹坊)’이 고려에 들어오면서 끼친 영향도 조명하는 주제였다. 사냥 자체의 정치성은 물론, 고려 내에서 충렬왕 등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매사냥과 응방을 활용한 사정도 대략적으로 소개되었다. 매의 확보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 또한 비중 있게 다루었다. 17화에서는 경주 설씨의 내력을 다루는데, 필자로서는 상당히 놀라운 이야기였다. 설씨 가문의 시조는 돌궐 제2제국의 재상 톤육쿡이고, 위구르 제국과 고창 위구르 제국에서도 지배층으로 군림했으며, 몽골제국에서도 정치·군사 분야에서 활약을 거듭했다. 남중국에 거주하여 고창 설씨로 정착하고, 과거로 출세한 가문의 일원 중 설손이 고려로 건너가 그 후손들이 고려와 조선에서까지 활동한 내력은 가히 경이로웠다. 한반도 또한 몽골제국이 추동한 유라시아 연결망의 일원이었다는 점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주제들이었다. 아울러 본서가 세계사적 시선을 견지하면서도, 한국적 시야 또한 놓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렇듯, <좌충우돌 몽골제국사>는 유라시아에 존재하던 복수의 (자기완결적)세계가 몽골제국을 통해 급속도로 연결되고 질적으로 변화한 교류를 추동한 역사를 다방면에서 다루고 있다. 통사 형식의 서술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낯설고 복잡다단한 서술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세계제국’으로서 몽골제국을 소개하는데 상당히 유용하고 유의미한 서술을 취했다고 생각한다. 정치, 제도, 무역, 여행, 이주, 음식, 사치품, 학문, 도시, 유통, 여가, 의학, 재난, 무기 등 본서가 취하는 주제는 다양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그 다양성과 공존, 교류와 연결의 역사상 속에서 몽골제국의 새로운 초상이 드러난다. 유목민이 북중국으로 침투해 간 정복왕조도 아니고, 흉노와 돌궐처럼 몽골 초원과 중앙유라시아만을 점거한 유목제국도 아니다. <좌충우돌 몽골제국사>는 제국의 건설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긴 했지만, 몽골제국이 유라시아에 남긴 것이 파괴된 도시의 잔재 이상의 것이었다는 점을 효과적으로 조명했다. 6화에서 19화까지에 이르는 미시적 주제들이 일련의 나열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독자가 ‘유라시아 세계의 연결’이라는 요소를 얼마나 염두에 둘 지에 따라 다른 역사상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본서는 각 주제의 소개와 개략적인 서술에서도 몽골제국을 전후한 역사상까지 아우름으로써, 몽골제국이 추동한 교류와 영향의 질적 변화를 통시적으로 제시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저자가 서술의 공간적 배경으로 유라시아라는 범주를 제시함으로써, 흔히 제시되는 동양과 서양의 구분은 꽤나 손쉽게 허물어진다. 세계사 교육의 한계라고나 할까, 우리는 유럽과 동아시아(및 동남아시아)의 차이에만 주목하고 그 중간과 이외의 지역을 외면하거나 파편화해서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몽골제국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동양과 서양을 초월하는 시공간에서 전개되었다. 아시아 혹은 동양으로 뭉뚱그려지던 지역은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개별적인 ‘세계’로 구분되고, 다시 그 세계는 몽골제국의 정복과 지배 속에서 더욱 긴밀한 연결을 경험했다. 간헐적인 전쟁과 상인 집단의 무역을 통해서만 진행되던 교류가, 몽골제국이 마련한 시스템과 통합의 경험을 매개로 그 밀도가 높아지고 그 방향성 또한 확장되었다. 몽골제국 휘하에서 진행된 교류와 연결의 역사는, 마치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그 자체로 서로를 비추고 있다는 인드라망처럼도 보인다. 앞서 소개했듯이 15화에서 잠깐 언급되었듯, 이러한 경험은 제국의 멸망과 무관하게 이후 유라시아 세계의 교역망 등으로 자리잡았다. 13~14세기 세계사에서 몽골제국의 영향력이란 광대한 영토와 정복을 넘어, 소위 ‘칭기스의 교환’이라 일컬어진 새로운 연결과 교류 그리고 공존의 경험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서가 제시하는 몽골제국의 상(象)은 ‘세계제국’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엄밀하고 학술적인 논의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제시했다고 한다면 과언이겠으나, 복잡다단한 학술적 논의 속에서 몽골제국이 자리한 위상을 모자이크처럼 부조(浮彫)적으로 드러내는데 상당한 기여를 보탰다.

 

3. 적절한 밈(meme)적 연출과 캐릭터화, 그리고 풍부한 ‘역사적 이미지’들의 활용

 

본문에서는 내용적 측면에서 본서가 몽골제국사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집중해서 언급하다보니, ‘만화’로서는 어떤 인상을 주었는가는 거의 언급하지 못했다. 필자로서는 둥글둥글하여 귀여운 그림체에서 시각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고, 간간이 등장하는 밈(meme)을 활용한 연출은 경직된 흐름이나 논의의 복잡성을 완화하는데 효과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밈적 연출이 심하거나 범람하지는 않았다. 다수의 장면은 저자가 가능한 한 간결하게 행위와 사건을 표현하려고 노력한 연출의 결과물이었다. 적절한 밈적 연출과 독창적 연출이 공존하는 만화였다. 한편 한 가지 이미지로 압축하기 어려운 개념이나 도시를 캐릭터화, 혹은 소위 ‘모에화’하는 연출도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13화에 등장하는 대도와 상도 캐릭터는 그 복식을 포함한 캐릭터 디자인이 꽤 매력적이었으며(어디까지나 필자의 취향임을 밝혀둔다), 교양만화 내지는 역사만화를 표방하는 본서의 분위기를 가볍게 하면서도 경박스럽지는 않았던 요소였다. 캐릭터화 및 ‘모에화’는 초판에 한해 첨부된 「좌충우돌 몽골 열전」에서도 나름의 역점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좌충우돌 몽골 열전」은 본편에서 심도 있게 다뤄지지 못했던 인물들을 열전의 형식으로 서술한 책자다. 만화적 상상력이 풍부하게 가미된 이미지는 만화 형식이 아니더라도 간결한 글과 어울려, 각 절에서 다룬 인물의 특징과 내력을 곱씹게 만들었다.

 

한편으로 저자의 만화에서 상당한 매력을 느꼈던 점은, 곳곳에서 풍부한 ‘역사적 이미지’들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미지 속 고증(考證)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든 과거의 이미지를 그 시대의 현실과 동일하게 재현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며, 그것이 완전한 효과를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필자는 고증이라는 표현 대신 ‘역사적 이미지의 활용’이라 이야기하고자 한다. 각 칸에 등장하는 인물의 복식은 물론, 건물 등의 구조물과 지도의 형상, 간간이 보이는 고졸한 형식의 장식들까지. 저자는 14세기 유라시아의 회화, 공예품, 건축물, 도서, 지도, 유물, 유적에 남았던 이미지들을 최대한 만화 속에 녹아내고자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노력이 충분한 연출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사모와 관대를 찬 한인 관료가 보이고, 어떤 장면에서는 와릉모를 쓰고 철릭을 갖춰 입고는 궁시를 쥔 몽골인이 보이며, 또 어떤 칸에는 페르시아 세밀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터번을 쓴 이슬람인이, 어떤 장면은 당시 유럽의 회화와 지도에서 유행한 모티프나 알레고리가 등장한다.

 

이러한 저자의 시각적 연출은 시의적절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자아냈다. 앞서 논했던 몽골제국의 매력도 이미지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연출해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각 칸 속에 자리한 이미지가 충분한 당시성과 동시에 명쾌한 전달력을 발휘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 13~14세기 유라시아 세계를 살아간 사람들이 마주했을 이미지를 적당한 데포르메를 섞어 작가만의 묘사로 승화했다. 내용상으로도 상당히 다양한 유라시아 세계의 인물과 구조물, 사물이 등장한다. 13~14세기 유라시아를 제외하더라도, 부가적으로 묘사되는 13~14세기를 전후한 각 이미지의 변화 또한 매우 풍부하게 묘사했다. 이렇듯 섬세하고도 과하지 않게 역사적 이미지를 활용한 점은 만화, 특히 역사만화 및 교양만화로써 가지는 최대의 매력이다. 칸 속에서 저자의 유머 감각과 그를 위해 동원된 현대적 이미지가, 섬세한 역사적 이미지들 속에서 가감없이 녹아들면서 독특한 시너지를 자아낸다.

 

4. 차기작을 기다리며...

 

몽골제국은 필자에게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영역이었다. 언제나 고려 후기의 여몽전쟁 및 원간섭기의 한 축이자 사나운 외세의 이미지로 기억했던 것 같다. <좌충우돌 몽골제국사>는 그간 단장취의 식으로 어정쩡하게 인식해왔던 흐릿한 몽골제국의 이미지를 보다 선명하게, 그리고 색다르게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나아가 13~14세기의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역사적 시공간과 그 속의 인간군상을 매력적으로 조명했다. 물론 그것이 독자적 이론이나 종합적 서술로까지 제시되지 않지만, 그것은 학술서에서 찾을 요소라고 생각한다. 복잡다단한 학술적 논의를 충분한 만화적 연출과 풍부한 역사적 이미지의 활용을 통해 소개하고, 독자가 그 다음으로의 탐구나 관심으로 이어가는 것을 돕는 본서의 목적은 훌륭하게 달성되었다.

 

한편 몽골제국이라는 구체적인 주제를 제외하고, 저자는 넓은 시공간을 염두에 두고 역사적 사건과 흐름을 살펴보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저자가 끝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는 것은 바로 ‘세계’다. 단순히 지구 위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의 이합집산이 아니라, 전근대의 여러 지역에서 형성된 자기완결적 세계들과 그들이 어떤 계기와 요인을 통해 ‘연결’되어 형성한 더 큰 범주의 세계다. 나아가 여러 세계들을 이어서 더 큰 범주의 세계를 이루는 ‘연결’이 겪은 ‘장기적인’ 질적 변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필자로서는 이러한 저자의 문제의식이 다른 시대와 지역을 대상으로도 발휘되었으면 한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을 넘어, 내공이 느껴지는 시선과 문제의식, 각고의 노력이 느껴지는 깔끔한 서술과 시각적 연출에 푹 빠져들었던 독서를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을 가능하게 해 준 저자와 출판사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싶다. 다른 시대, 다른 지역, 다른 세계, 다른 주제로도 저자의 시선과 연출을 접하고 싶다. 삼가 차기작을 기다린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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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숨겨진 세계사 - 세계를 바꾼 사소하지만 중요한 188가지 사건 ㅣ 하룻밤 시리즈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오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서평은 역개루 카페 서평 이벤트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책의 서평 이벤트에 신청한 시점은 중간고사가 휘몰아치고 가버린 아수라장을 정리하는 도중이었다. 나는 대학에 들어와 처음 치른 중간고사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젖었고, 힐링을 위한 가벼운 독서를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룻밤에 읽는 숨겨진 세계사> 서평 이벤트를 보았고, 덜컥 신청했다.


<하룻밤에 읽는 숨겨진 세계사>라는 제목에서 보듯, 이 책은 평소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사 이면의 자잘한 사실들을 모은 책이다. 188가지 사건들을 담은 만큼 책의 분량은 조금 많은 편이지만 각 장의 내용은 매우 평탄한 서술로 구성되어있다. 이 점에 있어서 '하룻밤에 읽는' 시리즈의 강점이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책 자체의 분량은 꽤 있는 편이지만 서술의 방식이 매우 평탄하며, 특정한 논증 혹은 문제 제기 등이 없다. 이로 인해 독자는 저자의 논리, 문제 인식 등을 생각하며 골머리를 앓을 필요없이, 아침에 일어나 그날의 조간 신문을 보는 기분으로 독서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은 장점인 동시에 이 책의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하다. 간략하고 평이한 서술을 통해 전달되는 책의 정보는 그 정확성에 있어서 의심되는 바가 적지 않다. 특히 이 책은 각주 및 참고 문헌이 일절 생략되어 있어, 저자가 책 속에서 서술한 다양한 정보들의 사실 관계가 얼마나 믿을만한 것인지 확인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저자가 트로이 전쟁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한 내용을 읽을 때, 한때 지중해의 후기 청동기 시대를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약간의 짜증이 올라오곤 했다. 저자는 트로이 전쟁을 다룬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약술하여 열거하다가 슐리만의 히사를리크 발굴로 신화가 역사가 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끝마친다. 그러나 실상 슐리만의 발굴 이후 히사를리크 유적을 두고 고고학계에서는 훨씬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고, 현재는 트로이 전쟁의 존재는 잠정적으로 인정하나 그것이 '저자의 약술처럼 신화 속의 양상과는 같'지는 않다는 지점에 도달했다. 특히 기존 그리스 신화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와의 연관성이 오늘날 트로이 전쟁에 대한 담론의 주요 키워드인데, 이러한 언급이 일체 등장하지 않아 제목의 '숨겨진'이라는 수사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저자의 평탄한 서술 방식은 제목 그대로 하룻밤만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흡입력있지만, 내용적 측면에서 불완전하다는 것이 큰 단점이다. <하룻밤에 읽는 숨겨진 세계사>는 상식, 교양으로서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을 제공할 수 있는 소규모의 백과사전으로서는 매력적인 책이다. 하지만 그 단편적인 정보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독자 스스로가 조금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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