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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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이 민주주의의 주인이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민중이 쟁취해냈고 지켜왔다. 그런 민주주의가 지금 그 어느때보다도 위험에 직면해 있다. 지나고 보면 마치 길가에 패인 구덩이를 지나가듯 잠깐의 덜컹거림일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한건 더 성숙한 민주주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현재 노출된 이 위험을 반드시 진단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이러한 사태에 대해 큰 통찰을 주는 책이라 하겠다. 이 책에 "저절로 돌아가는 기계"라는 말이 나온다. 마음 깊이 와닿는 문구였다.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만들어 놓기만하면 알아서 잘 돌아가겠지 하는 나태하고 무관심한 태도가 있었던 것이다. 매일 청소하고 씻듯 가꿔야하고, 어린아이 돌보듯 관심과 근심걱정의 마음을 갖고 매섭게 지켜봐야하는 것이다.
나의 부족한 수준으로 이 책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의 내용과 사례를 통찰로 삼아 현상황에 대한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
오늘날 왜 전세계적으로 이런 위험에 처하게 됐는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고민해야한다.
나는 우선 극단적 소수를 네부류로 나눠보았다.
첫째는, 자신의 이득과 자신이 속한 그룹의 이득을 위하여 다수를 선동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트럼프 히틀러가 대표적이다.
둘째로, 원래 그런 사람이다. 평소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가 분위기에 맞춰 동참하고 선동에 참여자는 사람들이다.
셋째로, 자신의 불이익과 불만에 따라 추종하고 선동당하는 사람들이며
넷째로, 이 책에서도 말했듯이 점잖은 민주주의자인척 하다 이익을 따라 편승하고 협착하는 사람들이다.
인간 세상에서 항상 이런 사람들이 문제다.
멀리 볼것도 없다. 지금 이땅에서 벌어지고있는 상황만보더라도 알 수 있다. 자기들 부정을 덮고 기득권을 유지하려 계엄을 통한 내란을 획책하고, 건국이래 처음 적용하는 규정을 통해 내란 수괴를 풀어주고, 대법원은 유례가 드물게 재빠르게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대선 유력주자를 낙마시키고자 대놓고 정치행위를 하고 있다. 또하나의 사법쿠데타이다. 이 사태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기득권을 유지해온 소수의 사람들이 벌인 내란행위인 것이다. 그 소수의 사람들이란 바로 구한말부터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 후 독재에 아첨하며 기득권을 챙겨왔던 자들이다. 나는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이 책에 기술한 태국의 사례가 떠올랐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러한 개악스러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상황들은 소위 자신들이 주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재명이라는 비주류가 대통령이 되는것을 눈뜨고 못보겠다는 것이다. 당장 불법만 아니면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저지하고 싶다는 것이다. 다시는 제2의 노무현을 두고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이룩해온 민중이 주인인 민주주의가 우리땅에서 흔들리고 있는 모습을 우리들은 보고 있는 것이다.
제도와 법은 공적인 것이다. 그러나 여지없이 사적으로 악용되고 있다. 민중을 바보로 알고 있다. 그러나 민중은 말하지 않을뿐 다 안다. 누구도 민중을 속일수는 없다.
근대는 서양이 주도해 왔다. 산업과 자본이라는 경제 제도, 삼권분립 법 대통령제 내각제라는 정치 제도, 자유 평등 민주주의 공산주의라는 사상, 미술 음악 영화등의 대중문화, 빼놓을 수 없는 과학. 우리나라와 비서양권은 지난 20세기 죽어라 서양을 따라왔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부분에서 그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 산업과 자본은 아주 소수가 부를 독차지하는 약탈적 자본주의가 되었고, 정치 제도와 법도 소수가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다. 서양의 사상도 문화도 과학도 이제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하는 시점이 된것이다. 상위 1%미만의 소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전세계에 망라해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위험해질 수 밖에 없고, 극단적 소수가 득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활개치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완전함이라는 그 자체는 없다. 완전한 제도는 없다. 서양은 근본적으로 철학이 빈약하다. 실증주의라는게 니체때나 되어서야 시작한다. 그래서 그런지 제도와 법에 너무 의존해 왔다. 그 제도와 법이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제도와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는 좀벌레같은 사람들을 우리는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거의 죄다 힘있고 돈있고 배웠다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우리 세상의 가장 큰 문제는 좀 안다는 사람들이 악용을 한다는 것이다.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법을 악용하고, 경제를 안다는 사람들이 악용해서 더 많은 돈을 번다. 제도와 법을 악용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소수의 미꾸라지들이 전체를 망가뜨린다. 제도와 법은 근본이 아니다. 지금 미국의 헌법과 대법원에 문제가 많다느니 그리고 제도가 문제라느니등의 이런저런 얘기를 주구장창 해봤자 별 소용이 없다. 분명히 맞는 말이지만 근본적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완전한 제도는 없기에 그렇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도덕윤리가 근본적인 해답이다. 고리타분한 유교사회로 돌아가자는것이 아니다. 그냥 일상에서의 상식적인 도덕윤리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도덕윤리가 완전한것도 아니다. 그러나 제도니 법이니 인간사회 모든 것들이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사람 그 자체의 도덕윤리로 귀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 그 자체를 논하고 그 위에 제도를 논해야지 근본바탕을 건너뛰고 제도니 법이니 아무리 논해봤자 잠시의 방편일 뿐이다.
제도 법 이전에 윤리적 상식이 바탕이 돼야한다.
약탈적 자본주의에서 공생의 자본주의로 바뀌어야 한다. 민중이 주인인 민주주의는 지켜야한다. 더 건강한 민주주의로 업그레이드 시켜야한다. 이것이 우리의 당면과제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법과 형벌로 사람들을 다스리면 사람들은 빠져나가려고만 하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덕과 윤리로써 사람들을 다스리면 부끄러움을 느끼고 결국 선하게된다"라고. 도덕윤리는 부끄러움을 느끼게하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 제도와 법 이전에 근본적으로 사람 그 자체를 논해야하고 결국 사람을 논한다는건 도덕윤리를 근본으로 삼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서구의 개인주의에서 다시 우리의 공동체주의와 상생과 공생공존의 정신과 그것들이 일상이 되는 상식이 해답이 될 수밖에 없다. 저명한 생물학자인 린 마굴리스등은 공생자 행성이라는 말을 했다. 연구를 해보니 지구 생태계가 다들 서로 공생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과학에서도 생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 공생은 우리나라와 동양의 전통이다. 이 시점에서 더이상 서양만을 추종할것이 아니라 우리를 되돌아볼 때이다. 바로 이것이다.
공동체는 사람이 다함께 사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자연스레 윤리가 생겨나고 상식이되고 일상이 된다. 그 환경 분위기에서 혼자만 삐닥하게 부정을 저지른다는것이 그만큼 힘들어진다. 그 예로 우리는 사회생활에서 혼자 돌출맞게 행동하는것이 생각보다 힘들다는것을 경험에서 안다. 윤리가 통하고 상식이 통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기초가 튼튼해야 큰 건물을 세울 수 있다.
민중이 민주주의의 주인이다.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소수가 있다. 자신들이 세상을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수. 그 소수는 국민주권 민주주의를 탐탁해하지 않는다. 기회만 되면 다수를 지배하려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
늘 그래왔다. 인류의 역사 이래로 수천년동안 소수의 왕 귀족같은 주류층이 사회를 지배해왔다. 어쩌면 다수의 민중이 주인인 민주주의라는 체제가 이상하고 어색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민주주의라는것은 인류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사건인 것이다. 그러기에 민주주의를 지켜내야하는 것이다. 다시 소수가 주인노릇하는 세상으로 되돌아가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현대 민주주의는 어린아이처럼 출생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처럼 연약하다. 성숙한 어른이 될때까지 정성으로 보살펴야하고 우리 후손에게 고이 안겨줘야한다. 그럴 책무가 있는 것이다.
분명한것은 앞으로도 계속 민중이 주류인 민주주의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중은 사람이다. 사람은 분위기에 휩쓸시기에 공동체 공생의 도덕적 상식이 통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유지해가야 한다. 완벽은 없고 쉼없이 추구해야한다.
다함께 사는 세상,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책을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란다. 현 상황에 있어서 이만한 책이 없을거 같기에 그렇다. 다른서점에서 쓰는 문구이지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마음 깊이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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