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즘의 고통> 4장 나르키소스와 타자들

즉 나는 이제 세사의 중심을 나에게 두는 것으로 하나 됨을 체험한다. 성공은 나를 중심에 놓는다. 이것을 나는 아주 개인적인 내 우주의 완결로, ‘완성‘으로 체험한다. 184p

성공은 곧 관심이다. 경쟁사회에서 성공의 의미는 타인의 관심을 받는 것, 세상의 주목을 받는 것으로 변화했다. 혹은 성공의 목적이 그것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습득한 기술, 행운, 남모르게 얻은 통찰 같은 것보다는 더 값어치가 적더라도 타인의 관심을 얻게 해주는 것이 더 큰 성공을 준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르시시즘의 사회에서 성공과 관심이 크게 결부된 사회현상을 설명하려고 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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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의 고통> 116p

자기 동력의 무조건적 ‘자기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자신의 경영자 개념이 숨기여 하는 것에서 나온다. 이것은 대상 됨에서 나온다. 스피노자가 구상한 것처럼 자기가 대상이라는 느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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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의 고통>

“개입하는 정치는 경쟁을 방해할지 모를 매커니즘만 제거해야 한다. 푸코의 말처럼 경쟁으로부터 보호하는 게 아니라 경쟁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러한 자본주의에 맞섬으로써 그것을 촉진하고, 이러한 자본주의를 제한함으로써 그것을 강화하는 두 번째 조직 원리, 제 2의 논리가 있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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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아이는 거울에서 인간의 형상을 한 자신의 이미지를 통해서 자신이 느끼고 있는, 단절되고 통제되지 않는 신체들의 부조화를 느끼는 감정을 버리고, 완성된 하나의 인간이라는 이미지를 얻는다. 이미지는 통합적이고, 통일적인 것으로 피사체를 통일하고, 하나의 관점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나르시시즘이 발생한다. 여러 모순되고, 결함이 가능한 복잡하고 구체적인 신체적 생리작용을 부정하고 오로지 시각이라는 감각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로 모든 신체 작용을 환원한다.

인간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정당화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미지와 감각. 그 중에 이미지가 더 유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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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 자아이상, 사회적 요구.
인간은 왜 사회적 질서가 실제로 자신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경우에도 그것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인간의 나르시시즘은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된 자기애가 아니라, 외부세계와 주관적 자아가 통일된 그래서 개인이 전지전능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아기를 벗어나면서 쉽게 파괴된다. 때문에 외부세계와 주관적 자아를 통합하고자 하는 근본적 욕망이 존재하고, 이는 유아기에서 사회적 존재인 성인을 거치면서 개인과 사회적 관계의 통일로 더 구체화 된다. 개인이 사회적 관계들(국가, 제도, 공동체)와 통일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어떠한 이상적 관념 속에서만 가능하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그 사회를 긍정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진실로 좋은 것이기 때문에 아니라 그 사회와 자신을 통일시켜주는 이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기능은 유아기에 상실한 외부세계와 주관자아의 통일을 회복하기 위해서 개인과 외부 세계를 통일시키는 것으로, 이는 외부 세계의 폭력에 의한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가 세계를 해석하고 믿고 열광하는 개인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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