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평점 :
유시민의 또 다른 책을 집어 들었다. <표현의 기술>보다는 나은 책이었다. 절반쯤은 읽었다. 하지만 후회 속에 덮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이 책을 읽는 시간만큼 내 인생을 낭비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분량 속에서 주장들은 서로 충돌하며, 자신이 주장하는 글쓰기의 규범을 스스로도 지키지 못 한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쓸 때(아니 발췌/편집할 때)의 영민함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책 속에서 유시민은 세 가지 글쓰기 규범을 제시한다.
P19 첫째, 취향 고백과 주장을 구별한다. 둘째, 주장은 반드시 논증한다. 셋째,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한다. 이 세 가지 규칙을 잘 따르기만 해도 어느 정도 수준 높은 글을 쓸 수 있다.
책 속에서 그는 타인의 글을 소환한다. 한신대 김성규 교수 칼럼이라든가 남경필 의원의 논평 등을 도마 위에 올려 둔다. 자신이 생각하는 글쓰기 규범론을 전개한 뒤 반항할 수 없는 생선을 능숙한 솜씨로 회를 친다. 그들의 글이 유시민과 정치적 반대자의 글이라는 것은 차치한다고 하여도 유시민의 글은 능숙하되 논리가 엉성하다.
p29 김 교수는 정부 여당의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개악’으로 규정했다. ‘개혁’이 ‘고친다’는 뜻을 가진 중립적 단어라면, 개선은 고쳐서 더 좋게 만드는 것이고 개악은 고쳐서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 (중략) ‘개악’은 사실을 기술하는 말이 아니다. 주관적 가치판단 또는 규범적 평가를 담은 주장이다. 따라서 그렇게 주장하려면 논증해야 한다.
유시민은 ‘개혁’은 ‘개악’과 달리 가치중립적 용어라고 말한다. 논증의 필요가 적다는 뜻이다. 그럴까? 국어사전에서 ‘개혁’의 용례 살펴보면 익숙한 표현들을 만날 수 있다. ‘갑오개혁’, ‘종교개혁’, ‘사법제도개혁’, ‘과감한 정책으로 경제 개혁이 이루어졌다’, ‘유통구조의 개혁’, ‘국민들은 새 정부가 과감한 개혁을 단행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표현이 가치중립적인가? ‘개혁’은 실생활에서 ‘현 상황의 문제점을 고치고 개선함’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렇기에 정치권에서도 신진 세력들이 자신들을 ‘개혁 세력’으로 부르고는 한다. 유시민은 상대의 글을 논박하기 위해서 ‘개악’만 가치 편향적이라고 주장한다.
유시민 스스로도 ‘개혁’이 ‘개선’과 비슷한 의미로 쓴다는 것을 알고 있다.
p29 더욱이 그 시점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 여당뿐만 아니라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공무원연금법 개정을 ‘개악’이 아닌 ‘개선’ 또는 ‘개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논증이 중요하다면서 여론조사 결과를 끌고 오는 것도 우습고(어디에서 언제 실시한 여론조사인지도 밝히지 않음), 국민의 압도적 다수(논증을 하자면서 추상적인 어휘로 대체함)가 찬성한다는 것을 근거로 끌어들이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은데, 그들의 평가는 ‘개선’ 또는 ‘개혁’이라고 적고 있다. 유시민씨에게 첨삭을 해주자면 ‘개정(改定)’이 ‘개혁’보다 가치중립적인 용어이다.
[유시민의 추천도서]
유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p123 소위 추천도서 목록이란 것을 따라가면서 무작정 책을 가져다 먹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도움이 되기보다는 부작용을 낼 가능성이 더 크다. 초등학생은 물론이요, 중학생도 추천도서 목록은 필요 없다고 본다.
근거는? 유시민 본인의 경험.
하지만 10페이지쯤 뒤에 그는 엉뚱한 소리를 한다.
p 136 어린이는 흥미를 느끼는 책을 마음 가는 대로 읽으면 된다. 특별한 도서 목록이 필요 없다. 하지만 뇌가 거의 다 성장해 지적 능력이 성인 수준으로 올라선 고등학생부터는 적절한 도서 목록이 있어야 한다.
그는 고등학생부터는 추천도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근거로 자신이 뇌과학에 기반을 둔 주장을 하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우선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뇌과학을 언급하는 것도 어색하지만, 근거 자료에 대한 인용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혹시 책 뒷면에 나오나 해서 살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 주장을 납득하기 위해서는 유시민이라는 인간에 대한 개인적인 신뢰가 존재해야 한다. 데이터가 아닌 인간을 통한 논증이라니, 신박하다. 이런 식의 ‘나만 믿어라’식 논증은 책 곳곳에 눈에 띄는 데 다음 부분도 마찬가지다.
p118 자녀가 뛰어난 언어 능력을 가지기를 바란다면 뇌가 형성되는 시기에 적절한 언어적 자극을 넉넉하게 제공해야 한다. (중략) 아이가 언어 능력을 온전하게 발전시키도록 하려면 부모가 우리말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중략) 잘 알지도 못하면서 뇌와 언어에 대해서 아는 척했다. 그렇지만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읽었던 육아책과 뇌과학책에서 ‘발췌 요약’한 것이다. (중략) 적어도 말과 글에 관한 한, 우리의 양육 방식은 제법 큰 성공을 거두었다. 타고난 것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양육 방식도 효과가 있었다고 믿는다.
유시민의 주장 : “자녀가 뛰어난 언어 능력을 가지기를 바란다면 뇌가 형성되는 시기에 적절한 언어적 자극을 넉넉하게 제공해야 한다”
유시민의 근거 : “말과 글에 관한 한, 우리의 양육 방식은 제법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것을 초등학교 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배운다. 언어 습득에서 타고난 것(nature)과 양육 방식(nurture)의 기여도를 정확히 측정하지 못 하고 있음에도 유시민은 이를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사용한다. 이 책이 일반적인 에세이라면 이렇게 써도 된다. 하지만 이 글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고, 요지는 ‘주장은 반드시 논증한다.’이다. 자신도 못 지키는 글쓰기 규범. 나는 바담풍해도, 독자는 바람풍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p132 독해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텍스트는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문제점과 한계까지 탐색하면서 읽어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그 문제점과 한계가 어디서 왔는지도 추론해볼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책을 읽을 때 저자가 어떤 사람이며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보는 게 도움이 된다.
이 글에서는 유시민의 말대로 비판적인 책읽기를 해 보았다. 전업 작가로서 생계의 중요함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책을 쓰는 것은 쌓아온 명예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앞으로 유시민 책을 읽지 않겠다는 내 결심만 확고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아직 이 책을 안 읽은 독자가 있다면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한 구절을 전해드리고 싶다.
p 142 논증의 기술을 가르치는 책은 글을 어느 정도 잘 쓰게 된 후에 가볍게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그러나 독서량이 적은 사람은 논증의 기술을 배워봐야 힘만 들 뿐 효과는 없다. 기초 체력이 허약한 사람이 축구 드리블 기술을 배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