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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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학에 읽고자 책 몇 권을 담았다. 강원국, 유시민 씨의 책도 골랐다. 강원국 씨의 <대통령의 글쓰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유시민 씨의 <표현의 기술>도 기대감을 갖고 펼쳤다. 첫 두 챕터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읽었다. 뒷부분 한 챕터를 더 읽은 뒤 책을 덮었다. ' 이 책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어지간하면 한 번 연 책은 끝까지 읽는다. 그런 내가 책을 중간에서 덮었다. 표현의 기술을 기대했는데 그저 유시민 자신에 대한 변명과 합리화가 가득했다. 정훈이 만화가가 맡은 11번 째 챕터를 제외하면 10개의 챕터다. 그 중 3개의 챕터를 읽고 내린 결론이다. 그리 성급하진 않을 것이다.

[제 1장 – 왜 쓰는가]

저자는 글을 쓰는 이유를 네 가지로 든다. 당대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미학적 열정, 역사에 기록되고 싶은 욕망, 정치적 목적이다. 그러면서 소설가 ‘김훈’을 대차게 깐다.

"여론 형성을 위한 글쓰기와 자기표현을 위한 글쓰기는 사실 동전의 앞뒤처럼 들러붙어 있어요. 그걸 구태여 왜 분리하려고 하는지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김훈 씨가 ‘여론 형성을 위한 글쓰기’를 해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오해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특유의 비아냥거림도 물론 빠지지 않는다. 김훈이 뭐라고 말했기에 이렇게 아니꼬와하는 걸까?

“나는 여론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글쓰기를 하지 않습니다. 단지 나를 표현하려고 글을 씁니다.”

이 두 문장에 유시민은 심사가 뒤틀린다. 자기는 여론 형성을 목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인데 자신의 글은 예술성도 갖추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지 오웰과 자신을 동일 선상에 놓으며 장황하게 말을 풀어간다. 조지 오웰에 비하면 자신은 필부라는 의례적 겸양을 보이지만 내용을 보면 정말 의례적 수사일 뿐이다.

유시민은 김훈의 말을 정말 이해하지 못 한 걸까? 김훈의 말은 거대담론, 정치적 목적의 글쓰기가 본인 글의 목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저 나라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쓴다는 말이다. 김훈은 사람들이 본인의 글을 읽고 바뀌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그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니까. 유시민처럼 사람이 자신의 글을 읽고 행동과 생각이 바뀌기를 기대하고 쓰는 글이 아니다. 유시민도 모를 리 없다. 다만 자신의 글을 스스로 추어올리고 싶을 뿐인 거다. 그래서 김훈을 끌어들여 허수아비 하나를 세운다. 김훈이 하지 않은 주장을 김훈이 한 양 허수아비 때리기를 한다. 코미디다.

[제 2장 – 제가 진보냐고요?]

정치인으로 살면서 그는 진중권에게 어지간히 열 받았었나 보다. 제 2장은 진중권을 욕하기 위해 쓴 챕터다. 그가 익힌 표현의 기술로 말이다.

"말과 글은 사람의 세계관과 철학을 드러냅니다. ‘사회자유주의자’는 저의 세계관과 인생철학을 나타내고, ‘네모난 동그라미’라는 비판은 그 말을 했을 때 진중권 교수의 세계관과 철학을 보여 줍니다."

무슨 의미일까? 진중권 씨가 자신을 공격한 논리는 맞는 게 아니라 진중권 씨 생각일 뿐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주장해도 된다. 근거가 명확하다면. 하지만 유시민 씨는 주장만 적을 뿐이다. ‘니 생각은 니 생각이지 정답은 아니야’라는 주장은 한다. 하지만 왜 ‘진보’와 ‘자유주의’가 함께 쓸 수 있는 말인지, ‘사회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함께 쓸 수 있는 지는 적지 않는다. 자신도 그것이 내심 찝찝한지 이렇게 덧붙인다.

"저는 그런 ‘이즘’의 주인이지 노예나 도구는 아닙니다."

상황별로 필요할 때 흑묘백묘를 취하는 자신이 진정한 실용주의자라는 이야기다. 진중권은 이념의 노예라는 말이다. 이런 식이면 ‘우파 자유시장경제 사회주의 좌파’라는 말도 성립할 수 있을 거다. 진중권은 각 용어의 개념을 엄정하게 사용하기를 요구했다. 유시민은 이를 반박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합리화뿐이다.

[제 8장 – 뭐가 표절이라는 거야?]

2장까지만 읽고 책을 덮을까 했다. 하지만 신영준 씨 이슈로 관심이 많은 표절 챕터가 있었다. 이번 장을 읽어보기로 했다.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로 글을 시작한다. 표절에 관한 일반론인가하는 기대가 생긴다. 몇 장을 읽고 기대를 접었다.

"우리가 아는 지식은 거의 다 어디선가 배운 것이지요."

어라?

"표절을 도둑질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엄정하게 말하면 도둑질은 아니에요. 도둑맞은 사람은 없습니다."

어라????

"어떤 눈 밝고 부지런한 분들이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참고도서와 본문을 일일이 비교해 가면서 ”이 책은 인용 표시를 하지 않고 다른 책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더군요.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았어도 될 일이었습니다. 맞아요. 그 책은 99퍼센트 이상 발췌 요약이고 인용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아하!!!!!

유시민은 이 말이 하고 싶어 그 긴 글을 쓴 거다. 자신의 책은 윤리적 비난의 대상도 아니고 표절 도서도 아니라는 거다. 에이.. 유시민씨. 그건 아니지요. 본인도 이 주장이 근거가 빈약함을 안다. 그래서 구구절절 사족을 붙인다. 원래 쓰려고 한 게 아니라 우연히 나온 책이라는 둥, 반정부 유인물 제작비가 부족해서 쓴 글이라는 둥, 김진경씨가 책을 내자고 권했다는 둥 상황 논리를 우선 펼친다.

"표절이니 뭐니 그런 것은 아예 의식도 못 했어요. 말 그대로 99퍼센트 발췌 요약 인용이었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엄중한 당대 상황에서 표절 등은 신경 쓸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었고, 우연히 책이 많이 팔린 것일 뿐 상업적 목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말잔치는 계속된다.

"세월이 많이 흐르기도 했고, 원래부터 깊이가 있거나 독창적인 책도 아니었고, 이미 팔릴 만큼 팔렸고, 좋은 세계사 책이 많이 나와 있고, 문장도 좋지 않고, 또 자꾸 표절을 했다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도 듣기 싫고, 그래서 출판사와 합의를 해서 절판했습니다."


우스운 말이다. 책 절판은 표절 논란이 있은 후다. 그 전까지는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깊이와 독창성이 없었어도’, ‘좋은 세계사 책이 많이 있어도’, ‘문장이 좋지 않아도’ 열심히 광고하며 팔았다. 소위 빼박 표절이기에 절판한 거다. 아니. 절판할 수밖에 없었다. 표절로 밝혀진 책을 어떻게 계속 팔 수 있을까? 쪽은 쪽대로 팔았는데 자존심은 지키고 싶은 거다. 이런 구질구질한 변명을 하는 이유다.

<거꾸로읽는 세계사 - 원 출처 문제에 관하여>
http://m.egloos.zum.com/gerecter/v/3723540

"그렇지만 제 책이 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진 말아 주십시오. 각주가 제법 많은 책도 있답니다."


머리 좋은 유시민은 자신의 주장이 말이 안 됨을 안다. 다른 저서는 표절하지 않았다며 여러 책을 들이민다. 글쎄? 난 유시민의 거의 모든 책을 읽었다. 하지만 어떤 책도 인상적이지 않았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부자의 경제학, 빈자의 경제학> 이 두 권만 빼면. 중국 공산당이 대장정에 나서 장개석을 대만으로 몰아내는 장면은 다시 봐도 인상적이다.

여기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더 읽을 필요가 없었다. 아직 책장에 유시민 책이 한 권 더 있다. 펼쳐야할지 고민이 된다. 앞으로 유시민 책을 고르는 일은 내 인생에 없을 것 같다.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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