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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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목재상을 운영하는 빌 펄롱은 어린 미혼모들이 모여있는 수녀원으로 배달을 갔다가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소문만 무성했던 수녀원의 진실을 어느 정도 눈치채지만 그는 그대로 그곳을 나와버린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현재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모른척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펄롱의 마음속을 짓누르는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른은 뭘까'는 성인이 된 이후로 끊임없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질문이다. 세상은 나를 어른으로 대하는데 스스로는 전혀 어른처럼 느껴지지 않아서인지 전혀 어른답지 않은 이들을 여럿 봐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끝을 마주하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펄롱은 어른이구나'였다.


 크리스마스에 자신이 받은 선물을 더 어려운 이에게 나누지 못한 것을 자책하던 펄롱은 수녀원에서 만난 소녀를 구하기 위해 남들의 시선에 당당히 맞서 옳은 일을 행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녀를 만나고 그가 느끼는 불쾌함의 정체를 다들 알지만 애써 모른척하며 살아간다. 모두가 외면하는 문제를 그 역시 외면했다면 일상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마음은 불편하더라도 그가 단조롭다 생각하는 그런 나날들을 평화롭게 이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펄롱은 자신의 마음속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던 그 일을, 자기보다 더 약한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실천에 옮긴다.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자책이나 후회에서 끝나지 않고 옳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한 발 더 나아가 실천하고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그가 진정한 어른처럼 보인다.


 평온한 일상이 깨지고 모두가 만류하는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일을 행하는 펄롱의 용기는 아마 그와 그의 어머니를 돌봐준 미시즈 윌슨에게서 받은 영향이 아닐까. 어른이 내민 손길이 아이를 어른으로 자라게 하고 또 다른 손길로 이어진다. 선의가 더 큰 선의로. 용기가 더 큰 용기로 돌아오는 따뜻함을 지닌 소설이다.


 소설이 남긴 진한 여운을 느끼며 펄롱과 미시즈 윌슨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더 나은 사람이, 다정함과 용기를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소설이 지닌 메시지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 P. 44 ㅣ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P. 120 l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이미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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