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테이아 - 매들린 밀러 짧은 소설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새의노래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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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피그말리온은 현실의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해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을 직접 조각하고 사랑에 빠진다.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소원을 빌어 조각상이 사람이 되자 조각상과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아 키운다. 


 과연 피그말리온과 조각상은 행복했을까? 매들린 밀러는 피그말리온이 아닌 조각상에서 사람이 된 갈라테이아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전개한다.


 남편은 자신이 만들어낸 조각상으로만 갈라테이아를 대한다. 똑같이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하며 행동에 자유가 있는 사람으로 그를 대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행동하길 원하며 그에 반할 경우에는 폭언과 폭설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의문이 든다. 남편은 정말 갈라테이아를 사랑한 게 맞을까? 갈라테이아에게 느끼는 남편의 감정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소유욕에 가까워 보인다. 아마 조각상 갈라테이아를 잊지 못하는 그에게 사랑은 삐뚤어지고 변질된 집착으로만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갈라테이아는 남편을 사랑했을까? 병원에 갇힌 갈라테이아는 남편과 의사, 간호사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답하며 그들에게 순응하는 척하지만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자유를 찾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행동으로 옮긴다. 남편이 원하는 메뉴얼대로 행동하는 갈라테이아에게서 남편에 대한 사랑을 찾아보긴 힘들다. 다만,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 중 하나는 자식에 대한 모성애이다. 자식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 모습을 통해 그가 더 이상 조각상이 아닌 감정을 느끼는 인간임을 볼 수 있다. 어쩌면 갈라테이아는 남편에 대한 감정이 식거나 변한 것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 아닐까. 알을 깨고 나와 처음으로 본 이를 부모로 인식하는 것처럼 사람이 된 후 처음으로 만나 모든 것을 알려준 이가 자신에게 사랑을 말하니 본인도 그 사랑에 응답하는 게 당연하다 여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피그말리온의 재능이 기적이 아닌 비극처럼 느껴진다. 


 갈라테이아를 조각한 인물이 피그말리온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피그말리온이라는 이름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갈라테이아의 남편으로만 존재한다. 그 이름을 지워내자 갈라테이아가 누군가가 만들어낸 조각상이 아닌 자아를 가진 한 명의 인간이라는 사실이 더욱 부각된다. 낭만적으로 보였던 사랑 이야기를 한 꺼풀 벗겨내자 폭력과 비극이 등장했다. 피그말리온은 조각을 했고 아프로디테는 생명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건 갈라테이아였는데 어째서 그녀의 이야기는 진작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남성 중심 전개 속에 가려져 있던 인물을 재조명하고 서사를 부여해 신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매들린 밀러의 능력이 단연 돋보인 작품으로 짧은 분량임에도 강렬한 매력과 흡입력이 있다. 매들린 밀러가 새롭게 해석하여 창조해낼 현대적 신화를 계속해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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