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처음 만나는 유럽풍 손뜨개 인형
부티크사 지음, 배혜영 옮김 / 진선아트북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처음 만나는 유럽풍 손뜨개 인형.
제목이 참 멋스럽죠?
책에 실린 인형들을 쉽게 떠볼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되네요.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도 느끼게 되고요.
질박한 손맛이 느껴지는 인형들을 보기만 해도 참 흐뭇하죠?
근데 무슨 인형들이 이렇게들 날씬한 걸까요? ㅋ 자고로 인형은 목 짧고 머리가 커야 제맛인데.
이렇게만 본다면 제 이상형에 가까운 것은 사자 아저씨나 당나귀 아줌마?쯤 되겠네요.
책의 앞표지에 실린 사자와 뒤표지 중간의 곰은 도안이 같아요.
이 사실을 알고 잠깐 놀랐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죠.
머리털이 있고 없고로 저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 아이디어가 신선하지 않은가요?
핸드메이드라면 이런 재미가 있어야지요.
이 아이디어를 응용한다면 이 소박한 곰은 만드는 사람의 상상력에 따라 호랑이가 될 수도 있을 거고, 고양이가 될 수도 있을 거에요. 뒤표지에 같이 서 있는 얼룩말과 기린, 코끼리가 또 그렇죠. 기본 패턴의 색을 바꾸거나 배색을 하거나 장식을 붙여 코끼리도 만들고 기린도 만들고 얼룩말도 만드는 거죠. 검은색과 흰색의 모노톤 양이나 빗금무늬 돼지도 이런 아이디어로 만든 작품이에요. 이런 게 핸드메이드의 진짜 재미 아닐까요?
[소박한 곰, 사자]
[남매 원숭이]
[내 맘대로 뜨는 토끼]
[얼룩말, 기린, 코끼리]
[빗금무늬 돼지]
[검은색과 흰색의 모노톤 양]
소박한 곰과 사자, 남매 원숭이, 내 맘대로 뜨는 토끼가 대바늘만을 사용하여 특별한 노하우 없이도 완성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또, 얼룩말, 기린, 코끼리, 돼지, 양 등이 코바늘만을 이용하여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면,
빨간 스웨터를 입은 당나귀는 코바늘로 몸을 만들고 대바늘로 여러 기법을 사용하여 스웨터를 만들어 입힌 작품이에요.
이 책에 실린 많은 작품들에는 이처럼 코바늘과 대바늘이 함께 사용되어 독특한 재미를 느끼게 해 주죠.
코바늘로 뜬 뽀글뽀글한 몸통을 가진 큰 사이즈의 길쭉한 토끼와, 스카프를 맨 배색무늬 토끼가 또 그래요.
[빨간 스웨터를 입은 당나귀]
[큰 사이즈의 길쭉한 토끼]
[배색 무늬 토끼]
이런 재미는 곳곳에서 느낄 수 있어요.
인형은 자고로 입체감이 있어야 하는데...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코바늘로 납작한 곰을 만들고, 천을 잘라 바느질해서 바지를 만들어 입혔어요.
토끼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는 대신에 몸통에 배색 무늬를 넣기도 하죠.
갓 딴 땅콩은 한 술 더 떠서 배색 무늬를 넣는 대신에 실을 듬성듬성 꿰매어 장식했어요.
[납작한 곰, 갓 딴 땅콩]
새롭고 또 쉽지요.
뜨개를 처음 접하는 누구라도 부담없이 도전해 봄 직해요.
하다가 안 되면 나름의 꼼수를 부리면 될 테니까요^^
인생 뭐 있어요?
하지만
이 많고 많은 인형들 중에서
하필 제가 보고 한눈에 반한 인형은
표지에도 안 나오는 큰 사이즈의 길쭉한 곰이었어요.
서평단 모집글에서 길쭉한 곰 사진을 보자마자 선뜻 떠보고 싶다고 응모를 해서 당첨까지 된 거죠.
이 길쭉한 곰(52cm)은 길쭉한 토끼(62.5cm)와 함께 이 책에서 가장 커다란 사이즈를 자랑해요. 이전에 접해 보지 못한 다양한 배색의 아름다움에 그만 홀라당 넘어갔던 것인데, 그렇다고 해도 몸값이 어마어마한 하마나카의 실을 8볼이나 살 수는 없었어요ㅠ. 책을 받고, 벌여 놓은 문어발을 급하게 마무리하면서도, 눈으로는 집에 있는 실들을 눈앞에 한 무더기 꺼내 놓고 어떻게 배색할까 행복한 고민만 하고 있었죠.
[길쭉한 곰]
그러다 드디어 7종 9색의 실과, 대바늘 3종, 코바늘 2종을 사용한 저의 파란만장한 뜨개가 시작되었어요.
사실 처음에 이 곰인형은 배색의 다양함 빼고는 별다를 것이 없어 보였어요. 굵은 실로 숭덩숭덩 예쁘게 완성될 거라 믿었죠^^
하지만 직접 뜨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어요. 원작실과 다른 실을 사용한 것이 문제였어요.
7종류의 서로 다른 굵기를 가진 실과, 5개 정도의 치수가 다른 바늘을 사용하는데, 다른 실을 사용했으니 떠놓은 각 부분의 크기가 들쭉날쭉했어요. 앞판과 뒤판의 크기와 길이가 차이 나는데 이게 정상적인 것인지 비정상적인 것인지 참고할 만한 길이 정보도 없었죠.
또, 책을 글로만 볼 때는 재밌게 생각했던 꼬매기 방식이(*기존의 대바늘 인형을 꿰매는 방식과 달리 봉제 인형을 만드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직접 하려니까 실의 굵기 때문에 맘대로 안 되는 거에요.
'처음 접하는'이라는 제목에서 느꼈던 안락함은 훌훌 날아가 버린지 오래였지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길이가 제멋대로가 된 단과 코를 맞추어서 꿰매는데 성공했어요.
아.. 드디어 곰 한 마리가 태어났어요!
[완성된 사진 - '베지터블 베어'(일명 '야채곰')]
어렵게 완성하고 거의 실신지경이었어요. 이 녀석이 날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이야.
정작 뜨는 건 하루밖에 안 걸렸는데 머리는 이틀쯤 쥐어 뜯은 거같아요.
사실 도안 보시면 알겠지만 도안은 평범하거든요.
문제는 저의 안이함?
그런데 이상하게도 힘든 만큼 정이 가고 볼수록 뿌듯한 거에요. 만 하루를 머리맡에 두고 다정하게 들여다 보았죠.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무슨 힘이 불끈 솟았는지 제가 또 책을 뒤적거리고 있더라구요.ㅠ
미췬거죠. 저 변태인가 봐요ㅠㅠ
그리하여 '베지터블 베어' 뒤로도 세 아이들이 우리집 거실에 함께 살게 되었답니다^^
먼저 등에 이쁜 배색 무늬를 가지고 있는 거북이를 소개할게요.
이 거북이 인형은 장갑바늘로 원형 뜨기를 하며 배색을 하는 게 특징이에요. 하지만 저는 배색에는 영~ 초보여서 원형 바늘로 빙글빙글 정신없이 돌아가며 뜨고 싶지 않았어요. 차라리 앞뒤를 돌려가며 뜨고 나중에 꿰매기로 결심했지요.
거북이 인형의 등껍질은 대바늘(장갑바늘), 뱃가죽과 머리, 팔, 다리는 코바늘로 떠 주고 코바늘로 이어가는 방식이었는데요,
배색하는 조각이 크지 않아서 배색 초보인 저도 재미있게 뜰 수 있었어요. 하지만, 설명을 대충 보고 팔다리 꿰매는 방식으로 냅다 머리부터 꿰매는 바람에 납작 소두 거북이 태어났어요ㅠ 설명을 꼼꼼히 읽어 주셔야 낭패를 보지 않습니다.ㅋㅋ
저는 거북이의 머리가 납작해져서 망연자실한 후에야 통탄하며 설명을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는데요, 거북이 눈이랑 입에 수 놓는 설명을 읽고 그만 쓰러지고 말았어요. 십자수처럼 몇 번째 줄, 몇 번째 칸에 눈이랑 입을 만들어야 할지까지 콕 집어서 친절하게 알려 준답니다. 대박이죠?
저는 요새 바늘꽂이가 필요하던 참인데, 상상만 하지지 않고 직접 꽂아보았어요. 오매 아까운 것~
거북이한테 미안해서 그렇지, 구멍숭숭 탄력탱탱 니트의 특성상 오히려 헝겊으로 된 바늘꽂이보다 복원력 탁월합니다.
거북을 첨 본 남편이 '이거 바늘꽂이네'라고 하더군요. 다들 이 아이를 보면 같은 생각이 드는가 봅니다.
저의 세 번째 인형 달라헤스트를 소개합니다.
올해가 청마의 해여서 연초부터 만들고 싶어했던 푸른 말 인형을 달라헤스트 도안으로 떠 주었어요.
가지고 있는 실 중에서 가장 파란색에 가까운 실을 두 겹으로 합쳐서(원래 5겹 합사된 실이라 10겹이 되었지요)꼭꼭 눌러 떴더니 손바닥만한 사이즈의 말이 태어났어요. 비록 몸은 저렴이 혼방실이지만, 꼬리와 엉덩이 장식만큼은 호화롭게 해 주었어요. 꼬리에 반짝이는 스팽글이 보이셔야 하는데~ 엉덩이의 연분홍 꽃송이도 오가닉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잖아요^^
이 인형을 만들려면 대바늘로 감아코 만들기를 하실 줄 알아야 해요.
하지만 모르고 있더라도 옆에 만드는 그림이 자세히 나와 있어서 어렵지 않게 뜰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저의 네 번째 인형 당나귀를 소개합니다.
첨부터 푸근한 인상으로 저를 매료시켰던 당나귀 인형을 떠 주었어요.
안 뜨고 지나가려고 했더니 어찌나 눈에 밟히던지ㅠ
몸은 코바늘로 금방 완성했는데, 입고 있는 저 스웨터를 반나절은 떴어요.(세 시간 가디건도 있는 판에ㅠ)
이 아이를 위해 제 옷도 떠 본 적 없는 비싼 실을 과감히 꺼냈지요.
이 스웨터가 크기는 작아도 명색이 옷이에요^^
평면뜨기와 원형뜨기, 코줍기, 꽈배기뜨기, 꼬아 뜨기, 코줍기, 편물잇기 등 옷 만드는 데 필요한 기법들이 다 들어가 있어서 대바늘 초보라면 이 작품은 조금 힘드실 수도 있어요.
그냥 옷은 입히지 않으시는 걸로~~~
이러고 한참 놀다보니... 완전 몰입ㅋ
야외 촬영 나갈 기세~
가족 사진으로 마무리합니다.
아직 뜨고 싶은 이쁜 인형들이 많아요.
신곡도 여러 번 들어야 느낌이 오듯이, 책도 옆에 두고 오래 보아야 그 가치를 알게 되는 거 같아요.
저는 이 서평을 쓰고 난 후에도 아마 또 이쁜 아이들을 만들고 있을 것 같아요.
곰돌이랑 짝을 맺어 주고 싶은 토끼랑,
발이 특이하게 생겨서 발만이라도 떠보고 싶은 스카프 맨 토끼,
이쁜 실을 구하면 꼭 두 마리를 같이 떠놓고 싶은 남매 원숭이 등이요.
아주 뽕을 뽑을 기세지요^^
이 책을 한장한장 넘기다 보면 동심으로 돌아간 듯 행복해져요.(원래 뜨개책은 첨에는 잡지처럼 보는 거에요. 그쵸? 그쵸??)
그러다 보면 정감 있는 이 동물들이 자꾸만 만들고 싶어지죠.
인형을 만든 새로운 발상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고
설명이 자세해서, 뜨개 기법을 차근차근 배워가는 재미도 쏠쏠해요.
그러면서도 달라호스나 거북이, 코끼리, 기린, 얼룩말, 돼지, 당나귀, 사자, 양처럼 이국적인 동물을 다뤄,
신선한 재미를 주죠.
어린 시절의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그림책 보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넘겨 보아도 좋고,
어린아이를 둔 부모나 인형 뜨는 취미를 가진 키덜트족이라면 한땀한땀 손맛나게 만들어 보아도 좋겠네요.
다만, 진짜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도록
작품별로 난이도가 표시되어 있거나 아예 난이도 순으로 작품이 배치되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아요.
초보자도 아주 쉽게 완성할 수 있는 작품과 꽤 까다로운 작품이 같이 수록되어 있거든요.
일본어로 된 책을 볼 때마다 더듬거리며 작품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번역서가 나왔다는 소식이 정말 반가웠어요.
이 책은 친절하기로 소문난 일본서답게
그림 옆에 도표식으로 단별 코수와 증감 여부까지 기재되어 있고, 그때그때 필요한 뜨개 기법들도 보여주고 있어요.
또, 만드는 순서와 바느질하는 그림, 바느질 위치까지 완벽하죠.
책의 맨 뒤에는 모든 작품에 적용되는 도안 보는 방법과 기초 뜨개법 등을 간결한 그림으로 정리해 주고 있어요.
설명이 너무 자세해서 읽을 게 많다는 게 오히려 흠이라면 흠이랄까ㅋ.
번역서라서 더 반가웠지만, 번역서이기 때문에 가지는 한계도 분명 느껴져요.
그 중 하나는 값비싼 재료에요. 모든 작품에 하마나카의 고급 실이 사용되었는데, 책에 소개된 '바로 그 쇼핑몰'(* 책에는 작품에 사용된 하마나카 실의 구입처와 실 정보를 깨알같이 소개하고 있어요.)이 아니라면 시중에서 흔하게 구할 수 없는 실들이 대부분이죠. 다른 실로 뜨면 작품의 그 멋스런 느낌이 제대로 살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국내 독자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실로 떠 볼 수 있도록 비슷한 느낌의 대체 가능한 실을 알려주면 더 반가울 거 같아요.
특히, 제가 만들었던 길쭉한 곰인형과 짝꿍 토끼 인형의 경우에는
굵기가 다른 7가지 종류의 실과 서로 다른 호수의 바늘(5종)을 사용하여 앞뒤판을 만드는 만큼,
참고할 수 있는 각 부분별 치수나 실의 게이지가 표시되어 있으면 다른 실을 이용하여 뜨는 경우에 많은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사실, 이 예쁜 길쭉한 곰과 길쭉한 토끼를 떠 보고 싶어도 값비싼 실값 때문에 침만 흘리시는 니터들이 많을 거거든요.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렇게 좋은 컨텐츠는 앞에서 제가 제기한 몇 가지의 사소한 불평들을 쏙 들어가게 하지요.
본격적으로 대바늘 인형을 다룬 한국어 책이 몇 안 되니까 무엇보다도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커요.
특히 저의 파란만장했던 '길쭉한 곰' 프로젝트는 제가 그동안 인형을 떠왔던 방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주었어요.
유명한 인형 작가의 도안을 보고 그대로 떠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바느질해서 만드는 인형..
색깔도 같고 모양도 같고 큰 실수만 없다면 비슷비슷하게 완성되는 인형들.
앞으로는 만드는 사람의 손맛과 재료의 느낌에 따라 달라지는 진짜 핸드메이드를 즐길 수 있을 거 같아요.
'처음 만나는 유럽풍 손뜨개 인형' 책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재밌는 시간이었어요.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만들어 주세요.
이 글은 청송뜨개실과 진선출판사가 함께하는
'처음 만나는 유럽풍 손뜨개 인형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책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