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 종말 이후의 삶을
실험한다....
이것은 그저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다.
그렇다면, 지구 종말 이후의 삶은 어떤 삶일까?
문명이 붕괴되고 스스로 자급자족하는, 원시 시대의
그들처럼, 온전히 자연인의 모습으로 시작해서 살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른다. 문명의 혜택을 받던 자들이 문명의 이기를 벗어나서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고민들도 존재한다.
<유토피아 실험> 에서 실제로 학자인
저자가 공동체를 모집하고 생태마을과 대안 공동체를 견학하며
자급자족 생활을 배우는 치밀함도 보여주면서 지구 종말 이후의 삶을 직접실험한다.
이스터 섬 사람들이나 마야인들이 마야 문명이 붕괴된
이후에도 정글로 숨어 들어 살아 남았듯이, 저자 역시 문명의 붕괴라는 가정하에 18개월 가량 공통체를
꾸리고 지원자들을 모집하여 유르트를 만들고 자급자족 할 방법들을 모색한다. 교수직을 사임하고 집을 팔아 실험 자금을 마련함으로써 돌아갈 곳을
아예 차단하고 유토피아 실험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최후의 보루처럼....
요즘도 문명의 이기를 받지 않고 자연인의 모습으로
산속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최소한의 문명의 혜택만을 가지고 생활하지만,<유토피아 실험> 에서 그
것조차 아예 없는, 다 쓰러져 가는 캠프의 거친 환경에서 인간은 기아, 추위, 위험 속 야생생활에서의 탈진과 결핍, 고통, 분열등을
느끼게 된다.
평화로운 유토피아의 생활은 이미 먼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유토피아 실험> 에서 기본 수칙
가운데, 정해진 기간이 있다는 점은 이런 상황을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간다.
저자 및 몇몇 사람들인 경우, 공동체 생활
지속기간이 긴 반면, 중간중간 캠프에 들어온 많은 사람들은 ?공동체 생활 지속기간이 짧은 탓에 인간이 나락으로 떨어니는 느낌보다는
일종의 체험 활동 같은 시기로 여긴다는 점에서 '유토피아 실험'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물론, 저자 역시 실험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신의 연인이 거처할 곳을 마련해 두어 힘들때 마다 문명 속 생활을 병행해오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유토피아 실험'의 기본을 망쳐
버렸다.
다만, 폴란드 정신과 의사 다브로프스키의 '긍정적
해체'란 말이 어쩌면 저자의 이 같은 실험에 공감이 될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사회적 가치와 관습에
길들여져 산다. 그러나 소수의 시람은 로봇같은 이런 삶에 저항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처럼
말이다.
돌아갈 다리를 불태우고, 동료와 거리를 두고 집을
팔고 가진 물건을 다 나누어주는 등 지난날 자신이 쌓아 온 것들을 체계적으로 해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신적 붕괴를
초래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유토피아를 꿈꿨지만 실패하고 심각한
우울증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된것 처럼.....
솔직히, 처음 <유토피아 실험>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인간이 문명을 거부하고 스스로 살아낼 수 있을까? 또 다른 어떤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낼수 있을까? 인간이라면 예전 원시시대, 고재시대
사람들이 일궈낸 것 처럼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낼수 있겠지... 하는 그런 기대감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지원자들의 짧은 체류와
호기심 어린 사람들의 견학 등으로 '문명을 벗어난 삶의 체험 현장'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따지고 보면, 이 책의 저자만이 문명의 차단을
실행했고, (뭐,.. 그것도 완벽하진 않지만;;...) 그 속에서 자급자족 환상을 만들어 내려 했다.
<유토피아
실험> 에서 스스로 두려움을 느끼고 추락하는 자아를 만나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그는 더욱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어도 인간은 다시 길을 찾는다는
것도 확인 시켜주었다.
‘이
포스팅은 해당업체로부터 도서를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