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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눈을 뜨기 전에 - 엄마의 기쁨과 슬픔
리신룬 지음, 우디 옮김 / 원더박스 / 2021년 1월
평점 :
절판
아이가 눈을 뜨기 전에
엄마의 기쁨과 슬픔
리신룬 지음 / 우디 옮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만 여성작가의 에세이이다. 엄마, 모성애에 대한 낭만을 걷어내고 육아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충격, 육아하면서 겪는 체력과 정신의 고갈, 시간을 쪼개서라도 의미있는 글을 읽고 쓰고 싶어하는 갈망, 아이에 대한 사랑에 비례해서 또는 그보다 더 크게 자라나는 불안과 실제의 상처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무지와 미화에 관한 내용/53p
"(육아잡지를 보면) 출산의 피비린내와 울부짖음, 아이를 낳은 후에 찾아오는 어두운 밤의 나 홀로 수유와 심각한 수면 박탈의 고통은, 단편적인 몇 마디 말 외에는 가능한 한 혹은 무지하다 싶을 정도로 희미해지고 희석된다. 그 단순한 단어들과 여과된 화면들은 배가 불룩한 여성들이 불필요한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 주고 임산부의 불안과 근심을 어느정도 달래준다."
나의 경험과 생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고백은 실제에 닿아 있다. 나는 둘째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는데,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아이의 존재가 가져오는 불안함이 매우 큰 이유가 되었는데 작가는 그 불안이 실제가 된 이야기를 하며 그 마음을 매우 잘 그리고 있다.
"딸아이가 화상을 입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수도꼭지 아래서 죽어라 찬물을 끼얹던 그 과정 내내, 나는 지옥에 있었다... 중략... 알고보니 온전하고 깨끗해 보였던 일상 속에 상처가 벌어진 채 숨어 있었다. 나는 내가 무상의 의미를, 수시로 변화가 닥쳐온다는 그 말의 의미를 안다고, 늘 뉴스에 등장하는 두려움이 깃든 눈빛의 의미를 안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들이닥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위기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곳을 그야말로 발가벗은 채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겨우 확보한 아이가 잠든 시간을 이용해서 끈질기게 책을 읽는 모습도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와 종일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관계에 목말랐었고 언어에 굶주렸었다. 책을 읽어야 비로소 조금은 내가 되는 것 같았다.
"남루한 시간 속에서 털끝만큼이라도 기대고 의지하고 귀의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글쓰기는 내가 무지몽매하고 잡다한 깊은 바다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었고, 오로지 아이 곁을 맴돌면서 아이에게 집중한 채 사는 내가 긴장을 풀게 해 주었으며, 잠시나마 흔히 말하는 '나'를, 나의 가치와 내 존재의 의미를 찾게 해 주었다. 이제 보니 내가 지금도 나 자신에 꽤 연연하고 잇었구나."
아이에 대한 사랑이 후반부에는 엄마에 대한 애정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마무리되는 것도 이 책의 아주 인상적인 부분이다. 아이와 나(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아이가 되고 다시 나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아이에 대한 애닯은 사랑이 잔소리가 되고 나중에는 엄마가 철이 없어지고(없어보여지고) 딸이 엄마에게 잔소리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음식에서 안식을 찾는다(눈물).
내 몸에서 낳은 지독하게 사랑하는 존재가 내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엄마에서 아이로 다시 엄마에서 아이로 이어지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