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부부 오늘은 또 어디 감수광 - 제주에서 찾은 행복
루씨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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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그림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며 살았다. 큐레이터도 해보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화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언제나 그림이라는 틀 안에서 생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돈 생각하면 작가를 오래 못한다고 흔히 말하지만, 이아러니하게도 모두가 돈 때문에 그림을 그만두었다. 돈이 너무 많아도 혹은 너무 없어도 하기 어려운 것이 예술이라 했던가. 정말 그랬다. 누군가는 돈이 많아져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누군가는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ㅡ22~23P

그렇게 친구들은 하나 둘 취업을 하거나 사업을 하며 그림과 관련 없는 직업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는 동기들은 나를 보고 놀란다. “네가 아직도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놀기 좋아하고 눈에 잘 띄지 않던 내가 졸업 후에도 진지하게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보면 다른 이들처럼 완벽을 추구하지 않고 그림 자체를 즐겁게 받아들였기에 지금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주변을 둘러보면 천재성이 보이거나 실력이 뛰어나 주목받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꾸준히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만이 남아 있다. ㅡ23P

작가로 산 지 어느덧 10년 남짓이 되었다. 누군가는 내게 좋아하는 일을 해서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좋아하는 일 한 가지를 하기 위해 열 가지를 포기하며 산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직업과 취미와 삶이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한다. 게으른 사람도 예술가가 될 수 있지만 게을러서는 예술가로 살아남을 수 없다. ㅡ26~27P

오랜만에 가벼워 보이는(그러나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에세이를 읽었다. 제주도에서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루씨쏜이라는 작가이다.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이곳저곳을 헤맨 삶을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가 왠지 낯설지 않다.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를 헤맸던 그의 모습이 어쩐지 나의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일까. 나는 지금도 독일 서부 에센(Essen)이라는 도시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특별히 위의 글을 인용한 것은 최근 들어 부쩍 현실적인 고민이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떠나고 싶은 마음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구분한다는 것이 아직도 내겐 어렵다. 이십 대 초반부터 일 벌이기를 좋아했다. 어느새 이십대 후반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여전히 ‘시작 중독증’을 앓고 있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은 좋아하는데, 그것이 충분히 무르익을 때까지는 지속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게으름과 산만함을 언제나 아름다움으로 치장하려 한다. 방황하는 삶의 순간에 시적인 문구를 갖다 붙이며 시작詩作이라는 합리화를 덧입힌다. 지독한 고질병이다. 

그러나 나는 시작이 좋다. 한때 중독증세가 화두가 되었던 게임도 지금은 E-SPORTS로 당당히 자리 잡았듯, 처음에는 두려웠던 시작중독증이 지금의 나에게는 하나의 게임이자 삶이다. 이제는 내가 짧게 지었던 시들을 엮어 하나의 유기적인 작품을 만들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지금까지의 삶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목표 하나가 생겼는데, 내가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이유는 그것이 지금까지의 내 삶을 완벽히 대변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 일을 통해 나는 “직업과 취미와 삶이 모두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게 된다. 지금으로서는 그 목표를 위해 다시 시작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먼저 게으름부터 어떻게 해보자!


이 글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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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시간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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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시간은 한 여성의 실종사건을 기반으로 한 추리 소설이다. 주인공인 성환은 사립탐정으로,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여성의 친오빠를 만나면서 사건 속으로 들어간다. 추리 소설 특성상 많은 이야기를 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언급하지 않겠지만, 이 소설의 주요 키워드는 보험이다. 최근 윤고은의 도서관 런웨이를 읽으며 보험이라는 소재가 소설 속에 활용되는 양상에 흥미를 느꼈는데, 이 소설에도 다소 결이 다르긴 하지만 보험이 등장한다.

 

최근에도 보험 사기와 관련된 이슈가 끝없이 등장하고 있다. 보험 사기나 보험 살인이라는 키워드로 뉴스를 검색하면, 대개 1주일 내로 어떠한 기사가 검색되는 것을 마주하곤 하는데 나로서는 그런 현실이 참 안타깝다. 보험이라는 소재는 현대인의 이면에 숨겨진 욕망을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그 욕망을 단순히 자본주의와 엮어서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다.

 

제목이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결말부에서 그 의문이 해결되었다. 사실 사설탐정에 관한 국내 영화는 꽤 많이 본 것 같은데 왜일까. 이상하게 소설을 보는 내내 사립탑정이라는 글자가 낯설었다. 일본 소설이나 영미권 소설을 읽을 때는 크게 기시감이 들지 않았는데, 한국의 탐정이라 하면 뭔가 기시감이 든다. 이 또한 나의 편견이고 독서량의 한계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렇다. 겨울 동안 추리소설을 좀 더 들춰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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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프리퀀시 트리플 9
신종원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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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원의 고스트 프리퀀시는 어디로 확장될지 모르는 소설이다.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세 개의 소설로 구성된 이 책은 종족과 형태를 막론하고, 모든 포유류 태아는 생명의 줄기인 옴팔로스로 어머니와 연결된다.”라는 흥미로운 문장으로 시작된다. 다소 장황하게 일상을 재구성하는 그의 신화적 상상력은 이공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다. 이 소설에서 드러나는 그의 관심사는 다양하다. 당장 몇 문장만 읽어봐도 그가 생물학과 화학, 건축공학과 같은 이공학뿐 아니라 역사나 신화, ‘약사법을 통째로 들고 오는 모습에서 의학이나 약학에도 감각이 곤두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십면체 주사위에 주목해 보드게임의 형식으로 전개되는 아나톨리아의 눈은 첫 장부터 독자들을 위한 독특한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다. 데뷔작에서부터 음악과 소리에 관한 깊이가 두드러졌던 감각이 이 소설에서는 쇼팽을 향한다. 바르샤바에서 봉기한 피오트르 비소츠키의 군대와 무장시민들을 보여주다 불쑥 문예창작 입시과외의 풍경으로 넘어가는 소설의 전개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다소 장황하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삶 자체가 혼란의 연속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신종원의 소설은 그 혼란과 감각의 동요를 유기적으로 엮어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소설가가 주인공인 소설을 이렇게 연속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좀 지루하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 고스트 프리퀀시를 읽을 때는 또 소설가가 주인공인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랐던 것 같다. 소설가로서의 자의식이 깊어 보여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단점으로 드러날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물론 겨우 세 편의 소설로 판단하기는 힘들다. 얇은 책으로 자신의 세계를 선보여야 하니 지면상의 한계도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좀 더 따라 읽어봐야 겠다. 원래 신종원의 소설을 좋아했던 사람이나, 소설의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게임을 하듯 부호와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유령의 세계로 진입해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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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구하겠습니다! - 1퍼센트의 희망을 찾아가는 어느 소방관의 이야기
조이상 지음 / 푸른향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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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 사람과 구하지 못한 사람.

그 사이의 이야기.

언젠간 내가 그 사이에 끼어있을 수도 있겠지.

이 책은, 그 사이를 향해 달려오는 사람을 상상하게 한다.

'냉장고 속 시신은 어머니와 둘째아들이었다. 어머니는 17년 전부터 남편과 별거한 상태였고, 남편으로부터 매월 150만 원의 생활비를 받아왔다고 한다. 숨진 30대 아들은 아직까지 직업이 없었다. 아파트 CCTV에 휘발유 통을 들고 가는 둘째아들이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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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 - 코로나19로 남극해 고립된 알바트로스 호 탈출기
김태훈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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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로 남극에 고립된 사람들의 이야기.

집콕이 생활화된 요즘

이 책으로나마 남극을 그려본다.

'살면서 남극 갈 일이 있으려나?' 를

'살면서 남극 한 번은 가봐야겠다'로 바꿔준 책.

'미켈슨 항에서 해안을 따라 걸어가자 예상치 못했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포유동물의 뼈. 고래 뼈였다. 커다란 뼈들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 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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