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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룰렛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평점 :
아직 토지도 읽지 못한 내가 드디어 한국 작가의 소설세계에 발을 들인다.
원래는 단편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장대한 플롯이 있고 기승전결이 뚜렸한, 추리물 같은 것을 좋아하는데 이번에 잡은 은희경 작가의 책은 전혀 장대하지도, 딱히 어떠한 기승전결이 뚜렷한 플롯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아닌 물흐르듯이 화자들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구성이 많은데도 책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1.
러시안 룰렛이라 함은 예전 러시안 마피아들이나 그런 사람들이 즐기던 목숨을 건 도박인 것은 알고 있다.
회전식 연발권총에 하나만 총을 장전해서 서로 번갈아 가며 자기 머리에 쏘는 것.
그 중 한명은 반드시 목숨을 잃을 수 밖에 없는 도박.
그런데 러시안 룰렛은 많이 들어봤는데,, 중국식 룰렛은 뭐지?
검색을 해보니 작가의 인터뷰에서 1976년 독일 영화 '중국식 룰렛'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그 영화의 메인 플롯은 피할 수 없는 진실게임과 그 게임에서 폭로되는 인간의 어두운 면들…
아마도 술집에서 K와 아르마니 양복을 입은 청년, 인생이 늘 운이 없었던 검은테의 남자 그리고 화자가 펼치는 진실게임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묘하게 꼬인 관계들을 나타내는 복선이 아닐까 싶었다.
#2.
난 분명 소설을 읽고 있는데 마치 영화처럼 지금의 분위기, 그 냄새, 미세한 긴장감 마저도 하나도 빠짐없이 전달이 된다.
두 번을 읽었는데,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는다니.,
새삼 글의 위력에 놀라게 된는 순간.
#3.
중국식 룰렛외에도 5개의 단편선이 더 들어 있다.
술, 옷, 사진, 책, 신발, 음악-모두가 일상에서 우리가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하나의 물건을 매개로 두고 일어나는 일들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그것에 이리도 진하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니,,
글들이 거의 시와 소설의 중간쯤 위치한,, 나지막한 독백같은 느낌인데, 이런느낌 어디선가 읽어봤어 하며 머리를 굴리다 보니 형광등이 켜진 것 처럼 생각나는 그 작가는 바로 황경신 씨!
여자들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듯한, 읽는 것 만으로도 눈물이 날 듯한 황경신씨의 감성글들을 너무 사랑해서,
인터넷으로 보는 것만으론 성에 차지 않아 국제우편으로 받아본 기억도 있다.
황경신씨의 작품은 여유가 될 때마다 하나씩 모으고 있는데
그런 분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 작가를 알게 되어서 너무너무 기쁘다.
치명적인 저주에도 불구하고 왕자는 장미를 옷깃에 꿰맨 채 아름답게 성장한다. 그리고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되는데, 함께 산책을 하다가 바람이 불어 가슴에 달고 있던 장미가 영지의 울타리 밖으로 날아가버리는 운명의 시간은 닥쳐오고야 만다. 그 순간 고귀하고 아름다웠던 왕자의 얼굴은 초라한 추물이 뒤어버린다. 탐스럽던 금발은 숱 없는 잿빛이 되는 이는 누레지며 총기를 읽은 눈은 백태로 덮이고 등은 구부정해지고 목에서는 새된 소리가 나는 것이다. '장미의 왕자' P64
아름다워, 아름다워~
#4
시간순의 어떠한 흐름이라기 보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단편들에서는 화자에 따라 내 의식도 그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면서 복선들도 따라가야 하고, 그 복선들을 끼워맞춰야 하고 처음엔 아주 조금 정신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단편 하나 하나를 더 집중해서 천천히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5
중국식 룰렛을 읽으면서 일본에서 읽은 호시 신이치의 봇코짱이 계속 오버랩이 되더라 ㅋㅋㅋㅋ
바Bar라는 것 만 겹치지만 바텐더의 의도를 가늠할 수 없는 그런 왠지모를 기묘한 분위기가 서로 닮은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