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미생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1.

그는 자신을 중학교 동창 야마모토라고 하지만 주인공은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걸 자신의 기억력 탓으로만 돌리고두 사람은 그 재회 후 자주 만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주인공은 야마모토와 만나면서 처세술과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등에 대해 조금씩 깨우쳐가는데 알고보니 이 야마모토에게는 주인공을 도와 줬어야만 하는 사연이 있었던 것! 이 사연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테니 생략.

소설의 내용은 사실 너무 간단해서 줄거리라고 할 것도 없다.
대학생 시절에 자신감에 꽉 차있던 주인공이 회사에서 상사와 선배에게 시달리며 자괴감과 불안함 등이 그를 집어 삼키고 결국은 자신도 모르게 자살을 하려던 찰나에 만나게 된 의문의 사나이.

#2.
우선 나의 소설적 취향이라고 한다면,,일본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는다. 특히 히가시노 게이고나 마츠모토 세이쵸의 소설을 몇 권 읽으면서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닌데 그렇게 손이 간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내용 전개가 느리기도 할 뿐더러 사건보다는 인물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듯한 일본식의 정서가 조금은 답답하다고 해야 하나? 무라카미 하루키는,, 중학생 때 상실의 시대를 읽고선 거의 패닉 상태가 된 수로 한 권도 읽을 수가 없었다. 온다 리쿠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마저도 엄청 찾아보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요 책은 일단 표지부터가 소설인지 만화인지 구분이 안가는 재미난 표지여서 조금 더 쉽게 시작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흡입력이 엄청나다. 읽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버렸으니까;;;
구구절절 어떻게나 그렇게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은지, 한국이나 일본이나 직장인의 삶은 다 똑같구나..싶은 생각이 들더라. 
어쩌면 내가 일본계 회사에서 일본사람들을 상사로 모시고 일해서 더 그런 것일 수도 있겠구나.

나는 언제부터 웃지 않게 되었을까. 비디오를 되감은 듯한 시간을 그저 소화해 나갈 뿐인 하루하루.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월급은 제자리걸음.... 토요일 출근은 당연지사. 일요일에 죽은 듯이 자고 있다가 요란한 휴대전화 소리에 억지로 눈을 뜬다. 수화기 너머로 부장이 거래처에서 클레임이 들어왔다고, 내 담당이라고 미친 사람처럼 외친다. 워야, 원래는 선배 담당이었잖아. 까다로운 거래처만 떠넘기지 말라고. 내가 입사하기 전 일을 이야기하면 어쩌라는 거야. 애초에 선배가 그만둔 것도 네놈 탓이잖아. 망할 상사.(P8)

#4.
한 번 독자의 마음을 얻는 책은 이제 카타르시스를 향해 달려간다. 
직장에서의 마음가짐이랄까, 남들이 너의 가치를 좌지우지하게 내버려두지 말라는 식의.
그것을 위해 옷도 화사하게 입고, 자기자신을 꾸미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고, 말도 천천히 또박또박 한다.
어쩌면 자기계발서에 나와 있을 법한 그런 내용을 녹여놨다. 그냥 자기계발을 위한 목적으로 나온 책에 나온 내용이라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을테지만 이미 주인공과 동기화가 되어버린 독자에겐 하나하나 나에게 하는 교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한 이야기 내내 야마모토에 대한 궁금증도 텐션있게 녹여 놓아서 지루할 틈이 없게 구성되어져 있다. 

#5.
결론은 뭐, 제목대로 말도 안되는 회사에 주인공이 멋들어지게 한마디 하고 사직서를 낸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소설과 우리네의 현실이 갈리겠지...
다행히도 나는 정말로 사표를 냈다. 
사실 그 시간을 버틴 것 자체가 나는 이미 승리라고 생각을 한다.
또한 그 순간순간 내가 믿었던 것은 내 계획과 내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시간표였기에 정확한 시간에 그곳을 나올 수 있었겠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론이 어찌보면 소설로서의 한계이자 또한 소설만이 가질 수 있는 카타르시스로 끝나기에 독자의 반응도 갈릴 것 같지만. 팍팍한 회사 생활에 주인공인 아오야마와 함께 잠시 일탈을 꿈꿔보는 것도 괜찮은 휴식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