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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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본 빨간머리 앤이라는 만화를 볼때의 그 두근거리던 설레임을 아직도 기억한다.

앤을 따라서 내 주변의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을 붙였더랬다.

잘려진 나무기둥에서 다이애나와 둘이서 티파티를 하던 앤을 보고 카페인때문에 마시지 못하던 차에 대한 로망을 처음 갖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를 포함, 동시대를 살았던 꽤나 다양한 연령대의(?) 여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일어났던 현상인듯 하다. 많은 이들이 원작소설 빨간머리앤이 아닌 지브리의 빨간머리앤을 그리워 하며 그때를 회상하다 관련된 책까지 쓰신 분이 계신다.

#1

작가들, 번역가를 또 시인들의 에세에이를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그냥 힘이 빠진 가벼운 수필집을 읽다보면 작가의 의식의 흐름이라든지 깊이 등이 조금 더 잘 보이는 느낌이랄까...

관심이 있던 작가의 수필집도 읽어보고, 작품을 읽고 흥미가 생기면 또 그 작가의 수필집을 읽어보는 편인데 에세이를 읽다가 내용이 나와는 맞지 않다고 느껴 멀어진 작가가 꽤나 있다. 그런데 '빨간머리 앤이 하는 말'을 읽고 이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마구 마구 상승한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나도 빨간머리 앤을 그리워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굳이 빨간머리 앤에 대해, 아니 그녀가 했던 대사들에 대해 책을 쓸 것 까지 있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냥 그저 그런 가벼운 글이겠거니 했지만 왠걸... 깊이가 있어서 놀래부렀어. 빨간머리 앤이 하는 말을 매개로 전해지는 작가의 생각들이, 그 성숙한 생각들이 감동을 준다.

#2

- 꿀을 좋아하는 곰돌이 푸우가 가장 행복해하는 시간은 사실 '꿀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꿀을 기대하는 시간'이다. 꽃은 활짝 피기 전이, 꿀은 먹기 전이 가장 달콤하다.

우리는 너무 즉각적인 만족의 세계에 사는 건 아닐까? 기다림은 우리에게 결과를 떠나 과정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히려 만끽이라는 말은 이 설렘 뒤에만 따라오는 충만일지도 모른다. (P45)

- 달아나고 싶었던 고아원으로 되돌아가게 된 앤이 이보다 더 절망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말한다.

"전 이 드라이브를 마음껏 즐기기로 작정했어요. 즐기겠다고 결심만 하면, 대개 언제든지 그렇게 즐길 수가 있어요!"

돌이켜보면 걱정했던 일들은 걱정만큼 실제 일어나지 않았다. 내일 벌어질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봄이 왔음을 알아차리는 능력, 현자들은 그것을 현재를 살아내는 능력, 즉 '카르페 디엠'이라고 불렀다. 행복은 지속적인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가장 행복해지는 방법은 '큰 행복'이 아니라 '작은 행목'을 '자주'느끼는 것이라고. (P51)

#3

행복은 완결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과정 중에 일어나며,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심리학에는 '행복의 평균값'이란 용어가 있는데, 이 말은 인간의 행복이 적정선을 넘어서면 더 이상 증폭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행복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중에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것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우리가 의도적으로 해야 할 것은 '뭔가 하기 위해'달리는 게 아니라, '뭔가 하지 않기 위해' 때때로 멈춰 서는 것이다.

그래서 감사일기를 쓰고, 잠시 멈춰서서 내가 받은 복을 세어보며 족함을 느끼는 것이 행복인듯 하다. 다만 요즘은 이 작은 행복인 소확행이란 개념이 소비의 개념으로 많이 바뀐 것 같지만 또 그런 작은 소비들이 순간 순간 삶에 대한 긴장감을 풀어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아. 그래도 내 자신에게 잊지 말라고 되뇌이는 것은 소비를 함으로 오는 행복은 결국 더 큰 소비를 하지 않으면 점점 그 작은 행복이 사라지는 매직을 볼게 될 것이란 것.

#4

-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보다 중요한 건 '꿈을 이룬기 위해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아는 일'이다. 세상을 천천히 응시하는 일은 나의 마음을 꼼꼼히 읽는 일이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몰려 쫒기듯 하고 있는 일을 자기 의욕으로 착각하고 나를 소진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는 일이다.

삶을 야구에 비유하면, 나는 이제 홈런을 치겠다는 야망보다는 출루율을 높이기 위해 연습을 거리지 않는 선수가 되고 싶다. 삶녀서 중요한 건 어쩌면 타율이 아니라 출루율일지도 모른다. 살다보면 좋을 볼을 보고 '안타'를 욕심내기보다, 먼저 출루해 나간 사람을 위해 '번트'를 칠 수 있는 선수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더 큰 세계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사람은 종종 다른 사람이 내리지 못하는 판단을 하기도 한다. 야망의 기준이 '나'에서 '우리'로 확장되는 것이다. (P55)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남자친구를 만났던 당시 내 속에서 있었던, 깊이 깊이 숨겨놓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던 그 목소리는 남들눈에 내 사람이 대단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어야 했고 설사 그의 부족한 부분이 보일라치면 그의 부족한 부분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며 사람들에게 포장을 했더랬다. 우리 관계는 그렇게 말라갔지. 감사한 것은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이 부러워 하는 홈런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욕심이 자의로 타의로 깎여나간다는 사실이다. 이런 과정을 '성숙'이라고 하나보다.

#5

- 어쩌면 고백은 '말'보다 '태도'가 더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다면 '사랑한다!'는 메시지보다 언제, 어떤 방시긍로, 그것ㅇ@ 진심을 담아 상대에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 '미안하다'는 말 역시 마찬가지다. 태도는 곧 행동이다. 고백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진심을 다해서!

딱 이부분을 읽었을 무렵, 엄마와 다투고 카페에 나왔을 때다. 내 잘못이 아니고 여러번 말했지만 고쳐지지않는 엄마의 어떠한 습관 때문에 마음이 상할대로 상해 분한 마음을 삭히고자 아이스라테 한 잔 하며 책을 펼쳤는데 말이지...

사실 각작의 입장만을 이야기 할 뿐이지 누구의 입장도 틀리다고는 말할 수 없는, 옳고 그름이 없는 논쟁이었기에 더 억울한 마음이었지만 하나님이 마음속에 계속 주시는 생각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 엄마가 100% 잘못한 상황이었다면 나도 엄마의 사과를 받아야 마땅했겠지만 그런 상황도 아니었고 이렇게까지 엄마에게 화낼 일도 아니란 것을 마음으론 알았기에 결국은 내가 엄마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카톡을 보냈다. 엄마는 1박2일동안 잠깐 친구들이랑 여행을 가셨었는데 끝끝내 답이 없으셨다. 예전같으면 여기서 또 난리 난리 나겠지. 아니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는데 어떻게 답도 없을 수도 없냐고 2차전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이번엔 이 글귀가 마음에 깊이 각인이 되어 있었나보다. 고백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닌 몸으로 하는 것이란 것... 내가 진심으로 엄마에게 미안하다면 엄마의 답장의 유무에 의해 내 마음이 변하면 안되는 거잖아. 그리고 그렇게 엄마가 여행에서 돌아오셨을때 엄마를 따뜻하게 안아줌으로 내 진심을 담은 미안함을 전달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엄마는 카톡 온줄도 모르셨더라. 나중에 카톡을 확인하시고 장문의 카톡으로 답을 주셨다. 상대방의 반응과 상관없이 내 마음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내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진심 곧 진짜임을 확증하는 것.

#6

-한 때 나는 노력이 의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내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의지박약이란 마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이젠 노력이 일종의 '재능'이라는 걸 안다. 노력은 의지가 아니다. 노력이야말로 어떤 면에서 타고난 재능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특별한 재능 말이다. 노력해서 가장 좋은 건 이게는게 아니다. 노력해서 가장 좋은 건 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언제나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이긴다는 건 지속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젠 이기는 법이 아니라, 지지 않는 법에 대해서 익혀야 한다. 더 나아가 '지는 법'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P298)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것 처럼, 노력하면 (=내 자신을 채찍질 하면) 내가 생각하는 그 목표에 다다를 수 있을 줄 (=이길 줄) 알았다.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새벽에 제일 먼저 일어나고 저녁에 가장 늦게 누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그 목표에는 다다를 수 없었다.

열심히 달리는 것보다 더 중요했던건 잠시 숨을 고르며 나를 먼저 파악하고, 나라는 사람을 충분히 보듬어 주면서 천천히 가는 걸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내가 넣은 input(시간, 노력)대비 최고의 output을 내야 하는 강박증 비스무리한 증상도 있었던것 같다. 그런데 그 output에 내 마음의 안식은 없었어.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그 시간들을 거치면서 이제는 놓아줄 것은 놓아줄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 '지는 경험'을 하니 그렇게 지지 않는 방법도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는 것 같다.

#7

- 사람들은 과거는 절대 바꿀 수 없다고,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곽도 바뀔 수 있다는 걸 이제 안다. 정확히 말해 과거의 '의미'는 내가 '현재'를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변한다. (P329)

Life goe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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