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본드 25
이노우에 다케히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의 말
헤아릴 수 없이 폐를 끼치고
헤아릴 수 없이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래도 뭔가를 그리려 한다.
뭔가 좋은 말을 하려고 한다.
이 본능을 거스르지 못하는 가운데,
좀 더 나아지고픈 본능이 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
미야모토 무사시와 요시오카 덴시치로 사범의 결투에서 승리한 무사시를 평가할 때 `융통무애`란 말이 나온다. 융통무애란 불가에서 말하는 사고나 행동이 자유롭고 막힘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상선약수 등 깨달음이나 극의의 상태는 표현만 다르지 다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자유로움, 그래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과도 어울릴 수 있는 상태.
혼이덴 마타하치와 무사시는 어릴 적 친구로 함께 최강을 꿈꾸고 마을을 나왔으나 마타하치는 그 길을 도중에 포기한다. 25권에서 서로 오랜만에 만났으나 마타하치는 자기 앞에 있는 무사시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 속에서 만들어낸 무사시에 사로잡혀 오해하고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지금의 마타하치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나는 오랜만에 누구를 만났을 때 그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기분이 좋고, 변했다는 사실에도 기분이 좋다. 그래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더 좋은 것 같은데, 특히 내가 원하는 모습이 변하지 않았을 때 그런 것 같다. 아니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좋은건가? 다시 생각해보니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기분이 안 좋기도 했고, 변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안 좋기도 했다. 아! 내가 원하는 모습이 변치 않기를, 그리고 싫은 모습은 변하기를 나는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구나.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으로 비춰졌겠구나. 내 밖의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나는 내 자신만이라도 다스리면 되는 것이다.
나아가 사람은 변하는가? 변하지 않는가? 변하고 말고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점은 유지하고 나쁜 점은 고쳤느냐가 중요한 것이구나. 그렇다면 현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우선일테다. 어떻게 행동할지보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 사람인지를 직시하는 게 급선무구나.
딴 얘기로 이와 비슷한 소재, 즉 `내안의 너`와 `너안의 나`를 에반게리온에서도 다루긴 하는데 초점은 고독과 그 극복이다. 배가본드에서는 오해와 자신의 반영이라면 말이다. 고3때 에바를 보고 영향을 받았는데, 그때부터 나도 내 안에 여러 명의 사람들을 키우는 짓을 했던 것 같다. 얘기가 너무 길어질 테니, 에바는 다음 기회에 ;)
이것이 이번에 25권을 보고 내가 느낀 두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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